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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Sep 12. 2021

못 참겠어! 라면!

오늘의 serendipity

      

비대면 상황은 나를 게으르게 하는 것일까?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일까? 으레 일요일이면 나서야 하지만 일요일인 오늘도 집콕할 수 있는 설렘과 따분함을 동시에 경험한다. 날씨는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덥기를 반복한다. 일 년 내내 새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모처럼 집에서 나 혼자 먹는 점심.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도 좋지만 혼자 먹는 밥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언젠가 차를 마시는 즐거움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7-8명이 함께 마시면 나눠 먹이와 같고 5-6명이 함께 마시면 덤덤하고 3-4명이 마시면 좋고 2명이 마시면 한적하고 혼자 마시면 신비롭다던 말. 난 그것이 밥 먹는데도 해당되는 듯하다. 오늘은 그 신비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두근두근. 


아찔한 졸음 위를 흐르고 있는데 밥을 부르는 생체신호와 동시에 온갖 감각(후각, 청각, 미각)과 함께 떠오르는 강렬한 상(像)은 바로 라면! 몸 생각해서 너무 착한 밥상을 대하다 보니 지겹다. 현미잡곡밥, 야채 중심의 식단에 대한 반란이 터지고 나니 이 봇물 터지는 듯한 식욕을 어찌하기가 쉽지 않다.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몸의 증상도 완화되니 슬슬 긴장이 풀어진다. 아.... 못 참겠어. 먹고 싶어. 라면!!! 


먹거리를 찾아 멀리 시간 들여 나서는 사람들 이해하지 못했던 1인이었는데, 먹는데 뭘 그리 신경 쓰냐며 그냥 배가 차면 뭘 먹든 상관없다는 1인이었는데, 가능하면 간략하게 먹는 게 좋다던 1인이었는데 사실은 내가 음식을 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였지 식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사람인 나는 먹는 게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게 떠오르면 바로 먹어 주어야 내 몸이 안녕해지게 되었다. 

     

간섭할 제동을 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절호의 기회. 이때다. 얼른 싱크대를 열어 라면을 하나 꺼낸다. 물을 붓고 끓이며 라면에 넣을 계란을 찾는데 어라 계란 통이 비었다. 저런... 아무것도 안 넣기에는 너무 심심하다.  그렇다고 야채를 넣고 싶지는 않다. 죄 없는 야채한테 단단히 화가 났다. 오늘만큼은 절대 착한 식사를 하지 않으리라. 간식으로 먹으려 아침에 잘라서 넣어둔 과일 통에 눈이 간다. 사과와 토마토. 사과는 그렇고 토마토... 라면과 토마토? 무슨 궁합? 은근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 토마토!!! 세 토막 내어 그릇에 담고 그위에 끓인 라면을 부었다. 어떤 맛일까? 라면을 먹기 전에 먼저 토마토를 먹어보았다. 


뜨거운 라면의 온기에 토마토가 살짝 따뜻하게 익었다. 짭짤한 라면 국물과 토마토의 밍밍한 맛이 어우러지며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아 좋아... 나의 유별난 식성을 기겁하는 아들이 보았다면 분명 한소리 했겠지만 나쁜 식사를 하려던 결심에 착한 토마토의 간섭은 과연 오늘의 serendipity이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멀어져 가는 인스턴트 음식의 대표 라면. 그래도 가끔씩 익숙한 맛이 그리울 때면 토마토 라면을 먹을 수 있겠다 싶으니 라면을 많이 못 먹는 아쉬움이 살짝 가라앉는다. 오늘은 소심하게 세 토막밖에 안 넣었지만 담엔 토마토 한 개를 다 넣어보아야지!!   


내친김에 몇 가지 토마토가 들어가는 음식을 생각해본다. 토마토가 주원료인 토마토 스파게티, 토마토 야채샐러드 외에 뭐가 없을까? 지금 내가 만들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마음이 내키면 만들어볼 수 있는 건 없을까? 

     

1. 토마토 김치

      

언젠가 토마토로 만든 김치를 먹어보았는데 별미였다. 이건 정말 강추이다. 나는 아직 직접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취향에 맞는 김치 양념을 만들어두었다 (넉넉하게 만들어 냉동해서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써도 좋을 듯) 토마토와 제철 야채와 함께 버무려 먹으면 좋을 것 같다.  난 미나리와 버무린 토마토 김치를 먹어보았는데 미나리 향과 토마토 그리고 고춧가루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소금에 절일 필요도 없이 간편하지만 대신 만들어 바로 먹어야 한다. 아.. 지금도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다. 

    

처음 먹어본 토마토 김치 


2. 토마토 야채볶음      

이건 흔하게 먹는 방법이다. 좋은 기름 (올리브기름, 포도 기름, 아보카도 기름)에 토마토와 각종 야채 볶아서 살짝 소금 간 하면 쉽게 먹을 수 있다.  

    

3. 토마토 수프      

토마토를 믹서기에 갈아 뭉근하게 끓이다 버섯 넣고 익혀 살짝 간한다. 우유를 가미하면 더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4. 토마토 구이 

요즘 많이 사용하는 에어프라이어나 오븐, 혹은 프라이팬에 적당하게 썰어 구우면 된다. 치즈 마이나들은 치즈 토핑 살짝 하면 더 좋다.     


고정관념 깨기는 음식 만들기에도 반영되고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에 아이들은 정말 뜨악한다. 미역국에 온갖 해물을 다 넣어 먹는 영양 해물 미역국( 전복, 새우, 우렁, 황태 등)도 우연히 해보았는데 의외로 맛나고 영양가 있어 가족으로부터도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이후로 보양식이 그리울 때 자주 해 먹고 있다. 그런데 길을 가다 보니 이미 생선, 전복을 넣은 미역국을 파는 식당이 보였다. 사람들의 생각이 새로운 것 같아도 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는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견하는 기쁨은 내겐 새로운 기쁨이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런 우연한 선물 같은 기쁨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내가 만든 영양 해물 미역국 - 좋아하는 해물과 미역국이 상당히 조화롭다. 복날 삼계탕 대신 내가 선호하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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