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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an 14. 2022

나는 글을 왜 쓸까

노트를 꺼내 든다. 필사 문장을 따라 쓴다. 일관성 없는 필체는 오늘도 마음을 한번 긁어놓는다. 하지만 그 자체가 바로 수양하는 길이 됨을 안다. 해서 꾸불렁 거렸다가 반듯했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글자들을 두고 더는 한숨짓지 않기로 다.


필사 문장에는 작가들의 생각이 담백하게 담겨 있다. 현학적이거나 학자연하는 어휘가 아닌 평소에 쓰는 소박한 단어들이 줄을 잇는다. 나도 비슷하거나 심지어 똑같은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왜 나의 문장에는 그런 감동은 없고 넋두리로 끝나는 걸까.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 보지만 당장에 얻는 답은 없다. 하지만, 쓰고 생각하는 중에 생각의 근육이 자라고 나 자신의 관성을 깨는 힘을 키우고 있음을 느낀다. 단박에 눈에 띄는 차이는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키가 자라듯 작가 지망생인 나의 글과 문장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노트를 또 꺼내 든다. 그냥 생각나는 걸 쓰고 싶어서다. 인스타에 써도 되겠지만, 거기에는 사진을 항상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사진 고르다 삼천포로 빠져서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이다. 어제 좋았던 일과 불쾌했던 일을 늘어놓는다. 오늘의 다짐과 불안함을 두서없이 적는다. 노트 줄마다 스티브의 감정 파편과 생각 조각이 흩뜨러 져 있다.


휴대폰에서 과하지 않을 사진을 몇 장 골라 본다. 그리고 인스타에 업로드를 하고 느낌을 적어간다. 감상과 감성에 젖은 유치한 문장들이 튀어 오르지만, 그렇게 적다 보면, 사진과 글이 난로가 되어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때가 많다.


체력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아서 내 글을 못 쓰지만, 다른 이들의 피드와 발행된 글을 보고 읽으며 댓글을 남길 때도 많다. 마음을 담아서 쓰다 보면 짧은 댓글마저도 감정을 순환시켜주는 걸 감지한다. 기분은 한결 좋아지고, 나 역시 그 글처럼 좋은 글, 좋은 생각을 남기고 싶다는 긍정적인 자극으로 가득 차 오른다.


일정한 루틴은 아니지만 마음에서 동하여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을 때가 있다. 감정이 마음을 통해 일렁이고, 이성을 타고 기호화되면, 손끝으로 글이 되어 나온다. 글 분량에 상관없이 하나의 꼭지를 마치고 나면 밀물이었던 감정은 어느새 썰물이 되어 나가 있음을 감지한다.


출렁이는 파도가 밀물과 썰물을 타고 올뿐인데, 해안지형은 조금씩 변한다. 마찬가지로 길고 짧은 글로 감정과 이성을 부지런히 사용하다 보면 '나'라는 인간의 변화과정을 다.


내가 먹는 것, 읽는 것, 만나는 사람이 나라고들 한다. 그러니 내 생각을 남겨 글로 쓰는 것은 더더욱 나가 될 것이다. 감정의 원석으로 튀어나와 이성의 정과 끌 속에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모습을 찾아가는 나 말이다. 실은 나도 나 자신을 모를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나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글을 쓴다.


비밀스러운 모습은 지금처럼 노트에 담겨 공개되지 않은 채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이 되어 스러져 갈 것이다. 어느 정도 내놓아도 괜찮을 또 하나의 자아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와 인사를 건네고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을 것은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이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월의 주제는 <글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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