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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n 08. 2022

바흐를 아시나요?

묵묵히 자기 길을 가라

        

바흐를 아시나요?

      

바흐는 내가 피아노를 배울 때도 하논, 체르니처럼 마치 연습곡 같은 느낌이 들었고 별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쇼팽 등의 곡에서 느끼는 기교, 아름다움 같은 것을 느끼기 힘들었던 곡이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딱딱하고 근접하기 힘든 바흐의 곡이지만, 분명한 것은 들을수록 질리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흐의 곡은 음악 전공하는 사람들의 교과서에 해당할 정도로 훌륭한 대위와 화성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바흐의 곡을 피아니스트 임현정 씨가 공연장에 올렸다. 2022년 6월 4일 바흐 렉쳐 콘서트.      


새로운 사실은 바흐의 곡에 춤곡들이 있다는 점이다. 지가, 미뉴엣, 부레, 사콘느 같은 것이다. 지가는 주로 서민층의 춤이고, 미뉴엣은 귀족, 왕족들의 춤으로 설명을 듣고 연주하는 곡을 들으니 느낌이 확연히 다르고 춤추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바흐의 샤콘느를 들으니, 바흐에게도 저런 열정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임현정 씨의 샤콘느는 정말 새로운 느낌의 곡이었다.      


샤콘느(chaconne)는 바로크 시대의 춤곡 형식이다. 느린 4분의 3박 무곡이기에 어두운 단조풍이 많다. 원래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유행한 춤곡에서 유래했다. 샤콘느는 바로크 기악 모음곡의 일부를 차지하던 한 양식으로 비탈리의 '샤콘느'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이 유명하다.  우선 기존의 바흐 샤콘느 연주를 먼저 감상해보자. 오늘처럼 흐린 날씨에 어울리는 묵직한 바흐의 샤콘느 바이올린 곡과 부조니 편곡의 피아노곡으로 들어가 본다.


정경화 Bach Chaconne from Partita No 2 in di minor, BWV 1004

  

명불허전 우리의 정경화 씨의 예배당 안에서의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장엄한 슬픔과 경건함이 지배적이다. 비극적 느낌의 바이올린 더블 스토핑, 그리고 완벽한 대위와 화성 구조로 유명하다. 더블 스토핑은 현악기의 두줄을 한꺼번에 내는 소리인데 비극적 느낌의 음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바흐의 바이올린 연주곡 샤콘느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페루초 부조니 (Feruccio Busoni, 1866년 – 1924)는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바흐의 샤콘느에 크게 감동을 받은 브람스가 피아노곡을 편곡했지만 그에 비해 부조니의 편곡이 월등히 피아노의 특성을 살린 편곡으로 알려져 있다. Helene Grimaud의 곡으로 감상해본다. 바흐의 느낌과 맞아떨어지는 교과서적인 정서의 Helene는 책을 들고 강단에서 강의를 해도 될 법한 느낌이다.      


Bach, Busoni - Chaconne in D minor BWV 1004 - Helene Grimaud


지금은 바흐가 음악계의 전설 자리에 군림하고 있지만, 그가 생존했던 당시는 상황이 달랐다. 10살에 고아가 되어 어려운 환경에서 음악공부를 이어갔고 당시 대부분의 음악인들처럼, 궁색한 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음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은 당대에 빛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결국 별 같은 존재로 빛나게 된다.   

   

10살에 부모를 여의고 형의 집에 얹혀살게 된 어린 바흐. 어떤 계기로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공부를 하게 되고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을 하게 된다. 존경하는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한 달의 휴가를 받고 왕복 1000킬로나 되는 길을 걸어갔다 온다. 아내의 죽음, 그리고 재혼, 아이들의 교육으로 인한 이사, 일자리 지원 등의 일상의 고민 속에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한다. 우리가 지금 그에게 부여하는 정도의 인기를 받기는커녕, 생활고에 시달리며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그였다.   

   

당연한 엄격한 음악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바흐가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여러 가지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그의 음악은 다양한 색깔로 다가온다. 그 안에 춤이 있고, 열정, 낭만, 번개 치는 듯한 강렬함, 환한 미소,... 감정 없는 교과서가 다양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바흐와 춤을

임현정의 바흐 렉쳐 콘서트      


프레임에 갇혀 숭배되는 음악가가 아닌,

지금 ‘현재’ 말하고 춤추며 바흐의 본질을 찾아가는

Dancing Bach with HJLIM      

바흐: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바흐: 평균율 중 프렐류드와 푸가

바흐-부조니: 샤콘느      


바흐 렉쳐 콘서트 타이틀처럼 엄격한 이미지의 바흐에서 벗어나 열정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바흐를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강의식으로 풀어가며 임현정 씨가 바흐를 공부하며 알게 된 문헌 자료, 바흐의 일생에서의 에피소드들의 소개는 바흐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들어가게 했다.  

    

공연 전에 무대 위에 배치되어 있는 악기는 합시코드, 오르간, 그리고 네 대의 피아노. 네 명이 함께 피아노를 칠까? 설마 혼자서 저 네 대의 피아노를 옮겨 다니며 치게 될까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보았는데.....      


무대위에 설치된 오르간, 하프시코드, 그리고 네대의 피아노


바흐 당시에는 현재의 피아노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당시의 분위기를 실감 나게 느끼게 하기 위해 합시코드, 오르간 연주를 선사했다. 합시코드는 건반악기이지만 현을 튕겨 소리를 내는 구조이고, 오르간 역시 건반을 눌러 파이프를 통해 소리가 나는 구조인데 이들의 하모닉스가 특징적이라고 한다. 네 대의 피아노를 서로 맞닿게 붙임으로 한 대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에 대해 다른 악기들에서 같은 공명과 화음이 되는 다른 소리가 나는 효과를 설명하며, 굳이 네 대의 피아노를 배치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소위 말하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 같은 형식인데, 연주자 본인이 진행과 연주를 다 커버하는 것이 집중력에 방해가 될 터인데 무대 장악력이 돋보였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관객으로 참여했고, 이미 sns를 통해, Q&A를 위한 설문과 신청곡들을 받는 등 관객과의 소통이 돋보였다. 2부 순서는 주로 신청곡 사연을 소개하고 곡을 연주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11곡이나 연주를 하는 바람에 공연시간이 거의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번 공연은 5개월간 전국 도시를 돌며 투어를 진행했고, 서울 공연은 투어 대장정의 피날레에 해당하는 공연이었다. 임현정 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의상과 긴 머리는 마치 흑조를 연상케 한다. 바흐 음악에 불어넣은 임현정식 호흡이 바흐 음악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개인적으로는 음악만 감상하고자 했던 기대가 있어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강의를 통해 또 새로운 사실들을 배우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과 소통하는 색다른 시도가 바람직해 보였다.             


                  




이전에 소개한 피아니스트 카티나 부니아티쉬빌리는 의상과 몸짓을 음악에 더하여 연주를 한 것과 대조적으로 임현정 씨는 오로지 음악만을 드러내기 위해 항상 검은 옷을 입어 자신을 숨긴다고 합니다. 연주자마다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 다양한 대로 새로운 맛이 있습니다. 기존의 엄숙한 바흐의 풍을 벗어나 춤추는 바흐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타이틀을 걸고 진행된 연주의 독특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경화 씨의 바이올린 연주, 헬레나 그리모드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임현정 씨의 춤곡으로 해석된 바흐의 샤콘느는 이처럼 앞으로 얼마든지 무궁무진한 해석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이 있다면 바로 바흐의 음악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당대에는 인정받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울림을 주는 음악을 가능케 했던 바흐의 묵묵히 걸어간 자기의 길을 생각해보며, 인생선배로서의 바흐에게 한 수 배우게 됩니다. 자주 낙담하고, 실망하게 되는 현실 앞에서 이런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를 보며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바흐의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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