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Mar 21. 2022

다르게 사는 기쁨

통돌이 세탁기를 들이며




친구의 소개로 체력검사를 하고 나니 너무 지쳐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근처의 산책을 오래 하고 부족한 운동량을 채울 참이었는데 어디서 좀 쉬어야 할 지경이었다. 마침 식사 때도 되고 해서 지나다 공원 안 높은 지역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식당이 바로 눈에 띄었다.  이전에 남편이랑 와본 적이 있는 식당인데 높은 곳이라 전망이 좋아 분위기가 괜찮은 곳이었다. 혼자 밥 먹는 것 즐기는 편이라 이제는 들어가는 거 힘들지 않은데 편하게 먹는 대중식당이라기보다 레스토랑이라 살짝 부담이 되었다. '혼자 가도 될까?'      


내가 방문한 체력검사센터


'에라, 가서 메뉴라도 확인하고 오자' 싶어 입구에서 메뉴를 확인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도 많지 않고 밖의 뷰가 보이는 창가 쪽이 비어 있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서 혼자서 식사하긴 좀 모양이 빠져 피자와 커피를 시켰다. 당연히 로맨틱한 분위기의 이곳은 쌍쌍이 앉아있고 분위기 있는 음악도 흐르고 주방에서는 자자작! 맛난 스테이크 굽는 냄새도 난다. 가시방석이다. 왠지 시선이 나한테 다 몰리는 것 같다. 그래도 씩씩하게 나는 창을 향하여 앉아 어두워지는 야경을 즐기며, 커피와 한판으로 나온 푸짐한 고르곤졸라 피자를 한쪽씩 먹기 시작했다.  



혼자 시킨 피자 한판

   

책을 꺼내 읽기도 하고 메모를 하며 꽤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는 데 저쪽 테이블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난 혼자서 밥 먹으러 못 가겠더라.”

“맞아, 왠지 창피하고 그렇지?”      


이거 뭐지?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닐 테지만, 분명히 내 풍경을 보고 자연스레 나온 대화 이리라. 순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화끈거리는 전류가 몸속을 흘렀다.  '아.. 내가 지금 창피한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혼자 밥 먹는 건 창피한 일인가? 왜 창피하지? 함께 올 사람이 없어서? 꼭 함께 올 사람이 있어야 하나? 혼자 오고 싶을 때 혼자 오는 건 이런 눈치를 받아야 하는가? 온갖 생각들이 오갔다. 아직도 혼자 밥 먹는 건, 그것도 이런 레스토랑에서 먹는 건 더더욱 사연 있어 보이는 건가? 혹여 사연이 있으면 어쩔 건데? 사연 없는 사람 없나? 집에서도 가족이지만 다투고 나면 각각 따로 밥 먹지 않는가?'      


잠시 씁쓸했다. 가시방석에서의 시간을 좀 보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타인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있다. 혼자서 밥 먹는 것조차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지만 보는 사람은 여러 가지 소설을 쓴다. 그래서 감히 엄두도 못 내기도 한다. 물론 요즘은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고, 식당도 1인석이 많아지긴 했지만,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좀 오래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식당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눈치가 많이 보인다. 꿋꿋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그들의 주제는 자연스레 다른 것으로 넘어갔는지 더 이상 내 귀에 들리지 않고 나는 다소 편안해진 마음으로 야경과 다른 사람이 서비스해주는 피자와 커피를 마시며 우아한(?) 시간을 보냈다.       


간혹 젊은 날 미용실에 갈 때 분명히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위해 갔으면서도, 직원이 어떻게 해 드릴까요? 하면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알아서 해주세요.”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렇게 남들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 익숙했던 내 삶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삶으로 변화를 겪으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용이 되었다. 혼자서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간다.      


어쩌다 세탁기를 사지 않고 지내다 새로 살 세탁기를 알아보았다. 당연히 요즘 신모델인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 세트를 생각하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전에는 통돌이 세탁기가 대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드럼세탁기로 넘어갔다. 물론 아파트 같은 좁은 공간에서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다른 가구와 어울리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바로 사로잡았다. 평소 물건 결정을 잘 못하고 사람들의 입소문에 주로 의지하던 내가 어쩌다 검색을 하다 통돌이 세탁기의 장점을 설명하는 영상을 접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통돌이 쪽으로 의사를 표현하니 딸아이들이 반대를 한다.      


엄마 요즘 누가 통돌이를 써요?

왜냐면,      


1. 가볍다. 드럼 세탁기는 통을 눕히고, 일반세탁기 모터보다 크고 무거운 모터를 뒤쪽에 두다 보니 무게중심이 뒤로 간다.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100kg 정도의 무게추와 프레임을 설치하기 때문에 일반세탁기 무게의 두배이다.  

    

2. 세탁성능이 뛰어나다. 드럼세탁기는 돌아가는 드럼 안에서 떨어지는 물의 낙차에 의해 세탁이 되어 세탁력이 약하고 빨랫감을 많이 넣을수록 낙차의 효율이 떨어진다. 반면 통돌이는 원심력과 강력한 물살에 의한 세탁이라 세탁력이 우수하다.

      

3. 청소가 용이하다. 드럼세탁기는 통이 눕혀져 있어 물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문짝에 큰 실리콘 패킹이 필요한데 여기에 곰팡이가 생겨 변색되기도 하고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4. 무릎, 허리에 덜 부담을 준다. 허리가 아픈 사람들은 드럼 세탁기 문을 열고 닫을 때 숙이거나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데, 통돌이는 그대로 서서 세탁물을 넣고 꺼낼 수 있다.   

   

5. 가장 매력적인 것은, 가격이 싸다. 같은 용량의 경우 드럼세탁기의 60-70% 정도이다.    

  

그래요? 괜찮네요. 난 괜히 엄마가 돈 아끼려고 그러는 줄 알았네요. 나중에 엄마 써보고 괜찮으면 나도 세탁기 사야 할 일 있을 때 고려해볼게요.


나로서는 새로운 변화인 셈이다. 물건 하나 사려면 결정장애가 있다. 제대로 선택하는 걸까? 고민이 많던 나는 자주 사람들 한테 물어보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 산다고 하면 그냥 대충 따라 했다. 대중의 선택도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기는 하지만 사람들 마다 취향이 다른데 왜 그렇게 대중을 따라 했을까 싶다. 나라는 사람의 분명한 욕구와 취향을 장려받지도 못했고, 스스로도 확인을 못하고 살았다.      


언젠가 미스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노래하는 꿈을 접어야 했던 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안고 있던 참가가자들의 무대는 감동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는 사회자의 질문에 한 참여자가 하는 말이, “가족이 나가보라고 해서요”였다. 그 말을 듣는 기분이 씁쓸했다. 왜 내가 나오고 싶어서라는 말 보다 타인의 권유가 먼저일까? 사실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위치이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결정 앞에 머뭇거리는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오래 그렇게 살았다. 중요한 결정을 내가 하기보다 타인의 결정에 의해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중에 일이 잘못된 듯할 때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혼자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경험하며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다르게 살리라. 그래서 드럼 세탁기 대신에 통돌이 세탁기가 필요한 이유를 차근차근 이야기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누린다 해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왜 내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해야 하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과 내게 필요한 것이 다른데.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며 한 걸음씩 나가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우린 다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            


최근에 발표한 장기하 씨의 노래 <부럽지가 않아>가 귀에 쏙 박힙니다.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








흐름에 거슬러 이전식의 세탁기 모델을 선택했어요. 오늘 세탁기가 드디어 도착하는 날이에요. 왜 그런지 마음이 설레네요. 내가 선택한 새로운 세탁기의 소감은 다음에 기회 되면 글로 남겨 볼게요. 제 선택이 옳았을 수도 있고, 기대와 다를 수도 있겠죠. 뭐, 아니면 또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면 되겠지요. 인생 별거 있나요? 너무 머뭇거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다르게 사는 기쁨 누려보시는 거 어떨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나의 한 발자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