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et-me-not

노래를 불러 네가 온다면

by 나모다



어제 토요일 낮 기온이 23도까지 치솟았고 3년 만의 여의도 벚꽃길에 10만 명이 몰렸다는 기사를 접했다. 굳이 여의도 아니어도 평소 사람들이 꽤 모이는 장소엔 예외 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 마스크를 낀 것만 제외하면 코로나 이전의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 주말부터 모처럼의 벚꽃구경을 하러 오랜 방콕 생활에 목마른 사람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리라.


코로나 기간 동안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축의금 정도만 온라인으로 보내는 것으로 그쳤는데 이번 주말에는 한날 한꺼번에 두 곳이나 초대를 받았고, 부쩍 공연 소식들도 많아지는 걸 보면 코로나 시대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일교차 생각해서 입고 있던 겉옷을 벗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구경하는 창밖의 사람들의 모습은 분명 뭔가 달라 보였다. 봄이다!!


그리웠던 사람들 구경을 원 없이 했다. 함께 밥 먹는 게 그리도 힘들었던 사람들과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식사도 하고, 명동거리 넘쳐나는 사람들의 설렘에 나도 같이 설레며 당연하고 흔한 것이 이리도 반갑게 느껴지는 주말이었다. 이 시절도 예측할 수 없지만 코로나 기간에 조심스러운 결혼식에 모처럼 가득한 하객들로 축하의 물결을 받는 당사자들이 무척이나 운이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변이가 나타나고 또 언제 확진자가 폭증할지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사는 요즘에 여하튼 보기 드문 풍경이 기분 좋았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벚꽃축제에 모처럼의 나들이를 하고, 누구는 아이 돌을 맞아 알록달록 한복 입은 가족이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고... 참 좋은 풍경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 지구 저쪽에서는 아직 전쟁 중이고, 아까운 목숨들이 희생된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누구는 명을 다하여 흙으로 돌아가고, 누구는 남들이 모르는 아픔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같은 순간에 이리도 다양한 삶의 모습. 그 아이러니 속에 있는 인생.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너무 행복해서 황홀한 봄날에 저 밑바닥에서 스멀거리는 어두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처럼의 외출 일정이 있는 같은 날 저녁에 공연 관람의 초청을 받았다. 세월호 합장단. 몇 년째 일반시민 자격으로 세월호 유가족 및 관련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친구에게서 공연 소식을 전해받았다.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나 되어가고 이제는 잊을 만한 일인데도 그들은 계속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숙제 같은 마음 한 자락 안고 친구 얼굴이나 보러 다녀와야겠다고 결혼식을 두 곳이나 다녀온 피곤한 몸이었지만 공연장으로 향했다.



1. 날 잊지 말아요 Forget me not



1552095.jpg 물망초 꽃 / forget-me-not


물망초는 아픈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한 청년이 애인에게 꺾어주기 위해 도나우 강 가운데 있는 섬까지 헤엄을 쳐 가서 꽃을 꺾어 돌아오는 길에 급류에 휘말렸다. 꺾은 꽃을 애인에게 던져주며 ‘나를 잊지 말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해서 ‘나를 잊지 마세요’가 꽃말이 된 꽃이다.


세상에서 아마 가장 큰 고통일 자식을 잃은 아픔을 가진 부모들의 노래를 대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오래 외면했다. 노래극을 보며 이 꽃말이 생각이 났다. 노래를 통해 그들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당신들도 이 아이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2. 노래극의 신선함

공연은 예상과 달리 그냥 합창이 아니라 노래극이었다. 모두 4장으로 각장의 이야기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2014년으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살아있었다면 20대가 되었을 세명의 청년들과 그들의 부모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노래와 함께, 그동안의 활동 영상, 중간중간 소개되는 단원들의 글의 변주가 이어졌다. 피아노 반주, 지휘자, 합창단원, 청년이 구성하는 무대는 소박했다. 각 장의 이야기에 맞게 역할극으로 진행되니 지루하지 않게 감정이 조금씩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단조로운 합창과 다이내믹한 뮤지컬 그 중간 지점의 어디선가에 위치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건조하지도 않지만, 가슴을 울리는 진동이 있었다. 왜일까? 그들은 전문 합창인이 아니다. 8년 동안 노래를 해와서일까? 가슴으로 노래해서일까? 그들의 소리는 정말 맑고 아름다웠다.



3. 세월호는 내게 주홍글씨입니다.


극 중간에 잠깐 단장이 나와서 직접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마 세월호 사건을 겪은 학생의 엄마 이리라. '여러분에게 세월호는 무엇인가요? 제게 세월호는 주홍글씨입니다. ' 나다나엘 호돈의 작품 주홍글씨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평생 A라는 낙인을 찍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겪는다. 세월호가 주홍글씨라니... 참 가슴 아픈 비유였다. 결코 지울 수 없는 낙인과 같은 세월호. 그것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참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그 고백을 듣는데 가슴 한켠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4. 8년 동안 성장한 부모들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우려했던 바가 있었다. 이들이 아직 과거에 갇혀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마음이 더 무거워지면 어떻게 하나? 놀라웠다. 그들은 8년을 지내면서, 살아내고 있었고 오히려 성장하고 있었다. 노래극의 핵심 색깔인 노란색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연습 내내 눈물바다라는 말을 들었다. 공연 중에서도 그걸 숨길 수 없는 장면들이 있었고, 관객 중에서도 중간중간 흐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분명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지만, 그들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내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연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억울하게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노래로 아픔을 잊을 뿐 아니라, 다른 아픈 사람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성숙해가고 있었다.


사실은, 극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 위로가 전해졌다. 우리 모두 그런 아픔이 있지 않은가! 더 아픈 사람이 오히려 덜 아픈 사람을 위로하다니! 그들이 바로 헨리 나우엔이 말한 ‘상처받은 치유자’였다.



5.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국가적인 참사였고, 공분을 일으켰던 일이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니 잊히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이제 희미한 기억 정도로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사건에 대한 명확한 규명을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사건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례가 수도 없이 많은 것 같다. 사건은 터지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또 비슷한 사건이 터지고... 그들이 말하는 진상규명은 앞으로 살아갈 우리 모두의 삶과 바로 연결되는 것 같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6. 생명사랑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공연장을 나서는데 기념품을 손에 안겨준다. 공연도 무료인데 기념품까지... 정말 미안하기 그지없다. 나는 열어보고 이게 무엇인지 처음에 잘 몰랐다. 유리 빨대이다. 소독할 수 있고 세척할 수 있는 친환경제품이다.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자제하자는 친환경 마음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분들은 이리도 환경까지 생각하는 분이다. 유리 빨대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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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극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의 프로그램 그리고 기념품 유리빨대와 케이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몸과 마음이 꽤 피곤했었는데, 저녁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공연장에 앉았는데, 어느새 무대와 하나가 되어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노란 새들이 재재 노래하는 그 노래는 가장 아픈 노래이며, 가장 깊은 소리이며,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었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살아내주셔서, 그리고 성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호는 역사 속에 수도 없이 많이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오늘을 제대로 살아야겠노라고 일깨워주셔서, 당신들의 아픔으로 오히려 나의 아픔을 만져주어 감사합니다.


먹성이 좋으신 분들이라고요. 언제 김밥 사들고 한번 연습장에 찾아가겠노라 혼자 다짐했습니다. 건강들 하십시오.


참, 친구야. 네가 고맙다. 그리고 존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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