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을 새롭게
시간에 붙이는 이름이 달라지는 분기점에서 우리는 설렌다. 카운트다운을 하며 축포를 터뜨리며 사랑하는 사람끼리 축배를 들며 포옹으로 축하한다. 365일이 지날 때마다 이 일은 계속되는데, 시차가 있는 곳의 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든 생각이 있다. 적어도 해가 바뀌는 분기점의 하루 동안, 지구는 내내 온통 축포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12시가 되면 울리던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도 이제는 울리지 않고, 해돋이 장소도 폐쇄되었다. 아쉬움에 와인과 케이크를 준비해놓고 새해 의례 앞에 긴장하며 창문을 열어보았다. 혹여 어디선가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지 않을까? 밖으로 바로 보이는 숲은 깜깜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실내에 틀어놓은 음악소리와 우리의 설렘만 있을 뿐. 하늘과 나무와 어디선가 거처에 엎드린 야생고양이와 새들, 이름 모를 동물과 곤충들은 어둠 속에 조용히 잠들어있는 듯하다.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왜 이 밤에 인간들은 안 자고 들썩이지?
5, 4, 3, 2, 1! 촛불을 밝히고 새해를 축하하는 기념을 우리끼리 한다. 축하해 새해를! 수고했어 모두 한해 지내느라! 한 살 더 먹는 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입장이지만, 그래도 새해는 늘 그렇게 기분이 좋다. 허걱! 앞 자릿수가 바뀐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땐, 한국 나이 아니고 만 나이를 꽤 오래 주장하게 된다.
아침이 되어 바로 보이는 해를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같은 자리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다. 해는 같은데 왜 우리는 저 해를 새해라고 할까? 무심하게 움직이는 자연의 움직임과 달리 우리는 왜 해마다 숫자를 붙이고 사람에게 나이를 붙이는 걸까? 유독 인간에게만 있는 습성을 저 식물과 동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상한 종족들이야, 뭐가 다르다고 저 난리지?
유대 지역의 왕이었던 솔로몬 왕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전도서 1장 9절
사실, 새것은 없는 것 같다. 결국 같은 사이클은 계속 순환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무는 새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여름에 푸르름의 절정을 지나, 가을의 커러풀한 변화를 지나, 나뭇잎을 떨구고 벌거벗은 나목으로 겨울을 견디고, 다시 봄이 되면 새잎을 내는 과정. 그러다 자신의 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는 일이 없다. 동물도, 자신의 명을 따라 뛰어다니고, 먹이를 구하고, 생존을 위하여 거처를 찾아다니고, 위험한 순간에 자기를 보호하고, 때로는 적들과 겨루기도 하며 그렇게 살다가 몸의 수명이 다하면 운명 앞에 스스로를 바친다.
우리네 사람들의 이야기로 옮겨와 본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get old라고 하는데 해가 바뀌면 new year이다. 모순되지 않는가? young and old를 직선으로 놓고 보면, old는 어느 지점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이 선을 이어 붙여 원으로 만들면 시작도 끝도 없다. 시작도 끝도 없다면, 모든 순간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자연을 볼 때,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죽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자양분이 된다. 죽어가는 나무나 새로 피어나는 잎이나 사실은 하나로 통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나이 든다는 것도 슬픈 일은 아니다. 나이 들어 죽어 끝이 아니다. 사실 이 몸이 죽지 않고 불로장생 한다면 그처럼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다시 말해, 이전의 조상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그보다 끔찍한 사실이 어디 있겠는가? 죽어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이 모든 질서가 유지되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연식이 오래되고 낡아지는 것, 나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때가 오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기반이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의 한 부분이다.
시간을 직선으로 보지 않고 원으로 본다면 모든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그냥 이 순간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순간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새해가 되었다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은 항상 새롭다.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
그래도 시간의 일정기간에 2021, 2022 숫자를 붙이고, 사람에게도 29세, 30세 숫자를 붙이는 것이 익숙한 우리의 삶의 방식은 또 어쩔 수 없이 숫자를 보며 삶의 질서를 세우게 한다. 매 순간을 새롭게 살지 못하니, 큰 흐름 속에서 새로움을 다져 보자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저러나 새해가 밝았다 (사실은 해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에게 비치는 저 해는 분명 2022년이라는 해이다. 새해를 보며, 매 순간을 새롭게 살자는 다짐을 해본다.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새로운 다짐 new year's resolution을 해보는 시간이다. 새해 떡국을 먹고, 새해 덕담을 나누며 우리는 우리네 새해 의례를 통과하고 있다. 매 순간을 새롭게! 나의 새해 다짐을 다시 되뇌며 새해 첫날을 연다.
당신의 새해 다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