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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은 오늘 출근한다.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났다. 2분 간격으로 배치된 알람 소리도 나를 일으키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군대에서 익힌 세면, 탈의, 착복의 스피드를 믿는다. 정신없이 물을 끼얹고 다시 그것을 말리고 나면 어제 입은 옷을 쥐어 잡는다. 냄새를 확인하고 특별한 악취가 없다면 그 옷은 오늘의 착장이다. 아, 양말이 한 짝 모자라 리듬이 흐트러지고 짜증이 올라온다. 치밀어 올라오는 욕을 뱉어낼 찰나, 구석에 박혀있는 다른 한 짝을 발견한다. 좌절과 구원의 기쁨이 전쟁처럼 교차한다. 신발 상태는 엉망이다. 하얗게 빛나던 나이키 포스가 회색빛 걸레짝이 되어있다. 밑창은 뚫렸고 뒤꿈치 패드는 널부러져 있다. 비 오기 전에 새로 사야하는데. 


신발을 신을 때는 절대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 발씩 정교하게 찔러 넣어야 한다. 신발을 신음과 동시에 작업실 문을 열어젖힌다. 세 계단씩 단숨에 내려와 마지막 유리문을 맞이한다. 문을 밀 때는 관성력이 문을 두 번씩 열고 닫게 해서는 안된다. 도어 클로저의 강도를 고려한 한 번의 적절한 힘으로 동작을 완성해야 한다. 노련하게 문을 통과해 건물 밖을 나오면 아직 남은 찬기와 따가운 햇살, 어제의 절망이 민망할 정도로 시원한 개운함을 느낀다. 외투 왼쪽 주머니에 이어폰을 꺼내 어제 야심차게 준비한 The Weeknd 신보를 재생한다. 인트로가 시작되고 드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대강의 BPM을 파악한다. 경쾌한 디딤발 그리고 지하철역을 향해 하나, 둘, 셋 달린다. 


디스코풍의 레트로 사운드가 상쾌하다. 어제 만들다 완성하지 못한 사운드를 이 아메리칸 친구는 완벽히 구현했구나. 어제는 분명 비싼 장비 덕분일 거라며 포기했지만 경쾌한 리듬에 발 맞춰 내달리고 나면 아, 다시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는 숨이 차고 땀도 나기 시작한다. 좀만 더 빨리 나올걸, 아니 일찍 일어났어야, 아니 일찍 잤어야.. 뭐 이런 상념을 물다보면 신촌역을 내려가는 계단에 도착한다. 내리막에서 펄쩍펄쩍 뛰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차분하게 한 칸씩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 내려간다. 시간을 확인. 이정도면 제시간에 도착 할 수 있다. 괜찮은 타이밍에 전철이 도착한다고 하니 이제 한숨을 돌려본다. 



다들 지각에 대비한 히든카드 한 장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택시를 탄다든가, 부모님 찬스, 간이 크면 몸살로 오전에 병원에 다녀온다는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다. 나에게도 나만의 히든 카드가 있으니, 10분 안에 모든 세면을 마칠수 있는 논산훈련소에서 배운 세면 속도와 지하철까지 전력질주를 할 수 있는 뻔뻔함이 그것이다. 10분 안에 세면과 옷을 입는 것까지는 은 숙련을 통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30대 남자가 서울시내를 뻔뻔하게 전력질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헝클어지는 헤어 스타일에 개의치 않고, 몸에 땀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구두나 정장을 입지 않고 출근하는 소수의 선택 받은 자들이다. 어떤 바지에도 어울리는 흰색 운동화(최초에는), 어떠한 맥락에도 입을 수 있는 바람막이, 잘라야 할 시기를 훨씬 넘긴 더러운 머리가 그 특징이다. 아 미용실도 가야는데. 그래도 이번주만 넘기면 저번 달보다 이발비 일만 오천원을 절약할 수 있다.


이제 거의 도착했으니 내릴 준비를 한다. 알바하는 곳까지 도보 5분 거리. 현재시간 10시 50분, 정시 출근을 확정 지은 달콤하고 여유로운 순간이다. 고개를 들어 계절을 확인해 본다. 오늘 신발에는 냄새가 심해 발을 숨기고 있을 것 같다. 땀도 많이 흘려서 바람막이는 절대 벗지 않을 것이다. 2달을 넘겨 감당 못하는 앞머리가 부끄러우니까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마주치지도 말아야겠다. 계절은 봄이다. 바람이 선선하고 맑은 하늘의 아침, 거리에는 벚꽃이 만발해 있다. 벚꽃이 이쁜 만큼 글쎄, 나는 우울해진다. 차라리 눈을 감고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노래 속으로 들어간다. 음악은 자꾸 무언가 보여준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간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그곳을 향해 걷다 보면, 알바하는 곳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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