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의 고백과는 달리, 4월이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계절인지를 몸소 느끼게 된 올해 4월이 다 지나가는 것이 아쉬울 즈음, 꼭꼭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모처럼 서울을 떠나 외곽으로 차를 몰고 나가보았다. 3월은 완연한 봄을 느끼기에 아직 설익은 느낌이라면, 4월은 그야말로 팝콘 터지듯, 다양한 꽃들이 팡팡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탓에 한 달 내내 카메라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
탁 트인 대지와 산과 들, 나무, 하늘, 바람.. 자연은 찬란하게 춤추고 있다. 유독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노란 꽃들이 눈에 띈다. 민들레다! 도시에서도 여기저기 발견되지만 한가득 피어있는 민들레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형체를 보기 어렵고 발에 밟히기도 쉽다. 잎사귀의 모양이 특이한 민들레 잎은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고 하여 dandelion(tooth of lion / dent de lion)이다. 농촌에 사는 친구 집에 갔더니 들판에 가득한 민들레를 따서 뿌리로 우린 차와 잎으로 만든 민들레 샐러드를 반찬으로 내어놓는다.
4월의 맑은 하늘 그리고 친구표 민들레 샐러드
잎을 깨끗이 씻어 발사믹 식초로 버무려 치즈가루를 살살 뿌려 만든 샐러드를 두 접시나 먹었다. 쌉싸름한 민들레와 소스가 잘 어울려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로 금상첨화다. 잎뿐 아니라 뿌리까지 버릴 게 없는 민들레라니.... 그저 땅과 가장 가까운 낮은 곳에 살아 눈에 잘 띄지 않고 발에 밟히는 민들레는 자기 몸을 온전히 다른 생명체를 위해 주고 있었다.
한 전설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 때 온 천지에 물이 차오르자 다 달아났는데 민들레만은 발(뿌리)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못 갔다고 한다.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다 세어 버린 민들레를 하나님이 가엾게 여겨 씨앗을 바람에 날려 멀리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민들레는 땅에 납작 견고하게 붙어있는 식물이다. 겨울엔 깊숙이 박은 땅속뿌리로 지내다가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잎과 꽃을 피우는데 원줄기가 없고 잎이 뿌리에서 뭉쳐나서 사방팔방 옆으로 드러눕기에 위에서 내려다보면 장미꽃을 닮았다 하여 로제트 rosette라고도 한다.
오래 땅속뿌리로 지낸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는 지를 말한다. 그의 생명력은 다른 생명에 유익하게 쓰인다. 칼슘을 함유하고 있어 골밀도에 좋고, 실리마린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간세포 재생을 돕는다 하여 암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이뇨작용을 도와, 체내 노폐물, 독소 배설을 돕는다. 뿌리를 우려 차로 만들어 마시는데, 시중에 티백으로 만들어 파는 걸 마셔보니 구수하고 쌉싸름해서 커피 대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바로 구매할 생각이다. 땅속에서 겨울을 나는 뿌리의 성질이 고스란히 다른 생명의 생명력에 기여를 하는 것에서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민들레 뿌리
우리가 흔히 도시 주변이나 농촌의 길가에서 보는 노란색의 민들레는 유럽이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꽃대가 짧은 편이고, 우리나라 토종은 흰민들레(Taraxacum coreanum, Korean dandelion)로 꽃이 아주 희다고 한다. 나도 여태 흰민들레는 못 본 것 같다.
민들레상투털(씨앗으로 번식하는 털뭉치)과 토종흰민들레
민들레 잎줄기에서 하얗고 쌉싸래한 액즙 이눌린(inulin)을 분비하기에 젖이 나게 하는 약제로 사용된다고도 하고, 민들레 순은 묵나물로 사용되고, 잎은 샐러드로, 뿌리는 우려 차로 마신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민들레는 흉년, 전쟁 따위로 기근(饑饉)이 심할 때, 즉 식량이 부족한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식재료로 이용되는 구황식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이다.
4.5월이 개화시기인 민들레가 지금 지천에 흐드러져있다. 민들레꽃이 지고 나면 솜방망이 모양의 씨앗 뭉치가 발견될 것이다. 호 하고 불면 바람을 타고 흩날리게 되는 씨앗을 불며 작은 몸으로 우리에게 자양분이 되는 민들레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찬란한 4월을 보내고 5월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달이기도 하고, 감사의 달이기도 합니다. 행사에 치어 계절의 의미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던 시절이 있었는데, 시간의 여유와 함께 하나하나 생각하게 됩니다. 꽃말이 감사라는 민들레! 과연 5월의 상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의 달. 고마운 사람을 떠올리며, 잎과 순과 뿌리 온몸으로 생명을 주는 민들레처럼, 나를 살게 했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도 민들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현듯, 감사의 달 고마운 사람에게 부담 없이 작은 마음 표현하고 싶을 때 민들레 뿌리차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이번 선물 목록의 하나로 정했습니다. 의미, 효과, 실속 3박자가 척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