이른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낀 걸 보니, 아무래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우산을 챙기고 숙소를 나서는데, 역시나 다를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가는 비자림인데, 비가 오다니... 오늘은 날씨운이나 여행운 모두 다 따라주지 않나 보다. 비자림에 도착한 지, 아니 정확히는 비에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1분도 안 되어서, '아'라는 탄식이 나왔다. 얌전히 투 투 툭 투투 투 툭 내리는 비면 좋을 텐데, 얇고 가느다란 빗방울이 춤을 추듯 제멋대로 여기저기 떠다니고 있다. 누군가 분무기로 장난치듯, 톡톡 튄 빗방울이 내 눈앞을 방해하다가도 얇고 부스스한 빗줄기들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간지럽게 슥- 스쳐 지나갔다. 펼친 우산을 가지런히 접고, 보라색 우비를 입었다. 우산을 내려놓으니 몸이 한결 가벼워져서 좋긴 한데, 우비 입은 게 무색할 정도로, 바람 따라 열심히 다니는 빗방울 덕에 온몸이 촉촉해졌다. 비도 맞았겠다, 신나게 요리조리 춤추는 빗줄기를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보폭을 더 넓게 걷다가 팔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살짝 뛰어보기도 했다.
숲속에서 비와 같이 춤춘 유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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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미혜(mi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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