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Jan 10. 2022

잘생긴 글, 못생긴 글, 어설픈 글

글은 생명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이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장 1절-4절      


성경에 의하면, 생명의 기원은 말씀 곧 logos라고 되어 있다. 로고스 즉 말, 글이 생명을 만든다. 그렇다면 생명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에 의하면 생명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있다.      


1.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

2. 여자의 자궁 속에 자리 잡아 앞으로 사람으로 태어날 존재.

3. 동물과 식물의, 생물로서 살아 있게 하는 힘.     


뜻풀이 2번은 실제 생명체를 의미한다. 사람이 낳은 생명체를 자녀라고 한다. 생명체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자궁에 착상되어 엄마의 배속에서 일정 기간을 보낸 다음 때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 다 비슷해 보이는 아기라도 엄마는 자신의 아기를 멀리서도 구별한다. 그래서 간혹 병원의 실수로 아이가 바뀌면 법적 소송을 해서라도 친자확인을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된다. 자신의 아이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비슷해 보여도 결코 같지 않다.  

    

글은 생명체인 자식과 같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든, 친필로 쓰든, 글자들이 모여 의미를 갖고 '으앙'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 그때마다 자기 자식이 생기는 느낌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창조자들이 창조할 때의 느낌이 그러할 것이다. 물론 그 창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기형의 상태로 두기보다 파기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세상 속에 나온 작품에 대한 지대한 책임감을 갖는다는 말이다.      

많은 글을 써보지 않았고 이제 조금씩 써나가는 입장이지만, 하나하나 잉태하여 출산하는 과정을 겪으며 나는 이것이 바로 잉태의 고통과 기쁨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글쓰기와 관련한 레터를 발행하는 곳에서 내 글을 수록하겠다고 했다. 분량을 줄여 원문을 다 싣는다고 하여 금방 줄일 수 있겠거니 했다. 내가 많이 아플 때 쓴 글이었고, 글을 쓰기 힘들수록, 힘든 상황이 생길수록 더욱 글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고 쓴 글이었다. 당시에 글을 쓸 때 많은 생각을 해서 쓴 글이 아니라 그 순간의 느낌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쓴 글이었다. 그 글을 읽으면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다시 살아난다.


쉽게 분량을 줄일 수 있을 줄 알았다. 다시 읽어보니 다시 낯이 뜨거워졌다. 구조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내용도 허술하기 그지없는 글. 글을 수록하려는 레터 입장에서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반복되는 표현을 줄이고, 좀 더 세련된 표현을 사용하고, 글을 수록하는 쪽의 의도에 부합한 더 합리적인 이야기를 붙이기도 했다. 좋은 글이 나왔을까?   

   

성형수술을 한 느낌이었다. 큰 흐름은 변함이 없는데, 더 이상 그때의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퇴고를 하고 원고를 보내고 나서 계속 마음이 불편해서 담당자에게 내 마음을 표현했다. 충분히 내 의사를 존중하며, 길이에 연연하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갈아엎었던 글을 다시 원래대로 복구하고 아주 디테일한 부분만의 수정을 해서 전송했다.

     

큰일 날 뻔했다. 내 자식의 모습을 더 이쁘게 보이려 성형수술을 하고 나니 이전의 그 아이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꼴이었다. 수정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글이 사라져 원문을 찾느라 땀을 흘리는 나의 모습은 마치 실종된 아이를 찾는 절박함과 닮아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글이 뭐라고? 이전에 아들을 순간 잃어버려 길에서 울면서 아이를 목놓아 부르며 쫓아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조금 고생을 하여 원문을 찾았으니 망정이지... (물론 잃은 줄 알았던 아들도 다행히 찾았다).     

 

글의 종류에 따라 논리적인 전개, 산뜻한 구조 등이 강조되기도 하고, 오히려 퇴고를 잘하여 읽기 좋은 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글은 아무리 서툴러 보이더라도 글에 손을 대면 원래의 느낌이 사라지는 글이 있는 것을 보고, 그때 나는 글이 생명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쩌면 기억을 상실한다 해도, 내가 아파 낳은 글은 내 무의식이 알아차릴 것 같다.   

   

글을 쓸수록, 나는 부자가 되는 느낌이 든다. 자식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고 낳는 자식이 없듯, 모든 글은 아픔과 함께 잉태되고 출산되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올해도 나는 자식을 많이 낳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잘생긴 놈도 있고, 못생긴 놈도 있고, 어설픈 놈도 있고 각양각색이지만, 적어도 다 나의 자식이다. 나를 닮은 놈들이라 내게는 다 각별하고, 이쁘다. 잘생긴 글도, 못생긴 글도, 어설픈 글도.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서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1월의 주제는 '글쓰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고나 보다 더 좋은 쓰고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