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방 요깄네... 대충 살아보자...
새직장에서 감사히 즐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직원복지다. 거주지와 프로젝트 현장의 거리가 40km 이상이면 일정 금액의 월세를 지원해 준다. 얼마나 다행인지.
컨설팅은 업무 업무 특성상 일반적으로 고객사에 일정기간 상주하며 수행하기 때문에 고객사가 달라지면 근무지가 달라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을지로였다가 다음 프로젝트는 이천, 그다음은 강남. 이런 식으로 고객사를 좇아 일하러 가기 때문에 운신 폭이 넓다. 프로젝트 기간도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5년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때문에 다음에는 어디에서 얼마나 일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결국 거주지가 어디든 통근이 도저히 불가능한 지역의 일을 맡게 될 수 있다. 그래서 근무일에는 숙소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주거 안정성이나 근무지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떨어지는 직업이고, 이런 고충 때문에 직업 만족도가 깎여나간다. 일은 참 재미있고 좋은데 생활이 팍팍하달까. 세상 누가 이렇게 민들레 홀씨처럼 나돌아 다니며 일하고 싶겠나. 원하는 목적지로 떠나는 것과 떠밀려 다니는 생활을 분명 다르다. (물론 내 인생은 후자.)
이런 점에서 주거 지원은 매우 반가운 직원복지였다. 수도권 외 지방 출장 시에 숙소비를 지원해 주는 회사들은 많이 있지만, 이렇게 수도권 내 현장 투입 시에도 명확한 지원 대상을 정해 숙소비를 지원해 주는 회사는 처음이었다.
사실, 프로젝트 투입 계획을 전달받고 투입 준비를 하게 된 시점에서부터 나는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사내 규정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고, 실제로 통근길이 고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팀 동료들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회사 지원을 잘 받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팀원 중 30%의 인원의 통근시간이 두 시간이 넘었는데, 이에 대한 동료의 코멘트가 참 기억에 남는다.
이 정도면 프로젝트 리스크예요.
길고 고된 통근길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출퇴근에 지쳐 상태가 메롱해서는 인력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회사에서 숙소를 지원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이었다. 참으로 이성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날카로운 지적이다. 나는 이 말이 참 고맙기도 했다. 버릇처럼 프로젝트 원가를 생각하느라 숙소를 구하는 게 팀장님께 폐가 되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는 다 취하는 게 맞지. 그만큼 내가 일 열심히 하면 돼.
결국 팀장님과 상의 끝에 한 주간 통근하며 피로도도 보고, 주변 탐색을 하며 숙소를 구해보기로 했다. 통근은 예상과 동일하게 매우 힘들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무실이 지하철 역과 도보 20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 가장 분노를 일으켰다. 역부터 사무실까지 딱 떨어지는 버스 노선이 없어서 버스를 타나 걸으나 소요시간이 비슷했다. 버스를 타도 화딱지, 걸어도 화딱지가 났다. 따릉이를 타는 것도 시도해 봤지만 따릉이를 대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따릉이 정류장은 많은데 따릉이가 왜 한 대도 없지... 좌절...
더 참지 못하고 빠르게 회사 내부적인 승인 절차 밟기 시작했고, 방을 본격적으로 찾아봤다. 그런데 역시나. 3개월 단기로 월세가 가능한 원룸은 없었다. 방은 있다 하더라도 방을 임차하는 경우 침대며 책상 같은 기본적인 가구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실제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어... 출장러 짬빠로 숙소 형태를 넓혀 조사했다. 저가호텔, 게스트하우스, 룸메이트, 고시텔. 숙소와 관련된 대부분의 플랫폼을 쥐 잡듯이 뒤졌다. 에어비엔비, 고방, 33m2(삼삼엠투), 피터팬. 내가 원하는 반경 내에 부담이 가능한 가격대의 숙소가 없었다. 또는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그러다 겨우 찾게 된 한 곳이 고시텔이었다. (약간의 럭셔리)
고시텔 주인에게 방을 보러 갈 수 있는지 묻고 점심시간을 활용해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와 함께 방을 보러 다녀왔다.
화장실이 방에 딸려 있었고, 기본적인 가구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가구는 침대, 책상, 옷장이었는데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을 갖춘 방이었다. 창문 두 개, 세탁기, 싱크대와 조리대(화구는 공용공간에만 있지만), 냉장고, 전자레인지, TV까지. 사무실까지의 거리도 도보 5분. 최고야. 다만 문제는 예산이었다. 회사 지원액을 상당히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함께 방을 보러 간 동료는 조금 더 알아보겠다고 했다. 강남까지 거리를 넓히면 가격대나 환경이 더 나은 방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참지 않지...
사장님 계약서 쓸게요
가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는 시간을 더 쓰지 말자, 돈보다 시간이 더 아깝다.라는 논리로 나는 즉시 입주 결정을 내렸다. 실상은 발품 팔기 귀찮았...
이렇게 나의 3개월간의 양재 생활이 시작됐다.
힘껏 사는 척 실상은 대충 사는 양재생활 이야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