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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병자호란(2013) - 한명기

사라지지 않은 한국인

 삼국지나 한국사를 비유로 현대 문제를 다루는 건 여러모로 나에게 불편했다. 얘기 할때 본인은 신나 보이지만 정작 문제 해결 하는데는 실용적이지 않아 보였다. 정치인들이 정파적 주장을 위해 ‘반면교사’를 운운하며 인용할 때 이런 나의 편견은 견고해졌다. 무엇보다 몇 백년전의 사건을 현대에 적용하는 일은 마치 기(氣)로 내 몸을 진단하는 것처럼 불분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나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 병자호란 당시 조선과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는 강의를 들었는데, 세상에, 무지하게 재밌었다. 그래 어쩌면 이것이 단순히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역.사.평.설’이라고 적힌 무시무시한 책을 추천 받아 읽어내려갔다.

 떠오르는 후금(청나라)과 지는 명나라 사이의 난감한 조선. 아 눈물 없이 한탄 없이 읽을 수 없는 비극적 드라마. 삼전도의 굴욕과 청나라로 끌려가 고통받았던 50만 조선인들. 처절한 한국 역사, 이 이야기를 당장 떠들 사람이 없다니. 방금 나는 A4 반장 분량의 병자호란 역대기를 감탄하며 썼다 다시 지웠다. 이런, 나는 결국 ‘반면교사’라는 결론의 뻔한 이야기를 혼자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세상에, 나도 이러다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조선 역사를 주저리 떠드는 사람이 되는건 아닐까. 감명받은 사자성어를 카톡 프로필 대화명에 올리고(必死則生 必生則死) 결국에는 계량 한복을 입고 다니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BTS의 음악에서 조선의 ‘한(恨)’을 찾거나 안무에서 고구려의 용맹함이 담겨 있다는 글을 쓰게되는 것은 아닐까!


 그 사이 턱에 수염이 자라버려서 쓰다듬을 뻔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려보자. 책의 내용을 상기하고 현재 대한민국을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떠오르는 중국에게 손을 내밀어야한다고 한다고, 어떤이는 강력한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고 하고, 어떤 놈은 빨리 핵을 만들어야한다고 한다. 놀랍게도 모두 병자호란을 반면교사로 삼자며 하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누구 말이 맞는지 확신할 만한 자격이나 지식은 없다. 하지만 나, 한국사 3급자격증의 소지자, 대한민국 강한육군의 대한남아로서 한 마디 해야겠다. 


 어떤이(이영훈 등)들은 조선이 줏대없고 열등한 부끄러운 역사라며 비난 한다. 하지만 조선은 중국이 너무 좋아서, 그들의 변발이 너무 멋져서 자처한 것이 아니다. 한국사는 중국사나 일본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멸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일본이 전국시대에 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그것이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의 소멸의 위협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대주의라며 누군가 손가락질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공동체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강대국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형님이라 부르며 발버둥쳤던 것이다. 살다보니 살아남기 위해 동정심이라도 유발해야했던 벼랑 끝의 순간들이 있었다. 영화처럼 소리를 지르면 머리가 솟아 거인이 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냉험했다. 내 처절했던 알바경력처럼 조선 또한 이것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문제를 위해 역사를 살피는 것이 실용적인지는 몰라도 현재 우리를 재정의하여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같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변발의 외국인들에게 부모님, 형님이라 부르고, 하지만 일본은 꼭 무시하는 우리의 모순을 보건데 형용할수 없는 애잔함을 느껴진다. 

노래 한구절이 생각난다.

“넘어진 채 청하는 엇박자의 춤, 겨울이 오면 내쉬자 더 뜨거운 숨(…) 내 손을 잡아 미래로 달아나자” 

BTS - Life goes on


아무래도 BTS 노래 가사를 듣자하니 조선의 한(恨)과 대한민국의 나가야할 방향까지 담고 있는 것 같다. 

사라지지 않은 한국인들을 위로하며.



참고: 

추월의 시대-김시우, 백승호, 양승훈. 임경빈, 하헌기, 한윤형 지음

병자호란 -한명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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