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賞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다.
그래서 상은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연말이면 방송에서는 각 분야의 유명인사들의 수상 소식들로 주요 장면을 장식한다. 대중방송에서는 주로, 연예인들의 수상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눈물을 흘리며 수상 소식에 감격하는 당사자가, 오랜 무명의 시절을 딛고 빛을 보는 경우엔 시청률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레드카핏 언감생심인 나 같은 사람은 감정 이입되어 코끝이 찡해진다. 그러나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약간 씁쓸하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디선가의 화려함과 동떨어진 이곳의 적막감을 숨기려, 부어라 마셔라 하기도 하고, 소파에 들러붙어 팝콘을 먹어대기도 하고, 산과 강을 쏘다니기도 한다. 에라, 상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연말은 그렇게 정산精算이 있다. 재정에도 연말정산이 있는 것처럼 개인이든, 집단이든 살아온 삶에 대한 평가를 통해 상을 주고,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희비가 교차한다.
문제는 줄을 세워 제일 위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점이다. 왕관의 주인공은 극 소수가 되고 대다수는 그냥 흐릿한 눈동자로 가망 없는 곳을 응시하며 박수를 쳐대는 것으로 끝난다.
학교 다닐 때도 학기말 학년말에 당연하게 상장을 발행하고, 너도 나도 받아 든 상으로 들썩인다. 학업우수상은 몇몇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 그걸 받아 든 어깨는 유독 들썩인다. 개근상 하나 받아 든 손들은 무슨 이유인지 쓸쓸하다. 그나마 학교와 멀어진 어른이 되고 나서는 개근상마저 구경할 기회가 드물다. 더 이상 상은 없다.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산다.
2. 기분 좋은 상, 기분 나쁜 상
브런치에서 발행하는 올해의 결산 리포트! 언제부터인가 브런치팀에서 선물 받으러 가라는 알림이 떠서 들어가 보았다. 이웃 브런치 작가들이 자신의 결과물을 알리는 글들도 익히 보아왔고, 뭐 나로서는 결과물이 많지 않아 더욱 초라해지는 마음이라 보기가 두려웠다. 비교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꾸 비교하고 있는 내가 싫기도 했다.
비교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동안 그렇게 길들여져 왔으니까. 등수로 자리매김하고 상위 등수 안에 드느냐 못 드느냐가 초미의 관심이 된다. 등수 안에 들지 못 한자는 자동 루저가 되는 구조. 초연하려 해도 이게 그렇지 않더라. 브런치에서 발행하는 리포트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승자와 패자로 갈린다. 누구에게는 기분 좋은 상이 누구에게는 패배를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3. 별명이 상이라고?
내가 받은 별명 어워즈
함께하는 동료 작가들과 송년 랜선 파티를 했다. 파티의 순서 중에 각자에게 별명을 짓고 그걸 상으로 주는 순서가 있었다. 처음 해보는 건데 기발했다. 미리 롤링페이퍼를 돌려 각자에게 별명을 붙여준다. 기획자가 수합해서 각자가 동료들로부터 받은 별명을 상장의 형식으로 만들어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이름으로 수여한다. 다시 말해서 동료로부터 별명을 상으로 받는 것이다. 누구 하나 제외되는 사람 없고, 우열을 가릴 일이 없다. 그저 모두 각자에게 부여된 별명으로 기뻐하면 그만이다.
mz작가 부드러운 태풍, 열정/도전, 넌 작가, 무한함, 빨간 머리 앤, 은퇴/자유/배움/노력/젊음, 아름답게 나이 듦의 정석, 귀여운 언니, 막내, 깊이 알고 싶은 사람, 오렌지, 소녀, 언니
난 이런 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웠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위축되기 일쑤였는데, 그래도 내가 열정을 가지고 있고, 열심히 배우려 노력하고 있고, 도전정신이 느껴지고, 나이답지 않게 젊은 정신을 가지고 있고, 소녀 같고, 언니 같고,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이란 별명까지... 그저 나로서 살아낸 것에 대한 무한 박수, 격려였다. 그 어느 상품보다 허기를 채워주는 그래서 새해를 든든히 살아낼 만한 상이었다.
정말 기분 좋은 상이 었다. 누구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상 앞에서 내가 패배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각자가 각자의 삶으로 받는 특별한 상.
4. 도덕경 관점에서 본 브런치 리포트
도덕경 3장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 난득지화 사민불위도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불현가욕 사민심불란
是以聖人之治 虛基心 實基腹 弱基志 强基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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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는 사람 떠받들지 마십시오.
사람 사이에 다투는 일 없어질 것입니다.
귀중하다는 것 귀히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 사이에 훔치는 일 없어질 것입니다.
탐날 만한 것 보이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 산란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다스리게 되면 사람들로
마음은 비우고 배는 든든하게 하며,
뜻은 약하게 하고 뼈는 튼튼하게 합니다.
사람들로 지식도 없애고 욕망도 없애고,
영리하다는 자들 함부로 하겠다는 짓도 못하게 합니다.
다스려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덕경 3장. 오강남 풀이)
이 장은 외적인 삶의 성장을 위한 노력 자체에 찬물을 끼얹는듯하게 보이기 때문에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자의 원래 뜻은 일반적으로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져 보라는 뜻으로, 이분법적으로 좋고 나쁘다는 구별을 내려놓고, 즉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의미의 궁극의 지식에 이르라는 뜻이다.
브런치 리포트를 도덕경의 관점에서 본다면, 타인과의 비교에서 얼마나 많은 글을 쓰고, 얼마나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얼마나 많은 라이킷을 받았고, 구독자가 얼마나 많고 하는 비교의 관점에서 기뻐하거나 부끄러워할 리포트가 아니다. 작년에는 없었던 무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한 것, 글을 써내는 고통의 과정을 겪은 것, 한걸음 한걸음 걸은 것에 대한 결과물로서의 상이다. 용케 실적이 좋다면 그것이 가능하게 된 여러 가지 상황 및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박수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 상황을 인식하고 새로운 시작 앞에 새로운 다짐을 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나 개인으로 본다면, 한걸음 한걸음 걸어낸 것에 대한 상이다.
한해를 결산하며, 글과 함께 걸어온 길에 대한 상을 브런치 리포트를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딛고 일어서 시작하게 되었고, 쓰러질 때마다 격려를 받았고, 스스로 다짐하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지금 나를 응원하는 상 앞에 서 있다.
2022년새해에도나는 그렇게 나의 길을 갈 것이고 새해를 마무리하며 결산하는 리포트로 내게 주어지는 상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