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말고 시작하기
글 앞에서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부담감 때문일까? 그래서 음악과 함께 시작하면 한결 편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오늘도 나는 음악 한 소절을 떠올리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전인권 씨의 <그것만이 내 세상> 그의 힘찬 목소리에 나를 실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Aomt_cCNXO0
그것만이 내 세상 -들국화-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그 길에 남았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작년부터 좋아하던 노래이다. 사람들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비웃더라도, 그래서 혼자 길에 남겨진다 해도, 울며 웃던 자신의 꿈을 따라 걸어온 삶에 대해 후회 없다는 고백은 그동안의 내 삶의 여정과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부러웠고, 내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자주 들었던 노래이다.
바람처럼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질문하며 내 삶의 변화를 추적해보고 싶다. <내가 만드는 세상>이라는 매거진에서 발행할 글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의 단상들을 기록하고 싶어서이다.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에 아마 이 기록들은 대부분 근간의 혹은 앞으로의 행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최근에 있었던 연말 파티로 시작해볼까 한다.
아주 오래 함께 했던 모임이 있었고 삶의 중심이다시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혹은 그 이상 만나며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모임에 균열이 생겼고 모임의 중심 역할을 하던 사람이 나가게 되었고, 덩달아 다른 요인들이 합쳐지며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뜻이 나뉘고, 나뉘는 뜻에 따라 일부 사람들이 나가고, 모임 장소변경과 함께 자연스레 접근이 힘든 사람들 측에서의 이탈이 일어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점점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이전 같은 상황이 아니고 흩어진 상황에서 더더욱 만남이 어려워지게 된 상태로 시간이 2년 넘게 흘렀다.
변화 앞에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오래 함께한 우정에 금이 간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코로나 상황을 보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던 고립감에 더해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벌써 저물어가는 한해를 바라보며 마음 한쪽에 쓸쓸한 연말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슬픈 현실인 셈이다. 자주 만나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는 한 친구와 우리끼리 크리스마스 파티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 참에 친구들 함께 모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오래 만나지 않던 친구들이 무슨 구실로 만나?
삶의 주인으로 살기라는 모토를 따라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던 나는 이 지점에서 살짝 용기를 냈다. 가만히 있어도 누가 파티에 초대해주지 않고, 더더욱 서로를 경계하고 조심스러워하고, 친구들 만난 지도, 이전의 직장 동료를 만난 지도 오래오래 되어가고, 대안의 방법으로 하는 온라인미팅은 편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나는 사람 냄새가 많이 그리웠다. 게다 왜 우리가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가 싶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동네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간단하게 음식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만들기로 치면 나는 완전 꽝이라, 게다 freedom from the kitchen 운동 중에 있는 터라, 애정도 의욕도 없는데 웬 음식? 좋은 계획이 생각났다. 사서 끓이기만 하는 되는 음식을 선택하면 문제가 없겠다 싶었다. 파티라는 것도 초대라는 것도 너무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고 편하게 하자 싶었다.
그래서 저질렀다.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거리두기 차원에서 식사 모임 6인 제한이라 6인 이내로 인원을 제한하고 내가 만둣국, 밥, 김치를 제공하고 다른 사람들 혹시 가지고 올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가지고 와도 좋다는 문자를 발송했다. 코로나 상황이고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이 또한 책임하에 방역에 최선을 다함을 전제로 모여보자 했다. 모두 흔쾌히 수락했고 나를 포함 5명이 모임을 가졌다.
계획처럼, 사려고 하던 만둣국 재료를 살 수 없어, 결국 집에서 끓이게 되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 만두를 주문하여 집에서 찌고 간략하게 육수를 만들었다. 맛이 이상하면 어쩌지 걱정되었고, 코로나 상황 2년 동안 가족 외의 손님을 집으로 오게 하지 않아 방치되다시피 한 집을 정리하려니 이 또한 부담스러웠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래도 없는 시간 쪼개어 최소한의 노력으로 손님맞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 덕분에 집이 조금 깨끗해졌다. 너무 오랜만에 함께 모이는 모임이 분위기는 어떨까? 마음 한편에 살짝 걱정을 안고.
모든 것은 기우였다. 처음에는 오랜만의 회동으로 얼굴들이 살짝 어색함으로 굳어있었는데 같이 식사를 하고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사이 그동안의 공백시간이 사라지고 다시 과거의 그 시간과 현재가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쩌다 그렇게 멀어진 거리가 이리도 금세 다가와버렸다. 그것으로 미션 클리어!
늘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그들이었는데, 올 때는 각각 왔지만 돌아갈 때 한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뭐든지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사람들은 그 경쾌한 분위기를 즐기지만 마음 한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적막함이 있었다. 대부분의 모임은 집안 대소사와 관련해 행해야 하는 의무로 가득했고, 직장 다닐 때는 참석해야 하는 부서별 피곤한 연말 모임도 많았다. 심지어는 가족과 함께 하는 모임에서도 엄마라는 위치는 늘 음식을 준비하고 모임을 주관하는 입장이었다. 나를 위해 선물을 들고 오는 산타할아버지는 더 이상 없었다.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 아니라 하고 싶어 내가 시작한 파티는 내가 작은 수고를 한다 해도 그 힘듦의 색깔이 다르다. 요란하지 않지만, 간단한 음식으로도 편안하고 마음이 열리는 만남이 있는 파티는 시간이 지날수록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내가 만드는 세상. 내가 주인이 되는 세상.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 그 속에서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나는 기대한다. 한 걸음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