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과 함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May 03. 2022

왈츠의 세계로

절망의 시간에 희망을





왈츠 하면 떠오르는 곡은 무엇일까? 소설이나 영화에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지만, 내게는 안나 카레니나 중의 안나와 브론스키 백작의 왈츠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쿵작작 쿵작작 세 박자 리듬은 음악소리와 동시에 당장이라도 일어나 춤을 추고 싶은 우리의 본능을 일깨운다. 왈츠가 성행했던 16-17세기와 지금의 춤곡 리듬과 비트는 다르지만, 여전히 왈츠는 우리를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다.


뜬금없이 왈츠를 꺼내 든 이유는 내가 활동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역 도서관 개관식 야외 연주곡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홀베르그 모음곡으로 문을 열고, 팔라디오와 세곡의 왈츠, 그리고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구성된 연주였다. 그중 세곡의 왈츠 이야기로 오늘 <음과 함께> 문을 연다.

      

1.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아주 귀에 익숙한 이 곡은 평화로운 세상의 아름다운 음악인 왈츠의 대표곡이다. 이 곡이 작곡된 19세기는 그야말로 왈츠의 전성기였다.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독일의 전신)과의 전쟁(1866년)에서 참패하여 국민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국민들을 위로하고 꿈과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곡으로 매년 열리는 오스트리아 빈 신년음악회의 단골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요한 슈트라우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2. 차이콥스키 왈츠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불행한 결혼생활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혹평을 듣던 참혹한 시절에 선배 작곡가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아 쓴 ‘현을 위한 세레나데’의 2악장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현을 위한 세레나데>에서 러시아 음악에 서유럽 음악의 정서를 담아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다가 53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고뇌는 고스란히 음악에 투영되었을 것 같다. 힘겨웠던 40세에 그는 왈츠를 통해 절망 가운데서의 희망, 그리고 사랑을 노래했다.

      

세레나데(Serenade)는 이탈리아어로 '저녁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집 창에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가리킨다. 17세기 ~ 18세기 이탈리아에서 기원했으며, 원래는 집 밖에서 치르던 파티를 위한 가벼운 연주곡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연주회용 악곡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길이가 길지 않은 실내악 형태로 차이콥스키 특유의 정서가 투영된 아름다운 곡이라 즐겨 듣는 이다. 전곡 다 감상 추천하며 2악장은 10분 34초부터이다.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3. 쇼스타코비치 왈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러시아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스탈린 정권의 눈밖에 나면서 늘 비밀경찰에 끌려가 숙청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많은 지인들이 실제로 숙청당하기도 했다. 그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미국의 재즈, 혹은 서유럽의 대중적 왈츠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계속 써왔다.   

  

이 곡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영화 중 안나와 브론스키가 왈츠를 추는 장면에 사용되었다. 쇼스타코비치의 불행한 상황을 반영하듯 왈츠는 편안하지만 슬픔이 묻어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라도 하듯 부드러우면서도 우울함을 숨긴 왈츠는 번지점프를 하다, 오징어 게임 등 많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만날 수 있다.




내 교향곡 대부분이 묘비다. 너무 많은 국민이 죽었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알지 못한다. 내 친구도 여러 명 그런 일을 당했다. 메이예르 홀트나 투하쳅스키의 묘비를 어디에 세우겠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눈여겨볼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상황이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힘겨운 상황이었다는 데 있다. 심리적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그에게는 음악이었고 음악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벗들의 죽음에 대해서 조차 마음껏 애도하지 못했던 그는 은밀하게 그 마음을 음표로 표현했을 것이다.   

  

올해 2022년 교향악축제에서 유독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 많았던 이유를 우크라이나 사태와의 관련성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대의 우울을 표현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심정과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독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오랜 세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오직 음악을 통해 그의 감정과 확신, 두려움과 고통을 표현했다    

 토니 크라인 현 스위스 오케스트라 총 연합회 이사장이자 통영 국제 음악재단 이사

  

시대적 배경과 작곡가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음악을 접하게 되면,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음악가나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작가나 그런 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느라 바쁠 때는 음악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음악을 잘 즐길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제안한다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컨대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 때 듣는 음악은 보조 역할이다. 대신 오로지 음악에 집중할 때 음악은 숨어있는 이야기를 걸어온다.     

  




쇼스타코비치의 슬픔과, 차이콥스키의 고뇌와 희망, 그리고 절망에 빠진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건네는 위로와 희망을 잠시 짬을 내어 만나보면 어떨까요? 음악이라는 새로운 언어에 빠져보기를 권해봅니다.  어려운 삶 속에서 왈츠로 희망을 이야기한 음악들을 만났습니다. 그냥 단지 유흥거리가 아닌 것 같네요. 쿵작작 3박자 왈츠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실제 왈츠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가요? Shall we waltz?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그(Grieg), 북유럽의 정서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