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일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에 왜 종교와 상관없이 온 세상이 들썩일까? 중심세력인 서구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연말에 해당하는 성탄 분위기가 송년, 새해맞이와 이어지며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상징이 되어버린 듯하다.
예수와 상관없던 산타의 등장에 의문이 들었지만, 온 세상이 들썩인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어떤 마음이 표출된다는 의미이다. 무엇을 바라는 걸까? 한 해를 보내며 감사하고, 반성하고 새해에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소박한 갈구 아닐까?
평화의 왕으로 온 아기 예수의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둠에 빛, 곧 힘든 세상을 살아갈수 있게 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자칫, 화려한 네온사인, 자연나무를 훼손하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 선물로 교체되는 마음... 원래의 정신에서 벗어난 곁다리 부작용도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한해 살아내느라 수고했다는 위로, 고맙다는 감사, 잘했다는 칭찬, 부족해도 괜찮다는 격려, 건강하라는 축복 외에 더 무엇이 있을까?
날씨라도 추워지면 몸도 추워지지만 함께 추워지는 마음도 지나칠 수가 없다. 이럴 때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찾는 봉사단체의 활발한 움직임도 연례행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홍보물을 보며 선물을 보낼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분주하게 물건을 사기도 했고 더러는 받기도 했다. 물론 수많은 sns 문자, 카드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이마저 으레 껏 치르는 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받아서 기분 좋은 선물을 고민하는 요즘, 마음에 깊이 남은 선물의 추억을 떠올리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보고 싶다. 내 생일 때였다. 잘 나가는(?) 직장에서 제법 인정받는 나였다가 계급장 다 떼어낸 초라함에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생일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식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귀가했다. 몸상태가 안 좋아 누워 있었는데 큰 딸아이가 방안으로 뭘 들고 들어왔다. 당시 고3이었고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며 그림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별로 애교가 많지 않은 아이는 “엄마, 이거” 하며 슬며시 건네준다. 직접 그린 나의 캐리커처와 슬리퍼였다.
딸아이가 손수 그린 캐리커처
캐리커처에는 내가 교사로 활발하게 일하던 당시의 모습이었고 손에는 내가 즐겨 읽던 성경이 들려져 있다. 내가 얼마나 교단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지, 내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는지, 내 마음을 포착한 녀석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선물이 바로 슬리퍼였다. 발상태가 좋지 않은 나는 발바닥에 굳은살이 자주 생겨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기 때문에, 실내에서도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발이 아파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도 늘 슬리퍼를 신는데 꼭 굳은살 부분은 금방 어떤 튼튼한 슬리퍼라도 구멍이 나고 만다. 다른 부분은 멀쩡한데 그 부분만 구멍이 난 것이라 교체하기엔 너무 아까워 부분 땜질을 하거나 그냥 신거나 했다. 아이가 건넨 푹신하고 튼튼하고 예쁜 슬리퍼는 나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생활의 고민, 발바닥의 문제라 그 누구도 주시하지 않는 부분을 알아차린 아이의 마음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3이라 바쁠 텐데 엄마를 위해 무엇을 그릴까 고민한 정성, 그림 그리느라, 슬리퍼 고르느라 금싸라기 같은 몇 시간을 할애한 희생, 내 마음의 갈망을 너무 잘 포착한 나에 대한 관심, 그리고 내가 느끼는 생활의 불편에 대한 걱정.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릿하고 행복하다. 왜일까? 내 마음을 만져주는 아이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녕 선물膳物이었다. 선물이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물건이다. 그래서 마음을 연결해주는 선물은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힘든 마음을 만져주는 마음이 표현된 선물,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어 잊을 수 없는 선물! 나는 그런 선물을 한 적이 있는가? 부끄럽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연말이 며칠 남지 않았고, 곧 2022년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리며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당연한 듯 주고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시간이 부족한 젊은 날에는 돈으로 샀다. 지금은 시간이 많아졌다. 돈도 물론 필요하고 좋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선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만져주고 싶은 마음들을 떠올려보며 잠시 행복한 고민을 해 볼 참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도, 덩달아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도 사실은, 화려한 트리보다 더 원하는 것은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