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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y 13. 2022

이 시대의 英雄, 당신에게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영웅 -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

      

누가 영웅인가? 사전풀이에 따르면 시대를 호령하는 정치인, 학자, 법조인, 예술가, 경제인 등 다수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 인플루언서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보통사람으로 살기가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베토벤 개인의 고통을 이겨내며 작곡가의 길을 걸어야 했던 영웅적인 면모와 시대를 구원하리라는 기대를 주었던 영웅 나폴레옹에 대한 기대감등을 생각하며 썼던 곡 영웅은,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바치는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영웅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헌정의 곡으로 생각하며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본다.      


베토벤 심포니 3번 영웅      

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3 in E flat major, op.55 ‘Eroica’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관현악단


이 작품은 1805년 4월 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중에 세 번째 교향곡으로, 당시 나온 모든 교향곡들 중 가장 파격적인 곡이자 베토벤의 중기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처음 표지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성인 Bonaparte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베토벤은 본에 있을 때부터 프랑스 대혁명의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이 기치를 내건 ‘자유, 평등, 박애’를 현실에서 구현해줄 영웅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시만 그가 대관식을 하여 황제로 즉위하자 실망감과 배신감에 악보 표지를 찢었다고 한다. 왼쪽 사진에 보면 보나파트르라고 쓴 부분을 마구 지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나파르트를 지운 표지와 초연당시의 악보표지


교향곡 제3번은 완벽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이며, 감정의 유연성과 정력적인 힘이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완성에의 정진이야말로 이 작품의 영웅적 성격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     


바그너의 극찬과 더불어 이 곡은 베토벤이 살아있을 때도 꽤 유명한 곡이었고, 9번 합창교향곡을 쓰기 전에 쿠프너가 가장 마음에 드는 교향곡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바로 3번 에로이카를 지목했을 정도로 베토벤 자신이 상당한 애착을 가진 작품이었다. 2016년 <BBC Music Magazine>에서 전 세계 저명한 현역 지휘자 151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1위가 바로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이었음을 볼 때도 이 곡의 유명세, 작품성을 반증해준다.  

   

교향곡이란?


베토벤이 9개나 쓰고, 많은 작곡가들이 작품으로 구현한 교향곡은 무엇인가? 영어로 심포니(symphony)는 같다는 의미의 sym과 소리를 뜻하는 phone이 합쳐져 이루어졌다. 그리스어로 심포니아(symphonia)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시에 울리는 음 또는 완전 협화음을 의미한다.


18세기 후반에 형식이 갖추어진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다악장 형식의 악곡이다. 피아노 소나타 등 많은 악곡이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교향곡은 현악 4중주와 만찬 가지로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의 빠른 악장이고 앞에 장중한 서곡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2악장은 완만한 속도의 느린 악장으로 전개되고, 3악장은 미뉴엣 또는 스케르초, 4악장은 론도 또는 소나타 형식의 매우 빠른 악장으로 이루어져 마지막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끝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해서 성립되어 가던 교향곡을 한층 더 완성시킨 것이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F.J. 하이든이다. 그 외에도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교향곡을 많이 남겼고 특히 베토벤은 고전파와 낭만파 교향곡의 분기점에서 낭만적 이념을 담은 더 자유로운 문학적 내용의 교향곡으로 발전되었다. 이어 슈베르트, 멘델스존, 리스트,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차이콥스키, 드보르작 등으로 이어지며 20세기 이르러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등이 개성적인 작품을 남겼다.


베토벤의 교향곡 3번의 1악장도 활기차고 빠르게 시작된다.      

1악장 Allegro con brio (활기차게 빠르게)     


임팩트 있는 강렬한 두 번의 사운드와 함께 시작되는 1악장은 영웅의 질주를 생각하면 좋다.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에게서 느껴지는 패기다. 두 개의 주제가 다양하게 확장되고, 리듬의 파격, 불협화음, 조바꿈 등의 다이내믹이 격렬하게 전해진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

  

2악장 Adagio assai (매우 느리게) 14분 47초    

 

'장송 행진곡(Marcia funebre)'으로 불리어지는 2악장에서는 1악장에서의 고조된 분위기가 갑자기 어둡고 우울하게 가라앉는다. 나폴레옹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이지만 중간중간 발고 드라마틱한 전개도 시도되고 극히 아름다운 선율이 이어진다. 베를리오즈가 "이 교향곡을 들을 때 나는 헤아릴 길 없는 깊은 고태(古態)적 슬픔에 잠긴다”가 말한 것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교향곡이 늘 그러하듯, 느리게 전개되는 2악장의 대비는 곡에 입체감을 준다.


3악장 Scherzo(Allegro vivace), 스케르초(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 31분 5초   

  

장중하게 끝나는 2악장과 달리, 스케르초 3악장에서 템포가 빨라진다. 음표 세 개가 한 박으로 취급되는 스피드를 느낄 수 있다. 약한 피아니시모와 스피드는 뭔가 강한 생명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긴장감을 초반부터 제공한다. 점점 포르테로 바뀌며 주제부의 선율이 강하게 전달된다. 중간 부분의 호른 세대의 사냥 나팔식 악구는 비장하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33분 54초 부분) 보통 호른은 짝수로 배치되는데 3대 배치가 특이한 점이다. 장송곡 같은 2악장을 뚫고 일어나는 생명력. 뭐, 영웅은 죽지 않는다 같은 메시지로 들린다.


4악장 Allegro molto (매우 빠르게)  37초 12

   

교향곡의 클라이맥스는 매우 빠르게이다. 주로 3악장의 빠르기와 같은 흐름을 타고 있어 3악장과 4악장은 거의 쉬지 않고 숨 고르기만 하고 바로 이어진다. 이전의 모든 것을 응축하여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장이다. 베토벤은 4악장에서 주제 하나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주했다. 눈을 감고 음악 속으로 들어가면, 온갖 다양한 장면들 속에 들어가게 된다.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 오르막 길을 오르는 장면, 하늘을 나는 장면, 그리고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 그 모든 장면들을 뚫고 솟구치는 생명과 열정... 음만이 묘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용기를 잃었을 때 이 4악장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속에서 에너지가 솟구치지 않을 수 없다. 아침 출근길에, 어떤 일의 시작을 앞두고 있을 때 들어보면 좋겠다.


베토벤 당시 로브코비츠 공작 집에서의 비공개 초연을 다룬 BBC 제작의 2003년작 TV영화가 있다. 당시의 풍경을 느끼고 싶다면 감상해보면 좋겠다. 극 중의 연주가들이 실제 연주가들이어서 음악과 연주 장면이 상당히 리얼하다. 당시 이 곡이 처음 공연되었을 때 파격적인 표현에 대한 사람들의 당황스러움을 읽을 수 있다. 폭력적인(violent)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스승인 하이든은 상당히 새롭다(quite new)라는 평을 한다. 영화 전체가 온전히  이 곡 전체와  함께 진행되는 음악을 위한 영화다. 이 곡 특유의 힘이 나치의 영웅주의와 맞아떨어져 "합창"교향곡과 함께 행사에서 즐겨 사용했다고도 하는데, 원래 작곡가의 정신과는 어긋나는 것 같다. 2악장은 유명인사의 장례식에서 연주되기도 하고,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사이코>에서도 이 곡이 인용되기도 했다.     


Beethoven's Eroica - A film by Simon Cellan Jones - BBC 2003




 


소설이나 연극 작품에도 기승전결이 있듯이, 음악의 일정한 형식이 있습니다. 1악장에서 4악장으로 진행되는 과정의 스토리라인이나 흐름을 알고 음악을 들으면 그 맛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베토벤 당시의 시대적 영웅에게 헌사한 곡이지만, 동일하게 이 시대 우리의 영웅들에게 바치는 곡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겠네요.  다른 영웅 말고, 바로 우리 자신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 자신에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베토벤이라는 악성樂聖이 던지는 이야기로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살아내는 우리는 모두 영웅입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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