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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Apr 01. 2023

마술피리에 홀려

오페라 <마술피리>가 준 기쁨 

 


별안간의 오페라 초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오페라인데, 나의 게으름으로 사전지식 전무한 상태로 공연을 보게 되었다. 여차여차한 이유로 선배언니의 과분한 초대를 받아 뷰가 좋은 2층 가장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금요일! TGI 절정의 시간, 전쟁 같은 일상을 뒤로한 시간에 맛보는 공연의 러닝타임은 중간 휴식 20분을 포함해서 180분. 그러니까 장장 3시간인데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게 빠르게 지나간 시간을 뒤로한 채 공연장을 나섰다. 집에 도착할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득하여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따로 선배와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 아쉬운 대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나무 밑에서 번개 미팅을 가졌다. 공연시간에 맞추느라, 생체리듬을 조절하느라 참았던 커피를 공연 후에야 마시니 그야말로 꿀맛인데 공연의 감동까지 더해 기분은 취하는 듯했다.    

  

작품들은 어릴 때 보다 나이 들어서 더 진하게 감상이 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아마 삶이라는 시간을 길게, 깊게 경험해 본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리라. 200년도 더 이전에 쓰인 오페라 각본이라 선뜻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현대적 무대, 화려한 연출기법의 도움으로 시간을 초월해 주는 감동이 있었다. 와! 모차르트. 역시 모차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모차르트      


들어보니, 귀에 익은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인간의 소리가 표현할 수 있는 괴력의 절정이었다. 밤중에 딸 파미나를 찾아와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단도를 주면서 ‘지옥불 같은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를 부르는 장면에서 강렬한 붉은색 조명을 배경으로 소프라노 가수는 밤의 여왕의 위엄을 자랑했다. 모차르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는 극의 구성이라 뻔한 선악구조로 진행되지만 모차르트 특유의 밝고 건강한 음악은 시험을 뚫고 승리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파미나공주, 타미노왕자, 자라스트로, 밤의 여왕 (파미나의 엄마), 감초역할의 파파기노, 파파기나의 주옥같은 아리아들을 듣고 있으니 지친 몸과 마음이 큰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첨단기법의 무대장치, 조명들은 다소 시기와 맞지 않는 듯한 스토리를 현대 상황에 잘 녹아들게 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 궁금했는데 공연 후 선배를 통해 대략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되었다. 엉성한 극본을 명작으로 둔갑시키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마술피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사망하기 두 달 전에 완성한 최후의 작품으로 요한 에마누엘 시카네더(Johann Emmanuel Schikaneder, 1751~1812)의 대본으로 1791년에 완성하여 빈에서 초연되었다. 파산 직전에 있던 모차르트가 다른 작품 구상을 병행하던 터여서 무리하게 마술피리를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허술한 이야기를 명작으로 둔갑시킨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마술피리       


딸을 빼앗긴 밤의 여왕이 딸을 구출하기 위해 타미노 왕자에게 부탁을 하며 위기의 순간에 그를 도울 마술피리를 건넨다. 조로아스터에게 잡혀 있는 파미나공주를 초상화로 보는 순간 반해버린 타미노 왕자는 파미나를 구출하려 하기로 결심하고 새잡이 파파기노와 함께 길을 나선다. 갖가지 시련, 시험, 도전의 순간에 마술피리를 불면 동화처럼 야수들은 사라지고 음악에 취해 적들의 공격성이 누그러진다. 모차르트의 인생은 천재성만큼이나 비극적이었지만 삶을 도와주는 마술피리라는 존재를 생각한 모차르트에게서 그의 염원이 보이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그렇게 어두운 장면을 빛으로 바꾸는 마술피리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다. 전쟁 같은 일상을 뒤로하고 오페라를 구경하는 순간이 바로 마술피리의 시간과 다를 게 있겠는가?     

 

요정의 속삭임      


조로아스터에게 잡혀 가서 타미노왕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함께 탈출할 것을 기대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자 파미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한다. 파파기노 역시 결혼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음에 드는 파파기나를 만나 들떠 있던 마음과 달리 일이 제대로 되지 못하자 자신을 비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한다. 그때마다 나타나는 요정의 속삭임. 세 소년으로 표현되는 역할을 이번 공연에서는 어린 요정 6명의 등장으로 표현했다. 대략 7-10세 정도의 초등생 정도의 아이들이 배역을 맡았는데 그 큰 세종문화회관 공연장을 울릴 정도의 아름답고 힘찬 소리가 저 어린아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득 공간을 채웠다. 신파도 아닌데 요정의 등장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다. 우리도 그러지 않았는가? 누군가의 속삭임으로 다시 힘을 얻게 되는 순간 말이다.  

    

시험을 통과하는 자      


타미노가 파미나를 구하는 과정에서는 몇 가지 시험이 있다. 침묵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런 설정은 많은 이야기, 신화에서도 소개된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열망이 강한 사람은 그 시련을 이겨낸다. 결국 시험의 과정을 통과한 타미노는 파미나를 만나고 둘은 사랑의 이중창으로 오페라를 마무리한다. 파파기노도 파파기나와 만나 사랑을 확인한다. 우리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다.    

  

왕자와 공주, 악과 선이라는 이분법으로 보기 보다 나는 내면의 이야기로 보고 싶었다. 어두움에 속하는 것을 빛의 세계로 옮긴다고 가정해 보자. 그 과정은 지독한 시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지만 그 시련을 이겨내어야 원하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모차르트가 왕자와 공주로 표현한 동화 같은 이야기는 결국 우리 내면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마술피리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요정은 우리를 돕는다. 매일매일의 과정에서 우리는 마술피리를 불고 매일매일의 과정에서 요정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결국 여리고 여린 파미나가 타미노를 만나 사랑을 확인하듯, 내 속의 파미나를 돕는 내 속의 타미노는 마술피리의 도움으로, 요정의 도움으로 결국 파미나의 손을 잡는다. 내속의 파미나를 버릴 것이 아니라 내 속의 파미나는 내 속의 타미노와 함께 한 차원 상승하는지도 모른다. 삶의 추상성을 모차르트는 음으로 극으로 시각화했다. 또한 이 시대의 연출가, 오페라단장, 지휘자, 무대 예술가들은 그 작품을 구현해서 우리 눈앞에 드러내주었다. 오늘도 인생은 신나게 진행되고 있다.  

    

모니터에 익숙한 생활인데 실제 소리 실제 사람들이 빚어내는 음의 종합예술을 접하고 왜 음악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토리도 낯설고 이국적인 오페라가 잘 와닿지 않아 호감을 가지기 힘들었는데 아직도 거리감이 없지 않으나 워낙 익숙한 모차르트의 음률이어서인지 그의 세계적인 보편적인 음악성 때문인지 글이나 다른 매체가 전해줄 수 없는 음이 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아쉬웠다. 누군가 현대판 마술피리를 써본다면 어떨까 한다. 언젠가 내가 그 마술피리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아주 살짝 해보며 불타는 금요일 밤의 추억을 정리해 본다.      


모차르트여서 가능한 마술피리 

지금 이 순간의 마술피리를 기억나게 하는 행복한 추억 

가수들의 아름다운 목소리  

화려한 무대장치 

스토리보다 음악과 시각적 효과면에서 추천하는 오페라      






타미노의 아리아 / 초상화를 보고 타미나에 반한 타미노의 서정적인 테너 음색이 아름답다.



디아나 담라우의 밤의 여왕 아리아 


밤의 여왕 두 번째 아리아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의 크리스티나 도이테콤이 부른 곡. 밤의 여왕의 분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곡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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