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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Feb 05. 2023

친구에게 품고 있는 환상 세 가지

나의 환상적인 친구들에 대해서.

정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째서? 나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친구들에게 정과 환상을 느끼는데. 하도 정이 없다고들 하니까 이제는 정말 없나 보다 해야겠다. 정을 빼고 나니 환상 밖에 남지 않는 나의 교우 관계. 나의 환상적인 친구들에 대해서.


환상1. 시간에 휩쓸리지 않은 친구


대학생이었을 때, 나는 내 인간관계의 최대치를 맞이했다고 확신했었다. 교환학생, 봉사활동, 해외 인턴십과 같은 활동을 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그때마다 친구라는 게 쏟아지던 시기였다. 일시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다가도 알게 모르게 멀어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새로 알게 되는 친구가 잃어가는 친구의 수를 상회했다. 대외적인 활동의 정점을 맞이했던 어느 때,  그리고 취업준비라는 검은 굴 속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은근한 결심이 섰을 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많은 친구를 지니고 있을 때는 이제 내 인생에 없을 거란 생각. 앞으로 내 주위는 점점 더 조촐하고 조용해질 거라고.


이 예감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 세상은 나 없이도 바쁘고 소란스럽게 흘렀다. 그저 혼자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면서 점차 녹아내리는 관계망들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첫 직장을 가지게 되었을 때엔, 그 소식을 알리고 싶은 친구가 몇 없었다. 하지만 씁쓸하고 초라하다는 감각보다는 안심되는 마음이 더 컸다. 내가 굳이 움직이고, 찾아가고, 활동하고, 발산하지 않아도 곁에 머물 수 있는 친구가 몇이라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세월이 휩쓸어 가지 않은 친구들. 궤도와 속력이 비슷해 어떤 노력 없이도 자연스레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자연스러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구들이라고.


이때부터 나는 오래 묵은 친구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환상2. 나다움에 화답해 주는 친구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때 내 맘속에는 설렘보다는 걱정과 위화감이 가득했었다. 모든 시간이 내 시간이었던 백수시절과 달리, 하루 9시간을 팔아 살아야 하는 직장인의 생활은 나라는 존재를 더 축소하고 정적으로 만들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나는 더 많이 돌아다니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소란스러운 생활을 오래간 이어했다. 동적이고, 분주하고, 북적거리는 날들이었다. 바쁘고, 활달한 날들이었다. 현실화된 걱정거리가 있다면, 점차 작아지는 나의 존재였다. 


내가 너무 작아졌기 때문일까? 주변에 사람이 넘치고 수선스러워도 즐겁지가 않았다. 차라리 책을 읽고 싶단 생각, 언제나 집에 가고 싶단 마음뿐. 


그래서 차라리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글을 남기고, 책에 대한 사람들의 말들을 들으러 다녔다. 그 생활을 몇 해 이어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 머무는 시간이 계속 늘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꺼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건 비단 대화주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내게 편안함을 주고, 내가 그들 사이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책을 읽고 있어'라고 말을 꺼냈을 때 '너 정말 대단하다'라는 인사치레의 말이 아니라, 진짜 대화를 열어주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었다.


평생 오직 단 하나의 친구와 깊이 교감했다는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 그가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 남겼던 말을 떠올린다. 


누가 내게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음을 느낀다. 다만 '그가 그였고, 내가 나였기 때문'이라고이라고 밖에는 대답할 길이 없다.

_미셸 에켐 드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그다움과 나다움, 그 두 가지가 포용될 수 있는 대화, 그 두 명이 조화되는 관계. 너무 아름다운 거 아니야?


이때부터 나는 나다운 모습에 화답해 줄 수 있는 친구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환상3. 불꽃 되어주는 친구


이제부터는 오늘날의 이야기다. 요즘 얼굴 보며 사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오래도록 보며 지내는 친구들과 새로 알게 된 친구들의 얼굴이 혼재해 떠오른다. 이들 사이에 위계나 우열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이 둘이 대단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우선, 서로에게 기대하고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다르다. 오랜 친구에게는 일관적이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새 친구에게는 목적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이번 주말을 보내면서 문득 시간과 목적만이 친구를 낳고 기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하게 마음이 가는 친구들이 가진 공통점을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만나는 친구들과는 대체로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연초라서 신년 계획이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심이 더 가기도 하고, 내가 미래지향적인 시각에 더 가치를 두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망과 계획이 오고 간 대화라고 해서 모두 의미 있게 다가왔던 건 아니었다. 불꽃처럼 튀어 온 말들 속에는 뭐가 있었나. 하나를 꼽아보자면 동조하고 가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너와 같은 방향으로 같이 가고 싶은 마음. 너와 내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힘 보태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은 몽테뉴의 사랑과 결이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잔악한 구석이 있다. 서로에게 당근이면서 채찍일 수 있는 사이. 서로의 지향점을 이해해주고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부채질 해주는 마음에는 낭만과 실용성이 함께 깃들어 있는 듯하다.


오늘부터 나는 서로에게 장작불이 되어주는 친구에 대한 환상을 품어보기로 한다.




글을 다 쓰고 보니, 그저 같이 술 마셔주는 친구가 좋은 것은 아니었을런지..?




참고자료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동판

2.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 19호: 사랑이 두려운 시대의 사랑법,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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