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과 함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May 21. 2022

장엄한 슬픔 너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8 비창悲愴  


지난번에 소개한 교향곡 영웅이 베토벤 중기 작품이었다면, 오늘 소개할 작품 피아노 소나타 No. 8 비창 Pathetique은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비창 소나타는 월광 소나타 및 열정 소나타와 함께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중의 하나이다.


독일의 본 출생이었던 베토벤(1770-1827)은 22세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하여 좀 더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는데 이로부터 30세까지의 시기가 초기에 해당한다. 작곡가뿐 아니라, 즉흥연주의 달인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 시기에는 스승이었던 하이든에게 헌정한 피아노 소나타 1.2번 작곡을 시작으로 피아노 소나타 10곡, 바이올린 소나타 3곡 교향곡 작곡까지 청년 베토벤의 작곡 능력이 폭발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 곡이 피아노 소나타 비창으로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당시 음악인들에게는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할 수 있기 위해 후원자가 동반하기 마련이었는데 그를 후원한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이 따로 소나타의 이름을 붙여 출판하는 것이 드물었지만, 단독 출판으로 비창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었다. 사실 pathétique은 불어로 '비창(悲愴)한'이 아니라 '비장(悲壯)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슬프고 장엄한'이 좀 더 정확한 뜻으로 보인다. 출판 이후 악보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흥행했고 베토벤의 명성이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소나타라는 명칭을 갖는 악곡은 16세기 중엽에 출현한 이래 오늘까지 형식 내용은 다양하다. 이탈리아어 Sonare (울린다, 연주한다)에서 연유하여 구체적인 양식을 가리는 것은 아니나 오늘날 소나타 형식은 특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17세기 중엽부터 준비되어 고전파 특히 베토벤에 의해 완성된 후 낭만파로 계승된 형식으로서,   대개 1악장은 allegro(빠르게), 2악장은 andante(느리게)나 moderato(보통 빠르게), 3악장은 allegro(빠르게)로 구성되어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8 비창悲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 8 비창(pathétique)은 26세부터 청력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베토벤이 28세(1798년) 때에 만든 곡이다.


Beethoven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Pathetique' op.13  /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1악장 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장중하게라는 가장 느린 템포 Grave로 비극적인 느낌의 도입부로 시작하다 중간에 Allegro di molto로 바뀐다.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C단조의 으뜸화음이 인상적이다. 도입부 선율은 서두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악장 전반에 계속 인용되며 여러 번 등장한다. 음악가로 치명적인 청각이상으로 인한 고뇌였을까? 그의 암울하고 깊은 슬픔과 격정이 오롯이 녹아있다. 비통함, 절규, 격정, 분노, 한탄, 눈물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장중하게 시작하는 1악장 도입부


2악장 Adagio cantabile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이 흐른다. 2악장은 출판 당시에도 매우 인기 있었고 지금도 인기는 여전하다. 악보에 노래하듯 연주하라(cantabile)는 지시가 있고, 주제의 선율미를 강조한 듯하다. 구성 주제가 여러 번 반복되어 론도에 가까운 형식이다. 1악장의 격정, 비통의 마음에 안정을 얻은 것일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희망이 엿보이는 악장이다.      


3악장 Allegro   


연속되는 불안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표현했고, 비창을 가장 인기 있는 곡이 되게 한 이유도 바로 이 3악장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론도 형식이며 주 조성인 c단조로 복귀한다. 경쾌하고 아름답게 시작하다 격정으로 다시 경쾌함으로 다시 격정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한다. 후반부로 가며 더욱 격정적인 사운드와 차분한 느낌이 교차하는 감정을 묘사했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듯한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1악장의 비장한 느낌이 2악장, 3악장으로 넘어가며 아직 청년이었던 베토벤의 희망을 향한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곡이다. 슬프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 곡을 들으며 슬픔을 넘어 희망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과정을 함께 걸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울 때 이 곡을 좋아했다. 어려서 곡에 대해 제대로 파악도 못했지만, 극한 대비가 좋았던 것 같다.  

   

연주자 바렌보임 

 

연주자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이스라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다. 이스라엘, 아르헨티나, 스페인, 팔레스타인 무려 4개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파리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베를린 국립가극장, 밀라노 스칼라 가극장의 음악 감독을 역임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명예지휘자다. 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음악감독이다.  

    

피아니스트로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성과이고 지휘자로서도 정통 독일 레퍼토리인 베토벤 교향곡 전곡이 주요 레퍼토리 일정도로 베토벤에 대한 애정이 깊다. 영국의 유명한 첼리스트 재클리 뒤 퓌레와의 결혼, 그리고 불행한 결혼생활 등의 사생활이 있지만, 음악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특히 유대인이면서도 이스라엘의 군사, 정치적 행태에 철저히 반대하는 견해를 보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합을 위한 청소년 관현악단이 인상적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 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8년에는 팔레스타인 명예 시민권을 받았는데, 이렇게 해서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이스라엘-팔레스타인-스페인의 4중 복수국적을 가진 전무후무한 음악인이 되었다.     


베토벤은 파워가 있는 남성 연주자의 연주가 어울리는 것 같다. 파워풀한 바렌 보임의 연주와 차분한 감성을 드러내는 조성진의 연주를 비교해 들어보면 그 감흥이 남다를 것 같다.      


Beethoven 'Pathetique'2악장. 조성진

조성진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한국인이 된 것을 계기로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 연주자로 떠올랐다. 2011년, 서울예고 2학년 재학 중에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3위에 입상했는데 입상 순위뿐만 아니라, 당시 결선 진출자들 가운데 최연소였다. 원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은 만 18세 이상이 참가할 수 있었으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조성진의 연주를 듣고 조성진의 콩쿠르 참가를 위해 참가자 허용 연령을 만 16세로 낮춘 덕에 조성진이 참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조성진의 실력을 반증해주는 유명한 일화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대중화 흐름에 대해서는 클래식 음악이 대중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무리하게 변질시키는 것보다, 클래식 음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일반 음악팬들이 보다 많아지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여하튼 조성진을 통해 클래식 팬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베토벤의 청력 이상의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당시 발진티푸스를 앓은 이유에 가능성을 두기도 하는데 이곡을 작곡하기 2년 전인 26세부터 청력 이상을 느꼈다고 하네요. 음악인에게 소리가 절대적인 것을 감안할 때, 그의 고뇌는 컸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물론, 청력 외의 다른 고뇌도 있었겠지요.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녹여낸 베토벤을 악성樂聖이라고 하는 이유를 음악을 들을수록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도 귀한 감정인 듯합니다. 슬픈 감정을 그대로 받으며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선율을 타고 감정이 진해지다가 어느새 희미해지기도 합니다. 혹시, 마음이 울적하시다면, 베토벤이 선사하는 선율 속에 들어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 시대의 英雄,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