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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y 30. 2021

엄마의 책상

자기만의 공간이 있습니까?

 

         

남편은 종종 다른 사람에게 나를 ‘집사람’이라고 한다. 별생각 없이 하는 말인데 나는 사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집사람이라고? 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바깥양반이 바깥일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있는 시간에 집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이상하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도 남편은 나를 '집사람'이라고 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행동반경이 좁아지면서 더 답답해진 사람들이 누구일까? 바로 그 집사람들이다. 가족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사람의 영토인 집이 사람들로 들끓는다. 재택근무하는 남편, 집에서 비대면 수업하는 자녀들이 방 하나씩 차지하면 부엌일을 마친 집사람들은 거실 한쪽에 앉아 가족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릴지 모른다.   


   

            왜 집사람에게는 자기 책상이 없을까?      



코로나 상황으로 바뀐 일상 중의 하나인 줌 미팅은 이제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 세대들에게도 일상적인 장치가 되었다. 주로 중년들이 대상인 강의가 진행되는 줌 미팅 때의 일이다. 대부분 남성들은 책상이나 서재의 책이 배경으로 보이는 곳에 앉아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들의 배우자인 집사람들은 거실이나 부엌 식탁, 혹은 비어있는 아이들의 책상 등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연히 예외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 문득, 질문이 생겼다. 왜 유독 집사람들에게는 자기 자리가 없을까? 아이러니다. 집 전체가 자기 것이라는 뜻으로 집사람인데 고작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니.   


     

몇 년 전 모 업체 부엌가구 광고에서 ‘부엌은 아내의 공간’이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렇다. 집사람이자 아내이자 주부는 부엌이 자신의 공간이다. 거기서는 자신이 제왕이 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부엌은 자기만의 공간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공간이다. 결국 어디에도 집사람들의 독립공간은 없다.      



        내 책상은 나의 섬      


엄마, 아내 이전에 자기 고유의 이름을 가진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자의 공간은 부엌이라고 가르쳐온 인식에 스스로 동의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이 언감생심이라면 적어도 자기만의 공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내 공간을 위해 현실 가능한 가장 쉬운 방법이 책상이다.      



나 역시 오래 책상이 없었다. 아이들이 쓰지 않는 책상을 좁은 안방에 꾸역꾸역 들여놓았다.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차를 마시기도 한다. 일단 그곳에 앉으면 그곳은 나의 밀실이고 섬이 된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불가침 지역에 들어간다는 신호이다. 이제는 알아차린 가족도 배려를 해준다. 책상에 앉아 있다는 것은 내 세계를 지켜야 할 시간임을 암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이 독립의 공간은 엄마, 아내가 아닌 고유의 나로 내 이름을 갖고 휴식하고 창조하는 곳이다. 책상 하나 이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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