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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Dec 18. 2021

김밥, 싸 드세요? 사 드세요?

어쩌다, 시금치 김밥 앞에서


   

김밥, 싸 드세요? 사 드세요?라는 제목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아마 김밥 마니아가 아닐까 싶다. 김밥은 좋은데 만들어 먹기는 번거롭고 사 먹기도 한계가 있는 등등의 고민이 있는 분이 아닐까? 사실은 내가 그렇다. 내게 질리지 않는 음식 중의 하나가 김밥이고 심지어는 뷔페에 가서 김밥을 먹는 비실속파 이기도 하다. 어떤 김밥이든 좋다. 그런데 그걸 만드는 건 어지간히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때 김밥은 소풍 가는 날에만 먹는 특별음식이었는데 , 언제부턴가 김밥0국 같은 프랜차이즈 점이 생기면서 어디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고, 심지어는 김밥 쌀 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패키지로 묶어 팔기도 하고, 김밥 마는 기계도 있다. 이전보다는 쉽게 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완전 다행!!      


그런데, 위생을 생각할 때 걱정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가끔 불거지는 파는 김밥으로 발생한 식중독 환자 관련 기사라도 보면 사 먹는 김밥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이 진퇴양난을 어찌할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싸 먹기 귀찮아 사 먹기를 즐겨한다.     

  

“댁에 계셔요? ” 이웃분 한테 문자가 왔다. 

“네~ 어디 가기도 힘들어요. 미세먼지에 코로나에...” 

“시금치 좀 가져다 드릴게요. 너무 많이 생겨서요”   

 

이웃에게 받은 싱싱 시금치 


그렇게 급작스레 시금치 선물을 받았다. 받고 보니 녀석이 너무 크고 싱싱하다. 시골에서 직접 키운 시금치라고 하는데 음식재료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내게도 아우라가 다른 녀석이다. 나름의 일정계획이 있어 당연히 냉장고 행이 될 녀석이었는데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냉장고에 숨겨두기엔 너무 광채 나는 시금치가 나를 자꾸 붙든다. 김밥광狂인 내가 가끔 사놓는 김밥 패키지가 여태 냉장고에 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이 들었다. 김밥 패키지와 시금치의 콜라보!       


뭐 몇십 년 부엌에서 살았는데 김밥 하나쯤이야 후다닥 해치우겠지? 모처럼 직접 만든 김밥으로 가족에게 생색도 내보자 하는 야무진 생각이 스친다. 저녁에 바로 만들어 먹기 위해 최소한의 재료를 준비해두자 싶어 팔을 걷어붙였다. 싱싱한 시금치를 바로 씻어, 데치고, 일부는 나물용으로 무치고, 나머지는 김밥용으로 살짝 밑간을 했다. 와! 이렇게 맛난 시금치는 처음인 듯. 데치고 아무 간 없이 그냥 먹는데도 달기가 그지없다. “그래 맞아. 지금 먹어야 해.” 김밥에 빠질 수 없는 계란을 부치고, 김밥 패키지에 있는 단무지, 맛살, 햄 등을 꺼내 담았다. 머릿속에는 사용 가능한 재료들이 생각나지만 모두 아웃. 간편한 게 최고! 쌀을 씻어 저녁시간에 맞춰 예약을 해두었다. 


   

씻으니 더 생기 넘치는 시금치
살짝 데쳐 김밥 재료로 준비 중 
간편 재료와 함께 대략 준비 마무리


저녁시간이 되어 휘리릭 김밥을 말아 쫑쫑 썰었다. 이 간단한 문장은 실제  결코 간단하지 않다. 생각 같은 휘리릭은 더 이상 휘리릭이 아니다. 김밥은 한번 말면 한두 줄로 끝나지 않는다. 거창한 준비과정이 아까워 한꺼번에 많이 만다. 남으면 다음날 계란에 풀어 기름에 자작 구워 먹어도 좋으니까. 


오랜만의 나의 선심에 시금치로 가득한 건강 김밥은 인기리에 완전 매진. 그래서 가족도 맛나게 먹고 나도 뿌듯하니 “나는요, 계속 계속 김밥을 싸서 먹어야겠어요”라고 할까? 고민은 지금부터다. 이미 준비된 패키지 덕분에 시간이 많이 절약되긴 했지만 김밥을 싸느라 나름 부엌에서 분주하다 보니 당연히 오후의 계획은 물 건너가고 몸은 피곤해져 집중해야 할 수 있는 일은 하기가 힘들어 지체되어 가고 있었다.    

  

시금치 듬뿍 시금치 김밥
맛있기는 하다, 내가 싼 시금치 김밥 

오랜만에 김밥을 싸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다. 이 일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오래 해왔다. 엄마로서의 내가 그랬고, 나의 엄마가 그랬고, 또 누군가의 엄마들이 해온 일이다. 물론 이 일을 남성이 한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먹는 건 순간인데 그걸 만들기 위해 들이는 공이 보통이 아니다. 시간을 계측해보진 않았지만 재료를 받아 (자주 장보기 시간에 해당한다) 재료 준비를 하고 요리를 하고 치우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김밥 한 끼 먹는데 드는 시간이 최소한 두 시간은 든다. 대부분은 더 든다. 일상적으로 음식은 하루 세끼 먹기 때문에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의 음식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의 시간은 식사시간에 맞추어 쪼개진다. 자기 만의 다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흐름이 깨어진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 딜레마 앞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고대한다. 가족의 식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어느 미래를. 

     

그 미래는 오지 않더라. 그래서, freedom from the kitchen을 선포했다. 이제는 체력도 안되고 어지간해서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힘들어져서 자구책으로 마련한 선언이다. 부엌에서의 활동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잘살기 위한 방편으로 지속하고 있는 삶의 방향이다. 


어쩌다 시금치가 생겨 별안간 김밥을 만들면서 다시 생각이 들었다. 김밥을 싸 먹을 것인가 사 먹을 것인가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적어도 김밥이 먹고 싶다면 만들어 먹는 김밥을 먹고 싶다면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게 어떨까 싶다. 어쩌다 아내가 엄마가 남편이 아이들이 김밥을 만들어준다면 그야말로 수지맞은 날이다. 오늘 김밥 앞에서 땀 흘린 나는 당분간 김밥을 만들지 않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누군가가 김밥을 만들어 주는 수지맞는 날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 나는 계속 김밥집을 기웃거릴 것이다.     

 

김밥 싸 드세요? 사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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