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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n 03. 2021

우체국, 아날로그에 대한 기억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오늘은 비요일. 엄마가 붙여주던 자자작 김치전 소리와 냄새 그리고 더불어 흘러나오는 포근함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글 친구들과 함께 쓴 첫 책  <글로모인사이8기>가 발간되어 먼저 받은 책들은 아이들한테 한 권씩 선물하고 지인 몇몇 분에게 선물할 용도로 추가로 몇 권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POD( Published on demand ) 방식은 재고, 인쇄 경비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문과 동시에 인쇄에 들어가기에 신청하고 일주일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 책 첫 장에 친필로 감사의 글 몇 자 적고 택배 신청을 위해 우체국에 갔다.


비 오는 날 우체국.

바람에 꽃 잎 떨구는 나무 옆에 있을 법한, 이별과 만남의 설렘 있는 기차역 옆에 있을 법한, 낭만의 시골 우체국 아닌 그냥 흔하디 흔한 건물 귀퉁이에 위치한 심심한 도시의 우체국. 그래도 빨간 우체통, 우체국의 빨간색은 어딘가 묻어 있는 과거의 지점들로 나를 연결시킨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설렘, 편지를 넣기 전의 망설임, 기다림에의 배반 앞의 슬픔…


풍경이 바뀌어 딱딱한 건물 입구부터 발열체크, 마스크 착용 공지 문구가 기다리지만, 나는 이미 저 멀리 시간 열차를 타고 옛 우체국의 향수 속으로 들어간다. 직접 보낼 책과 간단한 선물을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포장하고 손글씨로 주소를 쓴다. 오랜만의 아날로그 기억.  직원도,  생면부지의 우체국 손님도 오랜 동네 사람 같다. 내가 혼자 싱글거리는 걸 알리는 없겠지.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책의 첫 페이지에 감사의 글은 이렇게 썼다.


누추한 일상 

그 위에 핀 

작지만 

고귀한 꽃을 


우리의 우정 위에 

바칩니다. 


혼자서 피워낼 수 없는 꽃, 함께 피워낸 꽃, 네가 있어서 가능한 꽃,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숨결, 손길을 먹고 피어날 수 있었던 꽃. 꽃은 혼자 필 수 없다. 우리의 삶도 혼자 필 수 없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구절이 기억난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날 저물도록 몰랐네   /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연말이면 풍성한 시상식에서 왜 수상자들이 그 식상한 감사인사를 이름을 나열하며 하는지 알 법하다.


내 작은 꽃 앞에

함께 피워낸 손길들에 대한 감사가

우체국 아날로그 기억과 더불어

풍성해지는 비요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127nwNpegQ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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