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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r 12. 2024

진정한 문명인

긍지와 교만에 대하여

당신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행위의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힘들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질문이다. 이미 이래라저래라 할 시기가 지난 아이들에게는 어떤 말도 효력을 상실한다. 거두절미하고 '스스로에게 당당하면 된다'는 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이다. 왜냐면 사람은 사실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판단은 개인의 몫이고 개인에 따라 정확한 판단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기는 하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기 사랑이 시대적 화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워낙 오랫동안 개인의 존중 보다 집단의 가치를 중시 여겼던 분위기에 대한 반성에서 솟구치는 갈망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자기 사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심심찮게 자기 사랑의 태도가 거칠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사랑이 극단적인 오만함, 안하무인과 혼돈되는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극단적으로는 왜곡된 에고의 발현이 사회적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정신 병리적인 차원은 별도로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자기 사랑에 대한 오해에 대해 생각해 보며, 건강한 사회를 위한 올바른 자기 사랑의 태도에 대해 생각을 열어보고 싶다. 우선, 자기 사랑, 자부심, 곧 긍지라고 할 이 단어와 교묘하게 혼동되는 교만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긍지.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 

교만. 잘난 체하며 뽐내며 건방짐.      


긍지와 교만은 둘 다 영어로 pride로 번역되지만 실제 의미는 다르다. 긍지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 갖는 당당함이며, 교만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우쭐대며 자랑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교만은 대상이 달라짐에 따라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반면 긍지는 타인과 상관없이 갖는 자체적인 태도이다. 카렌 블릭센의 『아웃오브아프리카』를 읽다가 저자가 긍지에 대해 표현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긍지는 신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품었던 뜻에 대한 믿음이다. 긍지에 찬 인간은 그 뜻을 의식하며 그것을 실현하기를 갈구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신의 뜻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는 행복이나 안락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에게 성공이란 신의 뜻을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그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 훌륭한 시민이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듯 긍지에 찬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는 데서 행복을 발견한다. 
긍지가 결여된 사람들은 인간을 창조한 신의 뜻을 알지 못하며 우리로 하여금 과연 신의 뜻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들은 남들이 보증하는 것만을 성공으로 받아들이며 <오늘의 명언>에서 행복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찾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운명 앞에서 두려움에 떤다. 

아웃오브아프리카. 열린 책들. p.302      


카렌은 긍지를 신의 뜻, 운명에 대한 인식 및 사랑으로 연결했다. 니체의 '아모르파티'와 닮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 신의 뜻 그것을 알고 사랑하고 실현하는 것이 곧 삶의 긍지의 태도이다.    

  

야만인은 자신의 긍지를 사랑하고 타인의 긍지를 증오하거나 부정한다. 나는 문명인이고자 하며 나의 적과 하인들, 연인의 긍지를 사랑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 집은 아주 겸허하게 황무지에 존재하는 문명화된 장소가 될 것이다.      

아웃오브아프리카. 열린 책들. p.302      


야만인과 문명인의 차이는 야만인은 자신의 긍지에만 관심이 있고, 타인의 긍지를 증오하거나 부정하지만 문명인은 자신의 긍지뿐 아니라, 적, 하인들, 연인 모두의 긍지를 사랑한다. 즉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긍지를 사랑하기까지 하는 태도를 갖는다.      


진정한 문명인이란?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는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문명화된 사회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의식은 야만상태에 있다. 때로는 야만보다 못하기도 하다. 야만은 적어도 스스로에 대한 긍지는 있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사회에 있는 현대인은 스스로에 대한 긍지조차 없으며 타인의 긍지도 사랑하지 않는다. 왜 야만보다 못한 상태가 되었을까? 자기 자신의 긍지도 없고, 타인의 긍지도 밟으며 오로지 타인보다 위에 있어 우쭐대고 자랑하는 교만만 날뛰는가? 진정한 문명인의 모습을 어디서 발견할까?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문명인이고자 했던 카렌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집은 아주 겸허하게 황무지에 존재하는 문명화된 장소가 될 것이다.      


야만인의 긍지를 사랑하며, 자신의 긍지를 유지하는 태도의 한 좋은 예가 된다. 그는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들과 우정을 유지했고, 연인을 사랑할 뿐 아니라, 농장 경계선 바깥의 맹수들의 긍지조차 사랑하고자 했다.      

내 것과 다르면 무조건 적이라고 여기며 적을 없애려고 하는 극단적인 배타성이 횡행한 시대이다. 점점 벽은 높아가고, 지옥이 되는 타인들만 넘쳐나는 시대이다. 거리를 인정하되, 벽을 허물고, 각자의 긍지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할까? 가정에서는 각자의 구성원의 긍지를 사랑하고, 마을에서도 집집마다의 긍지를 사랑하고, 사회에서도 지역, 가치관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지방마다의 긍지를 인정하고, 나라마다의 긍지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가능할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 

내 운명을 사랑하는 삶 

그래서 죽을 때 당당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의 예를 찾아보고 배우며 오늘 내가 디딘 이 땅 한구역이 문명지역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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