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외로운 당신에게
애매한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모임도 없고, 찾아뵐 부모님은 안 계시고, 그저 가족과 조용하게 지내는 일만 남았다. 가족 중에 휴일에 더 바쁜 사람들이 있어 아들과 나만 덩그러니 그리 다르지 않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크리스마스가 이래도 돼?
이래도 돼요!
어쩌다 크리스마스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했다. 이전 같으면 크리스마스를 빙자한 파티도 많고,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왕래 속에 설레는 기운을 많이 느꼈는데 더 이상 그런 분위기는 도심 한가운데,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나, 사람들이 밀집한 건물에서나 느껴지지 평범한 마을은 조용하다. 그저 집안에 작은 장식과 가족과의 식사가 고작이다.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적절한 지혜가 생긴 것인지, 그럭저럭 지낼만하고, 오히려 좋기까지 하다. 외부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을 집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되니, 시간도 많이 절약되고 효율적이다. 친구와의 만남도 시끄러운 카페보다, 전화나, sns, 혹은 줌 미팅으로 대체하니, 오히려 더 편하고 대화에 집중력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집 안에서 지내면서도 사회와의 접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심심한 것을 몰랐다.
문제는 크리스마스다. 늘 북적북적하던 게 익숙해서인지 한가함, 조용함이 불편하고 쓸쓸하다. 눈빛과 손길, 바로 이 공간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 그런 게 그립다. 이래도 되는가? 캐럴 음악을 틀고, 눈이라도 오지 않나 하며 자꾸 창밖을 기웃거리는데 올 듯 말 듯 잔뜩 찌푸리기만 하는 하늘은 눈 한 방울 내려 보내지 않고 애간장을 태운다. 그동안 집안에 있으면서도 나름 커넥트를 많이 한 것 같고 심심치 않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 내 삶의 공간을 차지하던 그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이익하며 납작하게 가라앉아, 실제 공간에 막상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허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갑작스러운 이 공허감은 무엇인가? 문득, 나만 어느 섬에 고립된 것인가?
밀어내려 해도 엄연한 현실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 성에서 화려한 파티를 즐기고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는 대부분이 나와 같은 당황스러움을 경험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 당황스러움이 가장 큰 당황스러움이 된다.
마음을 전하는 선물을 고민하는데도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은 채 들이닥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고민을 했다.
연말이라, 가족과는 모두 만날 수 있는 날을 정해 함께 만들어먹는 식사를 하기로 했고, 친한 친구 몇과 줌으로 파티를 할 계획을 했으나,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라...
엄마, 그동안 너무 많이 했어요. 없어도 돼요! 정말 괜찮아요!
아들의 말에도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사실, 몸이 아픈 이후로는 가족을 살뜰하게 챙길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해서 함께 생존을 위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그 결과 가족은 독립성에 있어서 상당히 진보했다. 스스로 음식을 해 먹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든 크리스마스 음식, 준비한 선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일순 주눅이 든다. 나 아무것도 못했는데... 뭐라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습관적으로 물건을 사거나, 가장 쉽게는 물건을 살 돈을 주곤 하던 행위가 이번에는 잘 안된다. 오히려 아이들한테 멋진 선물을 받았다. 분에 넘치게.
그나저나,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책상에 앉으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소통하는 몇몇 외의 사람들과는 점점 연락이 뜸해지니, 할 말도 없어지고, 쑥스러워지기까지 하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만나는 몇몇의 사람들한테 먼저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뻔한 의례적인 문구는 싫다. 그렇다고 너무 과한 문구도 부담된다. 담담하지만 진심을 담아 한해의 소회와 새해인사를 곁들인 크리스마스 랜선 카드를 전송했다. 그렇게 나의 글 선물이 시작되었다. 꽤 많은 지인들에게 보내는 수고를 끝내니, 저녁 10시가 넘었다.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올해 내가 원했던 마음을 담은 선물은 바로 글 선물이다. 가족에게도 글로 인사를 전했다. 늘 보는 사람들이라 별다른 말 필요 없이 물건으로 했었는데 그 대신, 제대로 랜선 크리스마스 카드로 선물했다. 글 편지를 쓰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현하고 평안을 빌었다. 친구, 친지들, 지인들에게도 글 선물을 했다. 꽤 긴 시간이 소요되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큰 숙제를 한 기분이 들었다. 숙제라 표현함은, 대부분 오래 인사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쩌다 내가 만약 눈을 감게 되면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무엇일까? 중요한 때에 인사하지 못하고 지나친 상태에서 생이별이라도 하게 되면 얼마나 서운할까? 그런 질문이 있었는데, 그 서운함을 잠식시키는 것이 바로 먼저 건네는 인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먼저 건네는 인사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관계의 불편함이 있던 사람이었다. 의외로 그런 사람에게 따뜻한 답장이 왔다. 와...
아주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들 모두와 한꺼번에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방법은 바로 글을 통한 마음이었다. 오래 중국에 있어 한국에 오기 힘든 오빠와도 연결되고, 지방에 있는 동생과도 모처럼 연결이 되었다. 지방에 있는 새언니한테서 내 카드를 보고 바로 전화가 왔다. 여기저기 반갑다는 문자 인사가 온다. 만화영화에 보면 어둔 벌판에 파파팍 불빛이 들어와 갑자기 전체가 환해지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일일이 인사하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것은 평소에 인사를 잘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계에서 불편함 때문에, 오해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다 보면 점점 멀어진다. 사실은 먼저 손을 내밀면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지는 경우가 많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마음을 연다는 뜻일 듯하다. 아직 난 관계가 힘든 경우가 많지만 크리스마스는 그 단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아기 예수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문득, 먼저 손을 내미는 나를 보고, 내가 많이 건강해졌다는 것을 알고 감사했다. 인사할 수 있는 핑계가 되어준 크리스마스가 고맙다. 내년에도 나는 열심히 크리스마스 카드를 쓸 것이다.
나처럼 크리스마스가 외로운가요?
인사하기에 좋은 시간, 크리스마스
먼저 인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마법이 나타날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