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도 모자란다. 신체적인 나이가 하나하나 들어가기에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삶의 연륜과 더불어 얻게 되는 보물 같은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삶은 신비이며 기적이다. 당연한 것 같은 일상이 감사 덩어리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을 때 많이 사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순간순간 누리고 싶은 요즘이다.
역사(?)의 중심 무대를 벗어난 지 오래되고 나니 점점 시간 개념, 날짜 개념이 흐릿해지며, 내리는 저 눈이 첫눈인지 둘째 눈인지 구분도 안 될 정도이다. 첫째 눈이면 어떻고 둘째 눈이면 어떻겠나? 탄성이 나오는 걸 보니 분명 첫눈임에 틀림없다.
사진을 찍고 기록에 남기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진 덕에 바로 sns에 올린다. 한 때 sns에 업로드되는 소식들을 보며 '저건 보이기 위한 쇼 아닌가' 하며 근접하기 힘든 것에 근사한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높아서 따기 힘든 포도를 보며 ‘저건 신포도야’하며 지나가는 이솝우화의 여우와 다를 바 없었다. 점점 sns 없이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낙오될 것 같아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는 sns 그것의 흔히 느끼는 폐해와 더불어 장점도 만나게 된다. 결국 개인의 선용善用을 기대할 일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sns의 장점은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보완해주는 일상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하튼, 신속하게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내려 내심 오다 마는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생길까 했는데, 점점 눈발이 세어진다. 첫눈이 제대로 온다. 금세 바깥 풍경은 설국으로 변하고, 겨울이라 시간은 저녁 6시도 안되었는데 날은 어둑어둑해진다. 슬기로운 방콕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용기를 내야 나설 수 있는 외출은 내키지 않고, 게다 저녁에 예정된 일정이 있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 1시간만 허락되어 있다.
첫눈이 와. 나가고 싶어. 어떡하지?
순간 아주 귀여운, 기특한 생각이 번뜩들어 마침 집에 있던 아들을 꼬신다.
엄마! 어두운데 이 시간에 누가 거기 가요?
중간중간 가로등 있어 괜찮아. 안되면 휴대폰 플래시 켜면 되고.
첫눈이 왔어. 거기서 라면 먹으면서 데이트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음.. 좋아요. 같이 가요.
식단 조절로 인스턴트 음식을 가급 피하고 있어 그 흔한 라면 하나 집에 없다. 얼른 아들이 라면 사러 나간 사이 나는 물을 끓여 보온병 하나에 넣고, 또 하나의 보온병에는 금방 내린 커피를 넣는다. 돗자리와 컵. 그리고 컵라면 두 개. 준비 완료.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바로 집 뒤의 작은 동산으로 향했다. 가끔씩 가서 커피도 마시는 야외 테이블에서 눈밭에서의 식사를 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