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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n 06. 2021

잠시, 카잔차키스

나는 자유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카잔자키스의 묘비명으로 유명한 말. 나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싶은데 어쩐 일인지 살다 보니 경험하게 된다. 아주 가끔씩 말이다.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지? 두렵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고, 비참하기도 했고, 만족스럽기도 했고, 아무 일 없이 편안하기도 했고, 실망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했고, 기계처럼 굴기도 했고, 진하게 살기도 했다. 그야말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오늘의 점심 아들표 냉면



어디를 가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은 후 집에서 쉬는 것이 좋아졌다. 일요일이면 그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관성을 멈추고 나를 집에 들어 앉히기 시작했다. 모임도 줌으로 하고 함께 가족과 점심식사를 만들어 먹고, 청소를 한다. 반짝반짝 공기가 주는 쾌감에 잠시 앉은자리 위로 나른함이 몰려온다. 그리고 달콤한 졸음. 열어놓은 창으로 오늘은 더 사랑스러운 새들의 소리. 봄에 그리 새들이 아름답게 우는 것은 짝짓기를 위한 구애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오늘따라 로맨틱한 소리가 공기를 쩌렁거린다. 사랑의 언어는 아름답다.



말라있던 작은 화분들의 잎사귀들이 물샤워로 촉촉해졌다.


다시 나는 존재의 깊은 층으로 향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어느새 숲 속에 있다. 귓가에 새소리, 푸드덕 새들의 비상, 나무 냄새 풀냄새와 함께 코끝을 간질이는 부드런 바람 손결, 그리고 고요. 그 안에 있다.      


카잔차키스도 부럽지 않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시 지옥으로 떨어질지언정.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잠시,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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