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위대한 집단행동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영화 <새>를 보면 갑자기 많은 새들이 집단적으로 몰려와서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영화를 보면 새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기도 하고, 실제로 새를 무서워해서 비둘기 근처에도 못 가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한가운 주말 오후, 화창한 날씨에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들의 소리가 유난히 크다. 온갖 새들의 합창이라고 하기엔 좀 색다른 소리이기도 하고, 유난히 새가 많이 날아든다. 히치코크의 새 장면과 비교할 수 없지만, 언뜻 그 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되듯, 갑자기 새가 아파트 근처에 많이 모여든다. 게다 시끄러운 소리까지.
거실 창문을 통해 내다보니 어느 지점을 많은 새들이 배회하고 있다. 아! 실외기 난간에 꽤 몸집이 큰, 그러니까 그동안 주로 익히 보아온 새 크기의 3-4배는 될 만한 까만 새가 앉아있다. 평소에 보기 힘든 큰 새가 여길 왜? 불길한 예감. 순간 소름이 끼쳤다. 아! 들켰구나! 저 녀석의 목표물은 바로 아래쪽의 새 둥지에 태어난 7마리 아기새! 상황을 인식한 순간 심장이 벌렁거렸다. 저 녀석이 잽싸게 낙하하여 바로 새끼들을 물어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지? 몸이 얼어붙는 듯하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지켜볼 수밖에.
아파트 주민들은 새들의 집단 움직임에 의아했을 것이지만 유일하게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의 탄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의 탄생을 발설하지 않고자 했으나 몇몇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 것을 순간 후회했다. 혹시 내가 한 말을 정말 새가 들었단 말인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있잖은가! 시끄러운 새들의 소리와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었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집단행동.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새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날갯짓을 하며 큰 새를 위협하기를 여러 마리들이 번갈아 한다.
"꽥! 꽈라락! 삐삐 쭈루루룩! 꾸아악 꾸아악 꾸아악! "
"야, 너 빨리 딴 곳으로 안가? "
"너 아기 새 건들면 나한테 혼나는 줄 알아!"
"얘들아! 빨리 와서 이 녀석 혼줄을 내자!"
"빨리 친구들한테 알려, 비상사태야!"
"저 녀석이 새끼들을 노리고 있어!"
그야말로 새들의 전투였다. 간혹 어떤 새는 정말 용감하게 큰 새를 향해 근접하며 날갯짓을 하기도 했다. 아마 아빠 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새들의 위협에도 의연하게 앉아있던 검은 새는 갑자기 새가 많아지며 자신을 집중 공격하는 것에 위협을 감지하고 결국 퍼드득 날아 올라 도망가기를 선택한다. 검은 새가 한 마리이기 망정이지, 만약 검은 새가 친구들을 대동하고 집단으로 온다면 어른 새들로서는 속수무책일 듯한데... 아기새를 지키던 많은 새들은 동시에 달아나는 검은 새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일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그 시끄러운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멀리 쫓아내 버렸을까? 하늘에서 전투가 벌어졌을까?
거의 순간적으로 포착한 이 장면. 검은 새는 귀퉁이에 숨겨져 있는 아기새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아기새가 위험한지 새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동료 새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어떻게 무슨 신호를 듣고 찾아왔을까? 새들의 언어... 이 모든 것이 궁금했다. 게다 저들은 동료가 아기새를 낳은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기새가 태어나고 나서 새들은 유독 즐거워하는 듯했다. 어미새만 둥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새들이 둥지를 기웃거리며 탄생을 축하하는 듯했다. 새들의 소리만 들어도 그들의 감정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공기가 험악해졌다. 비상등이 켜졌다. 검은 새가 사라지고 나서도 새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새소리가 험악하니, 우리 집 양이가 거실 베란다를 떠나지 않고 새들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덩달아 양이까지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 밤이 위태롭다. 밤사이에 검은 새의 표적물이 되기라도 한다면.... 그렇다고 새둥지를 딴 곳으로 옮길 수도 없고.
아기새들은 이 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생명이 태어나 하나의 완전한 새로 비상하기까지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하니, 새삼 모든 생명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알 중에서도 하나는 여전히 부화되지 않고 있다. 태어나서도 자주 이런 외부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아기새들은 날갯짓을 하게 되면 둥지를 떠나 세상으로 날아간다. 그러니 생명 하나하나가 얼마나 위대한가!
오늘의 위험한 광경을 보며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하루라도 빨리 아기새들이 자라 어서 둥지를 떠나기를 바라게 된다. 아기새들이 다 떠난 빈 둥지를 보는 마음은 허전하기 그지없겠지만 적어도 저 검은 새의 위협으로부터 이들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아니 세상으로 날아가더라도 더 큰 위협이 끊이지 않겠지만 스스로 날아 위협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나갔으면 좋겠다.
막대기를 휘둘러서라도 검은 새가 가까이 오면 둥지를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련히 어른 새들은 지혜롭고 용감하게 대처해주었다. 새들에게도 영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새들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새들은 위대하다. 오늘도 나는 새에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