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코다리찜이 가져다준 상상
몇 년째 즐겨 찾는 식당이 있다. 코다리찜 식당.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음식이 코다리찜이니 내가 즐겨가던 이 식당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을 다녀올 때면 서울에 도착한 저녁시간에는 주로 익숙하게 찾던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 이사한 후 꽤 오래 들르지 못했었는데 어느 날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푸근한 마무리를 하고 싶은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코다리찜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의 문제는 주차공간이다. 그러나 좁은 주차공간을 감안하여 옆의 다른 식당의 주차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늘 배려해 주어 그래도 주차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달라졌다. 이 날도 식당 앞에 주차할 공간이 없어 옆 식당으로 갔는데 이전에 주차를 하던 공간이 막혀 있다. 주차를 제대로 하기 힘들어 주차 공간을 찾아다니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메뉴판의 고정메뉴에 매운 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어라? 이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매운맛인가요? 덜 맵게 해 주실 수 있나요? ’ 뭐가 달라졌지? 그러고 보니 늘 반갑게 맞아주던 종업원이 보이지 않고 카운터를 지키는 주인도 다른 사람이 서 있다. 분명 같은 식당이고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인데 오래 오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가 있었나 보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외형적으로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릇도 음식메뉴도 음식의 배치도 비슷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전은 식어있고 코다리는 맵고 늘 최고의 코다리라 여기며 좋아했던 부드러운 맛이 아니다. 정갈하게 차려져 나오던 반찬도 빛을 잃은 듯 뭔가 생기가 없어 보인다. 남편은 계속 그릇이 달라진 것 같다고 하지만 그릇은 그대로다. 그런데 음식이 이전과 다르다. 뭔가 변화가 생겼다. 맞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하나같이 낯선 사람들이다. 형태는 그대론데 이전의 식당을 그대로 인수했는데 맛은 전혀 같지 않다. 그러고 보니 지나다니면서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간판이 달라져있었다. 같은 식당이라도 리뉴얼하면서 간판을 교체하는 경우가 잦으니 뭐 그러려니 했다. 운영하는 주인이 달라진 게 맞다.
‘이전에는 항상 풍족하게 꽉 차게 먹은 듯한 기분 좋은 맛이었는데 뭔가 먹고 나서도 썩 잘 먹은 기분이 들지 않아. 모양은 그대로인데 정신이 빠진 것 같아. ’
남편과 나는 이 부분에 동의했다. 빈자리 없이 좌석이 꽉 차 있던 인기 있던 식당이었는데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주말답지 않게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다. 주차부터 대응하는데 친절도가 떨어졌고 음식에서도 정신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오고 싶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애정하던 넘버원 음식을 정성스레 대접하던 식당이었는데 식당은 그대로 있고 음식도 그대로 있는데 그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그 코다리찜이 아니다.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은 단지 배를 채우러 가는 건 아니다. 음식을 요리하며 음식에 쏟아 넣는 마음까지를 먹는다. 꽉 찬 음식. 그런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여행지를 돌아다녀보면 더더욱 식당에서 씁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온갖 티브이매체의 맛집에 방영된 경우 그 유명세와 실상이 다른 경우를 많이 발견한다. 또한 어떤 식당이 맛집으로 유명해지면 유명세를 흉내 내며 우후죽순 그 아류들이 생긴다. 그러나 원조의 그 무엇을 흉내 내지만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소비자로서만 의식하고 물건을 파는데만 급급하는 경우를 말한다.
반면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명맥을 유지할 뿐 아니라 문전성시를 이루며 칭찬을 받는 식당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음식을 만드는 그들만의 비법이 분명 중요한 성공의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여 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이 가장 큰 비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자주 따뜻한 식당이 그립다.
따뜻한 식당을 찾는 마음의 이면에는 늘 우리에게 음식을 마련해 주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대부분 그 사람은 엄마였으리라.
힘들지? 어서 밥 먹어.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기계가 찍어낸 음식을 계속 먹으면 병이 든다. 자주 음식을 사 먹게 되고 배달음식도 자주 접하게 되는 요즘에 엄마 손맛을 제공하는 식당이 더더욱 그리워진다. 언젠가 친구가 영화 '바베트의 만찬' 이야기를 했다. 덴마크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 찾아온 바베트라는 요리사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정성이 담긴 음식이 사람을 살린다. 살기가 팍팍하다. 누군가 내게 그런 바베트의 만찬을 베풀어주기를 기대한다. 아니다. 내가 먼저 바베트의 만찬을 베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에게 바베트의 만찬이 필요하다. 아쉬운 코다리찜 앞에서 즐거운 상상을 한다. 더운 복날 전복요리를 선사해야겠다는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로 했다. 전복주문을 위해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