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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r 04. 2022

나는 여행 중입니다

 

7일간의 이야기  


  

◼ 첫째 날 

 

엄마, 떠나고 싶어 

엄마, 떠나고 싶어      

코발트 푸른 바다와 

초록빛 공기 

순백의 침구 

온갖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 

아, 좀 쉬어야겠어 

피곤해서 못 견디겠어      


그래 휴식이 필요할 게야 

모두 잊고 가서 푹 쉬다 오렴      


◼ 둘째 날 


엄마, 홋카이도의 3월은 설국이었어요. 

인디아나 존스처럼 얼음 터널을 지나는 건 짜릿했지요. 

심장 쫄깃한 질주 후에 만난 도야호수는 그야말로 황홀경이었어요. 

또 가야겠어요.  

다음엔 도야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일급 호텔에 머무를 거예요. 

돈을 좀 모아야겠어요. 그곳의 풍광이 끝내준대요. 

친구들이 여행 다녀와서 하던 이야기가 

이제는 부럽지 않아요. 나도 가봤으니까요.      


네가 좋았다고 하니 나도 기쁘구나 

네게 좋은 휴식의 시간이었구나.      



◼ 셋째 날 


엄마, 나 또 떠나야겠어요. 

왜 사람들은 날 내버려 두지 않을까요?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요 

사는 게 지옥 같아요. 

기분전환이 필요해요. 

이번엔 좀 더 먼 나라로 가볼까 봐요. 

유럽으로 다녀올게요. 

간 김에 몇 개국 둘러보고 올게요. 

다들 여행지 최고로 뽑는 스위스와 

인근의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까지 둘러보고 올게요.      


그래그래 너무 힘들지. 모처럼 가는 거니 

멋진 시간을 보내고 오렴. 

난 너의 행복을 원해.      


◼ 넷째 날  


우와! 엄마,  난 독일에서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 없어요 

햇빛을 쬐며 잔디밭에 자유롭게 드러눕기도 하고 

하루 종일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그곳에선 아예 대놓고 사랑을 해요. 

그들의 자유가 너무 부러워요. 


스위스는 물가가 너무 비싸고 

사람들이 콧대가 높긴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충분해요. 

마테호른 정상에서의 그 설경과 신비의 구름은 

숨을 멎게 했어요.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 생가도 들렀지요. 

아, 유럽 사람들은 쉽게 경계를 넘을 수 있는 환경들이더군요. 

우리에게 묘연해 보이던 그 모든 혜택들을 그들은 쉽게 누리고 있었어요.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그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여긴 너무 좁아터졌어요. 

삼면이 바다에 위쪽으론 막혀있어 

이웃나라 가기가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아요. 

   

네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구나. 

그래그래 그렇게 색다른 걸 보고 배워야지. 




◼ 다섯째 날 


엄마, 여긴 방콕이에요. 

너무 오래 방콕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코롬크론이란 친구가 내 발을 붙들고 있어요. 

내가 가고 싶던 유럽도 아니고 방콕에서 이렇게 오래 지낼 줄 몰랐어요. 

몸이 근질근질하네요.      

코롬크론 이 친구 이제 내보내야겠어요. 

얼씬도 못하게 해야겠어요. 

날 이렇게 묶어 두다니!  

벌써 마음엔 가야 할 여행지 목록이 가득해요. 

생각만 해도 설레어요. 

엄마, 우리 같이 어디 갈까요? 

음.. 남미 쪽 안 가봤는데 어때요? 

아닌가? 엄마는 북유럽 쪽을 가고 싶어 하셨죠?      


그래, 방콕에 그만 머물고 

이제 좀 움직이면 좋겠네. 

근데 엄마가 여행을 하기엔 몸이 좀 불편하네.      


◼ 여섯째 날 


엄마, 

사람들은 왜 떠나고 싶어 할까요?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금방 싫증이 났어요. 

그리고 다시 다른 곳을 동경했어요. 

왜 그럴까요?  

    

이제 네가 질문이 생겼구나. 

네가 질문하기를 기다렸어. 

나도 살아보니 그런 질문이 생겼지. 

왜 떠나고 싶어 할까? 

다들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지.... 


내 생각에는 말이야,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있을 때였어. 

내가 나를 만나고 싶을 때였어.

그때 떠나고 싶었어.  

숨을 쉴 수 없을 듯 답답함이 느껴질 때였어.  

잃어버린 걸 찾고 싶다는 본능이 부를 때였어.


그런데 얘야,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여행지에서도 외로웠어.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집에서도 외로웠어. 

그래서 또 여행을 떠났지. 

쳇바퀴를 돌다가 

어느 날 알게 되었지.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더구나.    



◼ 일곱째 날 


엄마, 


집 앞에 나무가 춤을 추고 있어요. 



산책길의 나무. 어스름 해가 지는 배경으로 시든 잎들이 바람에 찰랑거리며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황홀했다.




    


간혹, 관광과 혼돈되는 여행旅行의 한자를 풀어보니  나그네의 길이 됩니다. 정처 없이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조선 후기의 시인 김립(김삿갓)을 생각하면 됩니다.

 

여행을 그리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여행에 대한 지식은 짧습니다.  여행의 참 맛은 우연히 혼자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아직 혼자의 여행 경험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여행은 자기를 찾고 싶을 때, 진짜 자기를 만나고 싶을 때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내 모습을 감추고 살다 보면 더 이상 숨 쉴 수 없는 지점이 있는 것이지요. 그럴 때 우리가 자주 내뱉는 말이 떠난다는 말입니다. 이곳을 떠나면 저곳에 숨통 트이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많은 것을 구경하고 경험을 쌓는 차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꼭 여행이 필요합니다. 


떠나면 새롭게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어 합니다. 그것조차도 실패할 때가 많지만,  있던 곳에서 보이지 않던 자기를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면 그 힘으로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여하튼 여행은 우리에게 탈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동경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랜 방콕 기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떠나지 않았는데 이 환경은 전혀 새로운 환경이었습니다.  갑갑하고 두렵고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 단조로운 것 같은 곳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뿔싸! 멀리 떠나지 않아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파랑새처럼 비루한 일상의 언저리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만나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를 만날 수 있었어요.  이곳에서 소외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으니 내가 내가 될 수 있으니, 사실은 그다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요. 난 이곳에서 매일 여행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세상이 열려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면,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보고 싶어요. 멀리 있는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그곳 어디에선가 있을 나의 도플갱어들을 만나고 싶고, 무엇보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의 터져 나오는 누멘적 경험으로 목이 터져라 울어보고 싶어요. 


누군가 너 요즘 뭐하니?라고 질문하신다면, 이렇게 대답할게요. 


지금 저는 여행 중입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생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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