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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Sep 14. 2021

깜짝 손님 조회수, 너 누구니?

나는 나의 파이를


모임 일정이 변경되어 내친김에 내 발에 몸을 맡긴다. MBTI 검사에 따르면 INTJ에 해당하는 나는 - 몇십 년 전의 검사 결과 - 먼저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MBTI 관련 강의를 들을 때 참석한 100여 명의 사람들을 유형별로 앉게 하고 각 팀의 이름을 정하게 했는데 놀랍게도 우리 팀은 planner라는 이름이 도출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공통점이었다. 


계획하지 않으면 불안한 나는 오래 이 프레임대로 살았으나 이 틀 깨기를 하는 중이다. 옳지, 기회는 이때다. 변경, 취소를 탓하거나 미리 확인하지 못한 나를 비난하는 대신 예상치 않게 생긴 시간을 어찌 보낼까 생각했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봉은사로 향했다. 


전철은 시원하게 쾌적하게 바로 입구까지 날 데려다주었다. 어릴 때 엄마 따라 절에 가 본 이후 자발적으로 사찰 방문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월요일 아침 봉은사가 위치한 분주한 강남 삼성역 주변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사찰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쩝. 역시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쉽게 와서 기도를 올리고 산책도 하고 템플스테이 경험도 할 수 있으니 대안이 되는 듯하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관세음보살 염불소리와 도로의 자동차 소리 그리고 보수를 위한 공사현장 모습은 템플과 어울리지 않지만 아쉬운 대로 월요일 오전 한적한 산책길은 꽤 고즈넉한 맛도 있다.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찰의 공양간에서는 5000원 착한 가격에 국수도 팔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운영한다. 가련한 중생 위한 시혜를 베풀면 그곳이 아수라장이 되려나.... 그래도 강남 한복판에서 5000원 국수라 감지덕지다 하며 들어서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월요일 휴무다. 내 앞에 문 닫히는 소리 철컥! 


빠른 체념 후 근처 식당 검색하다 조용하게 쉴 수도 있는 카페 발견하고 20분 걷는 거리 씩씩하게 걷는다. 아침부터 커피 한잔으로 버틴 빈 배를 먹물 파스타 기대감으로 채우고 있는데 헐! 공사 중이라 카페만 운영한단다. 또 하나의 문이 닫힌다. 철컥! 


어쩔 수 없다. 카페라테 한잔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아직은 더운 날씨에 흘린 땀을 식히며 잠시 시원한 쉼을 가졌다. 갑자기 울리는 알림 소리와 문자가 휴대폰 상단에 뜬다. 브런치에 올린 내 글 조회수가 1000 돌파. 어리둥절에 이어  2000. 이게 머선 129!! 



옆으로 탄천이 흐르는 곳 그러니까 송파구와 강남구 분기점에 위치한 카페는 강남 같지 않은 여유로움이 있다. 유유히 흐르는 탄천 내려다보며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걸었다. 제법 더워 재킷을 벗어던지고 민 소매로 걷는다. 이유를 알 길 없는 조회수 폭발 조짐은 그저 그 소식만으로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고독과 자유의 공존 그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오늘 따가운 햇살이 축복 같다. 결국 조회수는 4000을 넘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호기심 검색을 통해 실마리를 발견했다. 다음 포털에 떡하니 내 글이 올라와 있다. 올해 글과 관련한 기이한 경험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작년부터 블로그를 시작한 기를 받아 올해 책을 쓰고 브런치 작가가 되더니 이제 다음 포털에 글이 올라온다. 심장이 마구 뛴다. 


그저 수치만 올라가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그야말로 몇만 몇십만 찍는 사람들도 허다한데 피라미 같은 존재이지만 세상을 잠시 다 가진듯한 느낌이다. 변방 구석에 틀어박혀 골골대며 절망의 끈을 붙들던 내게 뭔가 우주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느낌이다. 아.. 살아야겠어. 더 기운차게 살아야겠어. 조회수는 어떻게 진행될지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려줄지 상관없이 난 충분히 메시지를 받았다. 난 혼자가 아니야. 


아무 일 없는 숫자만의 변화로 큰 기운을 받았다. 이어지면 좋겠지만 추락도 두렵다. 다음 날 5000 돌파 소식과 함께 내 글이 아직 다음 포털에 있는지 확인하려는데 내 글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나보다 먼저 브런치 작가 된 친구의 글이 떡하니 올라와 있다. 쓰는 글마다 반응이 좋은 친구와 내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아찔함이다. 아... 난 여기까지 인가보다. 


나로서 살기로 한 다짐이 무색하게 타인과의 비교로 초라해지는 마음. 이 마음이 실체가 없음을 알면서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피할 수 없다. 가만히 지켜본다. 내가 늘 이렇게 살았구나. 한정된 파이를 더 차지해야 안심할 듯 말이다. 


불쌍한 나. 이렇게 살아오다니.. 언제 정신 들래? 한 발자국 떨어져 보니 참 덧없다. 제발 다른 사람 상관 말고 넌 너의 길을 가라. 그래 더 많은 조각을 확보하려는 아귀다툼의 노선에서 빨리 내려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더 풍요로운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남의 파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잠시 질주하며 날 마구 흔들어놓던 조회수는 6000에서 잠잠해졌다. 조회수 너 누구니? 한참을 흔들린 후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익숙한 반응 그 궤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내 길을 가자. 여전히 글쓰기는 내 삶의 구원이다. 조회수와 상관없이 나는 나의 글을 쓰자. 다시, 나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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