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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Oct 23. 2022

격리의 추억

퇴원하고 나는 서랍 정리를 했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은 시간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글로 남기기로 했다. 내 기억력이 점점 희미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경험에 공감하는 사람과 같이 고개를 끄덕여보기 위함이고 나와 같은 경험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 위함이다.     


가장 무서운 병 격리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했다. 즉, 희망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생명이 없는 죽음에 이른다. 다시 말해서 희망이 있으면 살 수 있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삶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붙들려 애쓰고 있다. 쉽지 않지만 말이다.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살짝 변형시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장 무서운 병은 격리(isolation)! 

   

3여 년 만에 비대면이 대면으로 바뀌며 꽤 일상이 복구되었다. 제한되었던 모임이 재개되고 좋은 계절 가을에 온갖 축제가 개최되고 그동안 보기 드물었던 인파를 구경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긴장을 덜 해서일까 용케 비켜갔던 코로나에 덥석 물렸다. 꽤 긴 시간 포즈를 눌러 작동이 일시 정지된 기계처럼 일정기간 내 삶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문자 그대로 정지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후통, 열, 몸살 등을 동반하는 호흡기 증상이 나타났다. 감기 앓듯 며칠 쉬면 될 것이고 감염성이 있는 병이라 의무 격리기간만 지나면 되겠다 생각하며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 학교의 업무가 걱정이 되었지만 허용된 의무 격리기간이라 어쩔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후통이 너무 극심해져 소리를 낼 수 없고 음식과 물을 삼킬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기침을 할 때마다 통증으로 고통스럽다. 이러다 숨을 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점점 심해진다. 불안한 예감이 든다. 병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들어 119를 불러 코로나 전담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과 동시에 진통제, 온갖 항생제, 그리고 코로나 치료제 주사와 음식을 먹지 못하므로 맞는 영양제 수액까지 여러 개의 주사액을  여기저기 매달고 며칠을 보냈다.    

  

폐렴 증상이 보이고 염증 수치가 정상보다 높아 관찰이 요구되는 상황. 처음 겪어보는 몸의 변화에 대한 당황스러움에 겹쳐 이후를 알 수 없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코로나 환자들을 위한 음압병실은 공기를 외부로 빼내지 않도록 자체 정화를 하여 내부로만 순환을 시키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어 24시간 강한 기계소리가 들린다. 환자들끼리의 보호를 위해 여전히 24시간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했고, 음압 기계가 병실 안에 설치되어 있어 아주 강한 소리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다. 공간은 폐쇄되어 있고, 오직 간호사들만 들락날락한다. 보호자는 아예 들어오지 못한다. 환자복도 따로 없다. 그저 내가 입을 옷, 사용할 침구만 가지고 달랑 혼자 병원문을 들어섰다.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은 전염병이기 때문에 태워진다. 회복되어 퇴원을 할 때도 입고 온 옷과 사용한 침구류는 모두 폐기 처분하게 된다. 일반 병원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나는 병원에 있으면서 코로나 발발 초기에 우리의 공포가 극심할 때 코로나로 입원했다 바로 사망한 사람들 생각을 많이 했다. 그들의 공포와 절망은 헤아리기 힘들다. 

    

게다 나는 목소리가 안 나와 의사소통이 아주 불편했다. 옆에 나를 간호해주는 사람이 없어 내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없어 더욱 힘들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 목소리가 안 나오니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통증이 가라앉으면 할 수 있는 건 고작 문자전송이다. 주삿바늘을 여기저기 매달고 있으니 휴대폰 사용도 그리 쉽지 않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에라도 죽음은 너무 가까이 내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절대 고독감.  

    

아프더라도 절대 전염성의 병으로 인해 격리되는 병실에는 갈 일은 없기를 바란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목소리가 조금씩 나와 상황이 나아진다고 생각하여 나는 담당의사에게 퇴원을 요청했다. 안됩니다. 지금 환자의 염증 수치가 너무 높습니다. 입원 환자 중에 가장 높습니다. 항생제를 더 투여하고 검사를 한 결과 다행히 다음 검사에서 수치가 떨어져 어렵사리 퇴원이 수락되었다. 항생제 주사 대신 항생제 약을 복용하고 외래진료를 다니는 조건으로 말이다.     


from unsplash

  

자유의 맛 

     

엑소더스! 쇼생크 탈출! 그들의 감동에 전혀 못 미치지 않을 감동을 느꼈다. 여전히 격리기간이었기에 방역택시로 이동하여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다. 비록 아직 온전한 자유의 몸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병원이여 안녕! 올림픽대교를 지나가는데 바라다보이는 한강과 하늘의 구름에 눈물이 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니.... 돌아와서도 나는 내 방에서 격리되었다. 무엇보다 가족 간의 감염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나는 부분 격리의 상태로 지냈다. 내가 방문을 나설 때면 사람들이 나오지 않게 하고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용한 곳은 꼭 소독을 했다. 밥도 혼자서 방에서 먹고 하루 종일 방 안에서 거의 누워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는 바깥 풍경은 침대 옆 창에서 바라다 보이는 베란다와 그 너머 밖의 나무들이었다. 그나마 밖의 나무들이 보이는 것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병실의 풍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숨통이 트인다. 

 


퇴원하고 서랍 정리를 했다


베란다를 그렇게 오래오래 보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베란다 천장에 달린 빨래 건조대는 고장나 위치가 하나로만 고정되어 있었다. 지나다닐 때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해서 불편한데도 고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침대를 처리하며 버리지 않고 세워둔 침대 틀은 보이지 않는 베란다 벽을 오래 차지하고 있다. 몇 개 되지 않는 화분은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평소에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베란다라는 곳은 창고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내 게으름의 소산들이 내 눈에 자꾸 걸린다. 그런데 비로소 침대에 누워 보이는 베란다는 내 눈을 장악하는 무대가 되었다. 그런데 무대가 참 형편이 없다. 


격리가 해제되어 밖에 나가게 되자마자 산책길 꽃집에 가서 망설임 없이 화분을 주문해서 거실 한편과 베란다에 두었다. 베란다에는 붉은빛이 나는 화분을 거실에는 푸른 잎의 꽤 커다란 화분을 들였다. 누워있어도 붉은빛의 강렬한 잎들을 보고 싶었다. 더 이상 화분을 키우지 않겠노라 다 처분했는데 다시 화분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잎이 떨어지지 않는 동안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입센의 <마지막 잎새>에서 처럼 나도 누워서 식물을 보며 강렬한 붉은빛의 희망을 붙들고 싶었다. 건조대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치우게 했다. 물론 가족의 도움을 얻어서 말이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난 다시 살아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그런데 몸으로 깨달은 바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경험하지 않고는 모른다. 몸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말을 하려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고,  진통제가 아니면 통증을 이기기 힘들 정도로 목이 아프고,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그 순간에 찾아오는 공포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퇴원 후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정리였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공간을 정갈하게 했다.  언제 내가 떠날지도 모르는데 내가 가고 난 뒷자리가 어떨까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한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한테 부끄러웠다. 왜 내가 이러고 살고 있나? 왜 내가 나를 이렇게밖에 대접하지 않나? 

      

다행히 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절박함은 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질문은 강렬하게 박혀있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생각한다면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내일은 없다. 그저 오늘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서랍 정리를 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격리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기 전에는 그들의 고통을 나는 모른다. 내가 경험하고 나니 비슷한 상황의 고통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장 무서운 병 격리는 나를 무척 흔들었다. 보석 같은 진리를 죽음 같은 바닥에서 건져 올렸다. 격리를 추억하며 나는 지금도 서랍 정리를 한다. 서랍 정리를 하며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아름답게 찬란하게 살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은 당연한 것이 아닌 선물이다.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닌 선물이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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