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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n 26. 2022

피아노와 관현악의 대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브람스 하면 어떤 곡이 떠오르는가? 

 

Brahms: Hungarian Dance No. 5 / Abbado Berliner Philharmoniker


이 곡은 우리의 귀에 아주 익숙한 음악이다. 요하네스 브람스가 편곡한 '헝가리 무곡' 5번.  독일 출신인 브람스는 1853년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연주 여행을 하면서, 헝가리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헝가리의 춤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69년에 16년간 모은 헝가리 집시 음악을 모아서 '헝가리 무곡 집' 1, 2권(No.1-No.10)을 발표하며, 이후 1880년에 3, 4권(No.11-No.21)을 발간했다. 찰리 채플린의 명화 《위대한 독재자》에 헝가리 무곡의 리듬에 맞추어 면도하는 장면은 채플린 특유의 표정과 동작이 가미되어 멋지게 연출되었다.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 중 헝가리 무곡이 나오는 장면 

 

음악시간에 접했던 사진으로 기억하는 수염이 한껏 난 브람스는 그저 후덕한 할아버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자신의 영혼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오늘 소개할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의 첫 관현악곡으로 청년시절의 작품이다. 

     

잘 알다시피 브람스의 스승이었던 슈만은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고 1854년에 자살을 기도했다. 그 이후 브람스는 바로 슈만의 가족을 보살펴주었는데,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향한 마음이 연모의 감정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클라라는 당대 미모와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였다. 


    

클라라 


1856년 슈만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이 협주곡을 다듬으며 1857년에 마지막 악장을 완성하고 1858년에 첫 시연이 되었다. 이 곡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관현악 장르로 도전한 것이 브람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고, 결국 협주곡으로 변경함으로 스케일을 축소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브람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베토벤의 교향곡 9번과 피아노 협주곡 3번,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영향을 받은 이 곡은 브람스 자신만의 교향악적 협주곡의 시발점이 되었다.      


제1악장: 마에스토소(장엄하게), D단조    


팀파니의 강한 진동, 오케스트라의 강렬함으로 시작하는 1악장의 느낌은 장엄함이다. 기묘하고 섬뜩할 정도의 강렬한 트릴이 주제부를 이루며 반복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투쟁의 분위기와 비극적으로 들리는 숙명적 이미지가 교차된다.      

곧이어 극한 대비의 피아노 선율이 등장한다. 피아노의 서정성은 이야기하듯 부드럽게 나타난다. 투쟁적 이미지의 관현악과 서정적인 피아노의 주고받는 대화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다 폭발하듯 절정에 이른다.      


제2악장: 아다지오(아주 느리게), D장조


아다지오의 느린 2악장은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작곡 당시 젊은 20대 청년이었던 브람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1악장과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관현악은 대화를 이어간다. 음들이 이렇게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듯하다. 

     

브람스가 언제부터 스승의 아내였던 클라라를 연모했는지는 몰라도 이 곡에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감정이 녹아들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당연하지 않을까? 작곡가의 표현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의 어떠함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 그가 결혼을 포기하고 연모하기까지 한 사람에 대한 감성이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표출되지 않았을까? 또한 자살을 기도하며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어간 스승 슈만에 대한 애도, 슬픔, 그리움 등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온갖 복잡한 그의 감정의 잔상을 느낄 수 있고 그 상념과 감정이 종교적으로 승화되는 것을 표현했다.    

 

제3악장: 론도. 알레그로 논 트로포(빠르게, 지나치지 않게), D단조


마지막 악장은 경쾌하고 활력이 넘친다. 지금까지의 고뇌를 뚫고 승리를 지향하는 이 악장은 희망을 노래한다. 클라라는 슈만이 죽고 난 후 일곱 자녀를 키우는 슈퍼맘으로 살았다. 브람스의 감정에 대해 선을 그었고, 둘은 음악적 동지로 남았다고 한다. 

    

이 곡은 초연후, 클라라로부터는 칭찬을 받았지만, 다른 관중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 반응에 충격을 받고 브람스가 두 번째 협주곡을 쓰기까지는 2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번스타인의 지휘와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연주로 감상해보자.      


Brahms piano concertos / Krystian Zimerman and leonard Bernstein 

     

6월 17일에 예술의 전당에서 티에리 피셔가 이끄는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의 협연으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연주되었다. 발표 당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곡이지만 브람스를 느끼게 해주는 가장 강렬한 곡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협주곡임에도 관현악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총 연주시간이 50여분에 달하는 청년 브람스의 포부가 느껴지는 곡이다. 스위스 출신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에 의해 연주되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았다. 격정이 넘칠 때 보통 연주자들의 팔이 위로 솟구치는 것과 달리 그의 팔이 오른쪽으로 쭉 뻗어나가는 모습이 특이했다. 그만큼 온몸으로 연주에 몰입했다는 증거이리라. 


요즘 격무에 시달리는 나를 위로하려 금요일 퇴근 후 공연을 찾았다. 음악회를 갈 수 있다는 생각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파김치가 된 몸이지만 즐거운 기대를 갖고 연주회 장소에 갈 때의 설렘은 달콤하다. 코로나로 삭막해졌던 공기는 다시 활력을 찾고 있었다. 다시 들리는 예술의 전당의 야외 음악소리와 분수대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럼에도 연주 감상 시간에 그만 중간중간 졸고 있는 너무 피곤한 나의 몸을 보며 조금은 속상했다. 



2022 서울시향 티에리피셔 지휘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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