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Oct 31. 2022

친구야 보고 싶다

친구가 왔다


    

하루살이 인생임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한 후 내게 하루하루는 기적이고 선물이 되었다. 햇살도, 하늘의 구름도, 흩날리는 낙엽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물 한 모금도, 보글보글 끓는 식당에서 사 먹는 된장찌개도, 함께 이야기하는 친구의 미소도 기적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다면 듣고 싶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살만한 인생인가!   

    

어느 날 아침 문득 문자를 보냈다. "친구야 보고 싶다" 며칠 뒤 휴일 아침에 문자가 왔다. “오늘 바빠?” “아니. 서울 올 일 있어?” “근처로 갈게 어디서 만날까?” 아직 내 건강상 먼길 운전하기 부담스러운 상태라 친구가 이곳으로 와야 만날 수 있는 상태다. 친구 자신도 여러 가지 바쁜 일에, 그다지 좋지 않은 건강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시외버스를 타고 내가 있는 곳 근처로 왔다.  

    

함께 먹는 들기름 막국수가 그리 고소하고 맛날 수가 없다. 함께 마시는 커피와 허니버터브레드가 말 그대로 꿀 같다. 공원에는 콘서트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가을 하늘은 맑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누는 대화. 이제는 건강과 관련한 안부와 소소한 마음의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이렇게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미래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 여기던 청춘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느덧 피할 수 없이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희어지고 몸은 여기저기 낯선 현상들이 나타난다. 몸에 맞춰 살아야 하는 시기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위축이 되는 건 서로 마찬가지다. 


친구는 오래전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지방에 터를 마련하여 예쁜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마당이 있고 산이 보이고 텃밭도 있는 전원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한 가지 단점은 나한테서 멀다는 점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이다. 젊어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몸이 불편해지면 점점 서울 나들이 하기는 힘들어진다. 반대로 서울에서 지방 쪽으로 가는 것도 어려워지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나는 자주 도시 예찬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난 서울을 못 떠나. 운전 안 해도 전철만 타면 이동이 가능하니까 나이 들수록 서울에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서울에 살던 친구들이 하나 둘 서울을 떠나고 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멀리 제주도에 간 친구도 있고, 최근에는 남편의 고향인 부산으로 이사를 간 친구도 있다. 이러다 서울에 나만 남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에 있어도 한번 만나려면 중간 지점을 정해서 만나는 친구들의 만남도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어린 시절의 동네 친구들도 이미 다 뿔뿔이 흩어졌다. 대학 진학과 함께, 결혼과 함께 사는 곳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도 아이들을 키우고 오래오래 만날 수 있나 했더니 이런저런 이유로 또 흩어진다. 이름만 부르면 툭 튀어나 옹기종기 놀 수 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어린 시절도 그리 왁자지껄하게 보낸 내가 아닌데....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이 즈음에 하필 한 동네에서 오래오래 볼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은 왜 생기는 걸까?  

 

전화기에 빼곡한 이름들, 단체의 이름으로 연결된 많은 이름들, 끊임없이 울리는 카톡의 소리들 속에서 유독 나는 친구가 보고 싶다. 진한 역사를 함께 나눈 친구. 그 앞에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그래서 "친구야 보고 싶다" 했더니  친구가 달려왔다. 이사한 우리 집 근처로는 처음 와보는 길이라 좀 헤매었나 보다. 전철역 입구에서 꽤 오래 기다렸다. 자주 늦기도 하는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기다려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햇살이 강렬해서 선글라스를 꼈는데도 눈이 부실 정도의 정오. 부라보콘이 생각나는 12시 지하철역 앞. 연인을 기다리듯 설레는 마음이 친구를 기다리면서 일어난다. 나는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도 마음은 다시 어린 시절로 달려가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오늘은 기적이다. 


친구야! 

내 넋두리너머 

숨긴 갈망을 읽어내고 

달려온 친구야! 

오늘의 감동을 잊지 않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버리기 vs 아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