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윤리의 문제
챗 베이커는 아름다운 음악 남긴 시대의 재즈 뮤지션입니다. 카페에서 익숙하고 우아한 트럼펫 소리가 흘러나온다면 음악검색을 해보세요. 챗 베이커의 음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챗 베이커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뮤지션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처럼 챗 베이커의 삶은 비윤리적이고 비겁하며 극단적으로 이기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할 그의 파렴치한 만행들은 일생에 걸쳐 일관됩니다. 마치 한 편의 질주극처럼 쏟아지는 챗의 이야기를 그의 음악과 함께 읽어 보기를 추천합니다. 그의 만행과 아름다운 음악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만행은 청소년 시절의 자동차 사고였습니다. 그는 청소년기에 답답한 집구석에서 벗어나 운전을 하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물론 운전면허는 없었고 휘발유는 훔치고 다녔습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사고는 냈지만 운전실력이 뛰어나고 과속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 친구 운전은 정말이지 카레이서 같았습니다. 아주 빨랐죠. 아마 내가 한번도 운전해보지 못한 곳까지 가봤을 거에요”.
자신을 제한하는 곳으로부터의 해방과 그곳으로 도망가는 쾌락의 질주. 이것은 앞으로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히스테리와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가정이 싫었는지 군에 자진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맹장병으로 의병전역을 했지만 다시 마약혐의로 징벌성 재징집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만행이 시작됩니다. 자유를 향한 그의 행보에는 국가조차 우스운 존재였나 봅니다. 의병 제대을 하기 위해 자신이 게이라며 소리쳐 정신병이 있다고 속였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원대로 다시 한번 의병제대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챗은 어지러운 여자관계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을 옥죄는 모든 것을 거부했고 여자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글은 800페이지가 넘는 제임스 개빈의 <챗 베이커>를 참고했습니다. 너무 길어서 한 챕터 정도 넘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인이 금새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닮은 외모와 서정적인 목소리, 탁월한 연주 덕분에 그는 많은 여성들의 인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를 두고 싸우는 여인들이 넘쳐났고 어떤 쓰레기 짓에도 여성들은 그를 용서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클럽 연주가 끝난 저녁이었습니다. 챗 베이커는 연주를 마치고 프랑스계 여인 릴리앙과 바람을 피고 있었습니다. 이때 첫 번째 부인 샬레인이 들이닥쳤습니다. 독일제 권총을 든 샬레인은 챗이 아닌 릴리앙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권총을 겨누며 다시는 챗의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며 협박했습니다. 나중에는 포크로 배를 찌르며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들은 결코 챗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샬레인과 헤어지고 릴리앙과 재혼을 했습니다만 금새 지루해진 챗은 무관심과 마약중독으로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그녀는 챗과 이혼을 했지만 훗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이가 보고싶어요”
챗은 수많은 여인을 쉬지 않고 만나왔지만 단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들이 그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챗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엿보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신디라는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녀가 챗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게 뭐야?”
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 아마 내 악기 아니겠어? 그리고 새로 산 캐딜락, 내 음악도 중요하지. 대충 그 정도 아닐까?”
신디도 보통 여성은 아니었는지 이 말을 듣고 캐딜락의 범퍼를 내려쳤습니다. 챗은 이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 우리집 개도 중요하지”.
챗의 연애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었습니다. 그 대상이 친구의 아내일지라도. 제리 멜리건 밴드 생활을 할 때 챗은 조이스 터커라는 여인을 몰래 만나고 있었습니다. 챗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그녀의 남편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맴버였던 카슨은 우연히 터커와 그의 남편 그리고 챗을 차량 뒷좌석에 태웠습니다. 남편을 가운데에 둔 내연남녀의 모습을 카슨은 벽을 두고 있는 것 같다며 당시를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카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 와중에 서로 만지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여느 재즈 뮤지션처럼 챗도 늘 마약과 함께했습니다. 그가 첫 전성기를 누린 제리 메리건의 밴드에서도 마약에 찌든 삶을 살았습니다. 연주가 끝나면 마약을 하고 다시 마약이 찌든 채로 연주를 하는 삶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는 밴드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그 즉시 마약을 구입하는데 썼습니다. 이런 삶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반복됩니다. 그는 성공한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58세의 죽는 순간까지 남은 돈은 겨우 4000달러였습니다.
마약에 대한 집착은 그의 폐륜적 태도로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챗은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이를 알고 있던 동료가 길에서 홀로 걸어가는 그의 아들 딘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디있냐고 묻자 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나를 버리고 약을 사러 가버렸어요”
챗은 아들을 길가에 버려두고 마약을 사러 갔던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마약 때문에 두 번의 사체유기의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함께 마약을 하던 동료였습니다. 마약을 투약하고 부작용으로 그들이 사망하자 처벌을 면하기 위해 그들의 사체를 숲에다 버렸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함께했던 부인 루스 영에게 시체를 치우라고 지시했습니다. 루스 영은 그가 마치 “젠장 계란이 타버렸네”와 같은 식으로 짜증을 냈다며 증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루스 영에게 사체 유기를 지시하고 챗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역시 너처럼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은 없어”
이런 희대의 망나니의 삶을 지속했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마약 딜러에게 얼굴을 맞고 이빨이 부러진 것입니다. 트럼펫 연주자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이었죠. 공연이 줄고 돈이 없어진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했을까요. 그는 어머니 집에 찾아가 가전제품을 전당포에 갖다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 또한 마약을 사느라 다 써버리게 되지요. 하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그는 틀니를 사게 되었고 혹독한 훈련 끝에 더 아름다운 연주를 하게 됩니다. 물건을 갖다 파는 버릇은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루스 영이 마약하는 것을 말리자 심술이 난 그는 그녀의 물건을 길거리에서 갖다 팔기 시작합니다.
“얘야 이거 필요없니?”
챗의 손에 든 것은 자신의 앨범들이었습니다. 챗의 엄청난 팬이었던 루스 영이 수집한 그의 모든 음반들이었습니다.
50대에 접어든 챗 베이커는 마약에 찌들어 온 몸에 주름과 고름으로 가득해 외형상 시체와 다름없었습니다. 한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여인이 없던 챗은 그의 친구와 그의 딸인 미셸린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는 미성년의 미셸린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여느 여인처럼 미셸린도 역시나 챗을 좋아했습니다. 시체와 같은 육신을 가졌지만 여인을 꼬시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나 봅니다. 챗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미셸린, 이 늙인이에게도 잘해줄 수 있겠어?”
결국 미셸린은 챗을 부양하고 마약까지 배우게 되어 험난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는 인생의 말로에 완전히 마약에 잠겨버린 삶을 살아갑니다. 그가 투약한 마약은 일반 중독자의 세 배였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매니저였던 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걸어 다니는 송장이었어요. 오직 마약을 하기 위해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가 죽기 직전에는 더 이상 바늘을 찌를 곳이 없어 고환에 찔러야만 했다고 합니다. 1988년 13일의 금요일, 이탈리아에서 공연을 계획했던 챗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사인을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방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마약 과복용으로 인한 자살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수 많은 여성들의 백마탄 왕자님이었던 챗 베이커는 과속을 해 사고를 쳤던 청소년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유로운 쾌락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유지되고 있는 거의 모든 윤리를 그는 단숨에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단 한번도 꺽지 않고 오로지 그의 마음대로 살다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는 챗 베이커의 음악은 그 아름다운 쾌락을 향한 끝임없는 질주의 소산입니다.
챗이 사회규범을 무시한 채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로 인해 아름다운 음악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종종 작품과 아티스트를 극단적으로 동일시해 질타하거나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좋고 나쁨을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음악과 그렇지 못한 아티스트의 삶이 공존하는 아어러니의 상태, 그것은 우리의 예술과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인군자의 모습을 한 개자식, 챗 베이커의 음악이 카페에서 흘러나오면 어떠한 찬사나 비난도 없는 오묘한 아이러니 앞에 머무르게 됩니다.
*참고: 제임스 게빈, <쳇 베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