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바리와 미니멀리즘을 공존시키는 것은 근력
택시로 간단히 숙소 이사를 마치고, 이제는 사무실 정리를 해보자. 앞으로 3개월 간 일하게 될 사무실 책상 세팅에 필요한 온갖 잡다구니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이전 직장에서부터 늘 이동하며 일해왔기에 내 나름대로의 업무 필수품 정의가 확고하다. 백팩 하나와 이 길쭉한 천 주머니 하나가 미니멀 셋이랄까. 업무를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게 들어있으면서도,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한 무게이다. 다만 불행히도 걸음걸음마다 탕- 탕-하고 북 치는 소리가 울린다. 아마도 백팩에 넣어둔 플라스틱 서랍 속의 물건들이 뒤죽박죽 흔들리며 울려대는 소리이리라.
조금 일찍 사무실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놓고 자리 정리를 했다. 내 책상 환경은 전체적으로... 많은 물건과 많은 물건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게 최소이고 최선이다. 사실 사무실을 옮겨 다니며 일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물건이 한참 더 많았을 것이다. (발 받침대, 허킨스 스머그, 식물, 캘린더, 가습기 등을 더 두고 살고 싶다.) 이것도 나름 줄인 것...이지만 미니멀리즘을 향한 욕망과 강력한 근력이 만나면 그냥 바리바리가 된다.
사진에 나온 물품들 중 노트북을 제외하면 모두 개인적으로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다. 사용하는 물건들은 모두 손 닿을 곳에 놓여있고, 쓰고 나면 그저 쓰던 자리에 다시 두는 혼돈과 무의식의 책상이다.
전자기기
LG 그램 노트북
24인치 모니터 (크로스오버 24SF75IPS HDR IPS 슬림 UP FHD)
로지텍 인체공학 키보드(Logitech ERGO K860)
로지텍 버티컬 마우스(Logitech LIFT Vertical)
스마트폰 충전기
수납 및 거치
노트북 거치대(크리에이트 알루미늄 노트북 맥북 거치대 T3)
서랍형 거치대(미니 컴팩트 서랍형 거치대)
스마트폰 거치대(원터치 휴대용 스마트폰 알루미늄 거치대)
자물쇠형 노트북 시건장치 (노트케이스 켄싱턴락 델타19N)
기타 용품
시스템 다이어리 (오롬 오거나이저 버튼 크로커 /size: 포켓, color: 브라운)
텀블러 (스탠리 어드벤처 쇼트스택 트래블 머그 /size: 236ml, coler: 블랙)
각종 케이블 (이더넷 젠더, HDMI 젠더 등)
사무실 슬리퍼
이게 백팩 하나, 천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나 싶겠지만, 다 들어간다. 쏙 하고. 그리고 이 모든 걸 다 싸들고 다니나 싶겠지만, 다 들고다닌다. 해외 출장길까지도. 아, 저 모니터 거치대 서랍만 빼고.
오거나이저/플래너라 함은 시간관리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쓰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롬의 내지는 슬쩍 비추하고 싶다. 특히나 미라클 모닝이나 갓생을 추구하는 분들이라면... 글쎄요...
데일리 내지(1 Day 1 Page) 기준, 시간 관리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오전 5시에 일어나고 밤 11시에나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오롬이 저버리는 나의 시간은 3시간이나 된다. 사람들은 사회적 신분(직장인, 학생, 사업가 등)이나 고용 형태, 근무 제도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타임라인과 루틴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이 다이어리는 정말 쪼들린다.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이 더 부족하게 느껴진다. 기분 나빠...
그런데도 이 다이어리를 쓰는 이유는 내 사회생활 첫 다이어리라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이직을 기념해서 서랍에 묵혀두고 있던 오롬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서 쓰고 있는데, 내지도 오롬에서 맞추어 산 것을 많이 후회하고 있다. 오롬 내지가 예쁜 것도 선택의 큰 이유였는데, 억지로 칸을 늘여 작성하며 못생겨진 페이지들을 보는 고통을 2023년 내내 겪어야 한다. 디자인, 그러니까 설계의 기본은 사용성과 실용성에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내년에도 내지 디자인이 동일하면(7시~10시 구성. 심지어 정오 12시는 두 칸이다. 뭐 쓰라는 칸인지 진짜 볼 때마다 킹받는다. 점심 메뉴라도 쓰라는 건가.) 그냥 프랭클린 플래너의 내지를 사서 쓸 생각이다. 그러나 오렌지 빛의 오거나이저 껍데기만은 평생 사랑할 것... 추억이 밥보다 좋아.
5년째 쓰고 있는 나의 숏다리 스탠리 텀블러. 스탠리에서 밀폐가 되는 텀블러 중에 가장 작은 사이즈의 텀블러 같다. 236미리. 콜라 캔 하나 들어가지 않는 사이즈. 스타벅스 음료 사이즈 기준으로 톨 사이즈보다 작고, 숏사이즈에 해당한다. 너무 작아서 외면당할 법한 사이즈이지만 이 텀블러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작기 때문이다.
이 텀블러가 작고 짧퉁해서 가진 장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가볍다. 보부상 성향의 짐꾼들은 무거운 물건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알 것이다. 매일 들고 다녀야 하는 물건은 가벼울수록 좋다.
둘째, 잘 넘어지지 않는다. 긴 물건은 치기 쉽고 잘 쓰러진다. 하지만 이 텀블러는 기본적으로 높이가 짧기 때문에 손으로 치게 될 확률 자체도 낮고, 혹여 탁하고 치더라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나같이 물건에 제자리라는 것 없이 뿌려두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장점이다.
셋째, 세척이 간편하다. 일반 물컵과 비슷한 사이즈의 입구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손이 잘 들어간다. 바닥까지 쓱싹쓱싹 설거지할 수 있는 상쾌함을 준다.
하지만 이 작은 텀블러를 사무실에서 사용해 보며 느낀 최대의 장점은 작아서 자주 새로 채워줘야 한다는 점이다. 사무실에서 한자리에만 앉아 있는 건 건강에 여러모로 좋지 않다. (어릴 때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일어난 순간 종아리 혈전이 심장으로 올라와 사망한 사람의 기사를 읽은 뒤로 경각심이 매우 커졌다.) 나는 산만과 몰입이라는 극과 극 사이만을 오가며 일하는 타입이라, 산만할 때는 자꾸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싶고, 몰입 중일 때는 몇 시간이고 시간 흐름을 잊고 망부석처럼 모니터만 보고 있는다. 산만과 몰입,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유용한 것이 이 작은 텀블러다. 못해도 2시간에 한 번은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어준다. 나의 정신 건강, 혈행 건강 도우미.
더 또박또박 써지는 수성펜을 선호하지만 다이어리 작성만은 유성볼펜인 삼색펜으로 한다. 업무(청), 개인일정(흑), 중요사항(적)을 삼색으로 구분해 작성하면 공과 사를 잘 구분하며 지내고 있는 듯한 묘한 착각에 빠져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성볼펜으로 각 잡힌 글씨를 써내기는 참 어렵고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이 펜은 그나마 펜대가 묵직해서 조금 더 정갈한 글씨가 나온다.
그리고 예쁘다. 파지 하는 부분에 고무 패킹이 없는 게 가장 맘에 든다. 오랫동안 많은 필기를 해야 하는 학생에게는 미끈하기만 한 생김새가 부담스럽겠지만, 나 같이 찔끔찔끔 몇 자를 겨우 쓰는 사람에게는 고무패킹은 못생기고 불쾌한 장식일 뿐이다. (손때에 절어 묘하게 어둑해진 손잡이는 싫어..) 색 전환을 위한 버튼에 색깔이 튀지 않게 표시되어 있는 점도 맘에 든다. 펜촉에 색이 그어져 있어 펜촉만 보아도 어떤 색이 지정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세심함도 좋다.
무엇보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동료가 이직 선물로 골라준 펜이라 뜻깊다. 첫 직장에서 멘토-멘티와 같은 관계로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된 지금은 친구처럼 지낸다. 쭉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로 지낼 수 있다는 게 참 기분 좋다. 펜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오랜만에 인사 드려야지.
이로써... 양재의 사무실 정리 또한 끝났다. (갑자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