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책 제목만큼이나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다. 들고 다니면 이 가을에 어울리는 고독한 문학청년의 향기를, 하지만 놀아줄 친구가 없어보이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의 쓸모, 왜 문학을 하는가? 세상에,, 이렇게 웅장한 질문으로 책은 시작된다.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고 문학 나부랭이를 했다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를 꾸짖었다. 그 문학을 아직까지도 나는 버리지 못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다. 아무 짝에도 써먹지 못하는 것을 무엇에 하려고 하느냐? 그 질문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18세기를 지나면서 문학가는 지배 계층의 이념을 선전하는 역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이제 문학은 판검사처럼 권력의 지름길이 되지 못한다. 현이 어머님의 말처럼 써먹지를 못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문학은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고 있다’고 말장난을 친다. 물론 금방 멋진 문장으로 설명해준다.
“인간은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꿈꿀 수 있다. 인간만이 몽상 속에 잠겨들 수가 있다.(…) 몽상은 인간이 실제로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억압된 삶인가 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학은 그런 몽상의 소산이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책의 중반부터는 한국문학의 역사를 흝는다. 번역되지 않은 한자, “일이나 일우려 하면 처엄의 사괴실가” 같은 알고 싶지 않는 고어들의 향연,, 교양으로 읽어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겠냐 말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책 250페이지 중100페이지가 넘는 부분을 할애한다. 하지만 나는 알튀세르의 존재론, 주지주의 어쩌구 할 때부터 이미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공자가 아니면 감내하기 어려운 100여 페이지를 행군처럼 터벅터벅 완주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100페이지가 넘는 <6. 한국문학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가> 챕터 읽기를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행군을 완주한 자가 느끼는 팡파레의 감동처럼 마지막 50여 페이지의 감동을 만끽할 수는 없으리라.
후반부에 춘원 이광수에 대한 대단한 비평이 실려있다. 춘원 이광수는 뛰어난 머리로 그의 친일행적을 방어했고 나처럼 얕은 지식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기 어렵다. 하지만 춘원의 문학관, 철학 깊은 곳까지 좇아가 뚝배기를 깨는 이가 있었으니.. 저자는 “그는 위대한 모순이었다”라며 멋지게 비평을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다시, 왜 문학을 하는가. 이시영의 시로 저자는 대답한다. 돌아보니 중간에 제시했던 이 시에 이미 답이 있었다.
이름
-이시영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
잠시라도 잊었을 때
채찍 아래서 우리를 부르는 뜨거운 소리를 듣는다
이 밤이 길어갈수록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한다
우리가 가기를 멈췄을 때
혹은 가기를 포기했을 때
칼자욱을 딛고서 오는 그이의
아픈 발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
대낮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형제의 찬 손일지라도
언젠가는 피가 돌아
고향의 논둑을 더듬는 다순 낫이 될지라도
오늘 조인 목을 뽑아
우리는 그에게로 가야만 한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장승이 되기 위해
*멋진 책을 선물해준 멋진 예신이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