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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n 04. 2021

새를 듣는 기쁨, 聖

김혜련의 <고귀한 일상> Variations



새를 보는 기쁨


하루에 수백 번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새.

오로지 입만으로 존재하는 새끼.

새끼의 재재거리는 소리와

벌어진 커다란 입은

어미에게 끝없이 먹이를 몰고 오게 한다.


먹이를 물어다 주고

똥을 물어다 버리고.


십여 일을 기르면 새끼는 깃털이 다 돋고,

어느 순간 날 준비가 된다.


첫날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혼자 먹이도 구하지 못하니

어미 새가 따라다니며 먹이를 물어다 준다.

사나흘 후 새끼는 홀로 난다.


어미와 새끼는 서로를 잊는다.


새의 본능,

새의 몸에 새겨져 있는 자연의 섭리.

이것이 성聖이다.

존재의 깊은 층과 만나는 순간이다.


어떤 날은 양은 냄비같이 얇은 존재의 층을 지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새 한 마리를 바라보는 게 깊은 기쁨이 되기도 한다. 


<김혜련, 고귀한 일상 169-170 쪽>


양은냄비? 새 한 마리?


김혜련에 의하면 인간이 새보다 못할 때는 양은 냄비같이 얇을 때, 존재의 깊은 층을 경험하지 못할 때이다. 새끼 새가 어미를 떠나 홀로 나는 순간을 새의 본능, 새의 몸에 새겨져 있는 자연의 섭리, 존재의 깊은 층과 만나는 순간으로 표현했다. 성聖의 순간, 거룩한 순간, 신비로운 순간이다.


아침부터 어제의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음이 분주하고 머리는 복잡하다.

삶은 무겁다. 갈등이 있고, 주춤거리고 있다.

6월이 되어 제법 날씨가 낮에는 덥고

아침에 창문을 열어 공기를 시원하게 할 필요를 느낀다.

가만히 앉아 물 한잔을 마시며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들이 둥둥 떠다닌다.

집 앞 언덕의 숲에 언제 왔는지 각양각색의 새들이 노래를 한다.

언어가 필요 없는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저리 하는 걸까?


무슨 소리를 내는지 귀 기울인다.

도저히 인간의 언어로는 옮길 수 없다.

억지로라도 가장 유사한 음성들을 나열해본다.


쑤륵쑤륵 꽤애액

쭈쭈쭈

큐욱 쑤욱

휘이휘이

꾸애액 쬐애애애애액

어떤 새는 분명하게 솔라미도레 음으로 노래하는 것 같다.

음악적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새와 관련한 노래, 곡들을 지은 것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얘들아! 아침이야.

어젠 비가 와서 답답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아.

신단다. 오늘 어느 숲에 가볼까?


엄마, 밥 줘.

아까 줬잖아.

그래도 배고파


어머 친구들 반가워 호호

나 오늘 어때 멋지지?


온갖 새들의 소리. 이런 이야기일까?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의 표현인가? 청량한 저 소리 저 새들 부럽다. 이 아침에.


도시의 숲에서는 새소리만 들리지 않는다.

꽈아아아앙 비행기 소리가 땅을 진동한다.

뽀잉뽀잉 사이렌 소리

어디선가 부우웅 하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재잘재잘 사람들 소리

온갖 소리


자연과 도시의 심포니에 취해, 聖


새소리와 도시의 온갖 소리가 어우러져 심포니를 이룬다.

함께 소리 낸다는 뜻의 symphony.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소리들이 절묘하게 불협화음을 이룬다.

심포니에 취하다 보니

둥둥 떠다니던 마음들이 온데간데없다.

나는 숲과 하나가 되어 있다.

존재의 깊은 층일까? 

살아내는 또 다른 일상이 나를 부르지 않는다면

더 머물고 싶다. 이 자리에.


새야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

양은냄비 같은 사람 말고

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 김혜련은 자연의 세밀한 관찰을 통해 새가 일 년 중 봄에 가장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고귀한 일상 4쪽>  6월이면 봄인가? 여름에 다가가는 봄 즈음? 봄의 끝자락? 어느 쪽이든, 새들의 노랫소리가 뜸해지기 전에 저들의 노래를 듣는 기쁨. 새를 듣는 기쁨, 聖을 많이 누리고 싶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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