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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an 13. 2024

오리엔탈들의 오리엔탈리즘, 「아랍 단편소설선」

중동 문학 세션 #1_첫 책은 역시 단편선이지

책 고르고 읽기까지

작은 부지런

<보이지 않는 세계들> 중동 세션의 첫 번째 모임 일자가 잡히자마자 책을 구매했다. 이번 모임에서 유일하게 전자책 형태로는 출간되지 않은 책이었다. 책은 다음 날 바로 현관으로 날아들었지만, 걱정이었다. 이래 저래 벌려 놓은 일들이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을 도통 어디에서 내야 할지 난감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전에는 원래 하던 일 중 하나를 덜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인데 그러지 못했다. 공부도, 취미생활도, 글쓰기도... 모든 걸 다 해내고 싶은 마음을 덜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점심시간에 카페에 가서 커피에 빵으로 식사를 때우며 책을 읽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30쪽 정도를 볼 수 있었고, 그 정도면 2주 한 권의 모임 속도에 맞출 수가 있었다.


첫 책은 「아랍 단편소설선」


아시아에서, 중남미, 중동으로 우리 모임이 멀리멀리 나아갈수록 책 고르는 품이 더 들게 되었다. 이전 지역들은 여러 가지 단편선 중에 가장 맘에 드는 하나를 고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면, 이번 아랍 지역은 선택지가 다채롭지는 못했다.


국내 출간되어 판매 중인 아랍 문학 단편선
1. 「아랍 단편소설선」, 글누림  
2. 「아랍 여성 단편소설선」, 글누림


첫 번째 책은 「아랍 단편소설선」을 읽기로 했다. 이 책은 9개국(알제리, 바레인, 리비아, 예멘, 이집트, 튀니지, 튀르키예, 요르단, 이라크)의 젊은 작가들의 단편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팔리지 않는 세계 속으로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을 말하자면 실망스러운 한편 당혹스러웠다. 실망감은 책의 만듦새가 아쉬웠기 때문이었고, 당혹감은 혼자 읽을 책이 아니었기에 다른 참여자분들이 책 선정에 의문을 갖게 되겠구나 싶어서였다. 동시에 안타까움도 일었다. 한국에서 중동 문학의 시장성이나 독자 관심도가 얼마나 낮으면...


짠한 마음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실려 있는 20편의 이야기들이 전반적으로 짧고 홉입력이 있어서 금세 다 읽었다. 너무 빠른 호흡으로 읽어서인지 선명하게 와닿는 작품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모임 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실상 모임에서 너무 많은 말을 했지...)




첫인상들

첫 번째 모임

2024.01.06.

일요일 아침, <보이지 않는 세계들>의 첫 모임을 가졌다. 첫 모임, 첫 등장을 앞두고는 언제나 등골이 뻣뻣해진다. 다른 지역 세션에서 만나 뵈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들도 있지만 처음 뵙는 분들도 네 분이나 계셨다. 열음님을 통해 신청해주신 세 분과, 내가 다른 루트에 모임을 홍보해서 함께 하게 된 한분. 지난 세션에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만 인원을 모집했던 반면에, 이번에는 <글또>라는 개발자 글쓰기 모임에도 슬쩍 모집글을 남겼더랬다. 과연 참여를 원하는 분이 계실까, 큰 기대를 걸진 않았는데 바다님이 함께 해주시게 되어서 정말 기뻤다.


기역, 노랑, 대욱, 바다, 소희, 수피, 열음, Aka. 이렇게 여덟명이 모이게 되었다. (노랑님은 첫 모임에 참석 못하셨다.) 다양한 사람들과 모이면 담화가 더 풍성해진다.


지구에 서구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이전 세션에서의 경험이 좋아서 계속 참여하게 되었다는 분들과, 서구 중심으로 치우쳐 있는 문학 독서 생활을 넓혀보고자 하는 분들이었다.


책의 인상


책에도 짭이 있나 싶었어요.


이번 「아랍 단편소설선」의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다들 책의 물성이나 편집에 있어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탈자나 맞춤법은 황당한 실수도 곳곳에 보였고, 지명이나 인명 등의 외래어 표기도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둔 경우가 많았다. 기역님이 '책을 받아 든 순간 책에도 짭이 있나 싶었다'라는 말이 이 책의 첫인상을 잘 말해준다.


Prayer in Cairo(1865), Jean-Léon Gérôme

나는 표지와 삽화도 참 아쉬웠다. 저화질의 이미지 파일을 사용해서 깨짐이 있는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책과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이 책은 대부분 1900년 이후 출생 작가들의 단편들을 실어놓은 현대문학 단편선인데 반해, 표지 그림은 1800년대의 프랑스 작가가 그린 이집트의 종교적 풍경이었다. 표지에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 전면을 가리는 히잡의 종류)을 착용한 여성의 그림도 들어있다. 니캅은 사우디아라비아여성(63%)과 파키스탄 여성(32%)이 주로 착용하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착용률이 10%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시리아나 이집트, 튀르키예에서는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니캅 착용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작품이 실려있지도 않은데, 왜 오리엔탈리즘을 대변하는 듯한 표지를 만들었을까? 탈서구중심주의를 외치는 집필진의 글과 대치되어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무관심보다야 오리엔탈리즘이 낫다 싶다. 우리가 모여 하는 이야기도 결국은 다 환상 속의 중동에 대한 이야기 것을. 오리엔탈들의 오리엔탈리즘이랄까.


대욱님이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독자에게 더 풍성한 정보도 전달할 수 있도 책 자체의 물성이 주는 만족감도 높아졌을 텐데 아쉽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많은 단편선들이 작가 소개와 작품별 해설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는 데 반해, 이번 책은 그러한 정보가 제한적으로만 제시되어 있는 점도 작품들과의 거리감을 주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심적 거리가 크게 느껴지는 지역이라 시공간적 배경을 떠올리는 데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작품들에 대해서


언제까지나 아쉬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얼른 다음 대화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각자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이야기로 다뤄졌던 작품들 중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던 작품과 대화가 흥미로웠던 작품 세 가지를 꼽아 정리해 본다.


파괴는 문화가 될 수 있는가: <물웅덩이와 피아노>


리비아 출생의 나지와 빈샤트완(Najwa Binshatwan, 1970- )의 작품으로, 1969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무려 42년 간 리비아를 독재하였던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Muhammad Abu Minyar al-Gaddafi, 1942-2011)의 독재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문화혁명을 주창하던 카다피 정권은 1986년, 국가적으로 외국 서적을 불태우는 분서 운동을 일으킨다. 초등학생의 시선에서 분서사건을 다루어 당대 시대상과 일상을 잘 볼 수 있었고, 소설적인 재미도 뛰어나 다들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영어나 프랑스어 단어 하나까지도 박멸하려는 정부와, 이러한 사상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 학교의 책을 태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외국 문화를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이되어 가는지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 특히 아이들끼리 출신 국적을 따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주인공은 어머니가 모로코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까지도 공동체에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출신에 대한 수치심과 모멸을 느낀다. 이때 주인공은 상처받은 마음을 어머니의 음식을 먹으며 달래기도 하는데 이 음식이 모로코의 음식이 아니라 리비아의 음식임을 강조하는 대사를 읽으며 참 짠했다.


이 외에도 당시 리비아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 속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대사들이 많았다.


지퍼가 달린 바지의 장점 중의 하나는
강간범이 범죄를 저지르려고 할 때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카다피 정부는 외국 서적을 불태웠을 뿐 아니라 외국 복식을 금지했다. 여성들이 질밥 아래에 바지를 착용하는 게 금지되자, 강간 피해를 보는 여성이 늘어난다는 아이의 증언은 우리 모두를 질겁하게 한다.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이라는 문장 속에서 이들 사고 속에 깊게 뿌리내린 남성중심주의와 여성 대상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바다님이 소설 속 대사들이 작가의 상상 속에서 창조된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자주 보고 듣는 말들이었을 것이란 점이 가장 경악스러운 지점이란 말이 참 공감됐다. 이게 실상이라면...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 거야...


타인의 존재와 외부 문화를 포용하지 못하고 파괴하는 사회에서 생동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분서 운동이 일어났던 건 리비아뿐이 아니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서관처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분서도 많았고, 중국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음)와 문화 대혁명, 그리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그들 모두 문화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음 또한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분서사건 이후로도 카다피가 리디아를 20년을 더 통치했다는 것까지 알고 나면 사뭇 섬뜩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우리에게는 한강뷰 아파트가 꿈이라면: <나일강>


@egypt_omarwanderer

이집트 출생의 살와 바크르(Salwa Bakr, 1949- )의 매우 짧은 작품이다. 거대한 강물, 나일강이 흐르는 게 내려다 보이는 한 아파트에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엄마와 딸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가사를 돕는 아파트의 지하 숙소에서 지낸다. 아파트 25호실의 가사를 돕는 엄마를 따라나선 딸아이는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장난을 치며 노는 천진한 아이다. 이 천진한 아이는 아파트 발코니 밖으로 굽어 보이는 나일강이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지하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되뇐다.


 그곳에서는 그녀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장난꾸러기 아이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직접적으로는 언급되지 않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서도 생활의 고단함, 가난이 느껴졌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갑갑한 생활 속에서 바다라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웅장한 나일강을 보며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하지만 아이를 걱정하던 엄마가 발코니에 들어가는 것을 막자, 아파트에서 보던 것과 같던 나일강을 보기 위해 나무를 오른다. 하지만 나일강은 구경도 못한 채로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고 만다.


"이게 다 네가 못되고 장난이 심해서 그런 거란다!
꼭 그렇게까지 높게 올라가 바라봐야 하겠니?"


다친 딸을 애정 있는 목소리로 타이르는 엄마. 이 소설의 마지막 대사였다. 이 말이 내게는 타고난 지위에 순응하고 살자는 다정한 타이름으로 들려서 슬펐는데, 기역님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아이다! 강력한 믿음으로 마무리 지어주셔서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게 되었다.


권력이 강요하는 진실: <마타임 가의 범죄>

와지디 알 아달이 직접 찍은 그 Street

예멘 태생의 와지디 알 아달(Wajdi al-Ahdal, 1973- )의 작품으로, 예멘의 수도 사나의 중심가 마타임 가 한 카페에 앉아 있던 실내장식가가 의문의 사내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면 계좌의 전재산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당한다. 이 소설은 'A Crime on Restaurant Street'이라는 제목으로 영어권에 연극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예멘의 극작품 중 영여권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첫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극적 요소가 다양하게 담겨있는 소설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타임 가는 수도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거리로 그려진다. 실제 모습이 너무 궁금했던지라, 구글링을 해보았는데 Mataeem이라는 거리는 실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더 찾아보다가 작가가 모티프가 된 도로를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을 보고 나서 내 상상과 많이 달라서 당황했다. 프랑스 풍의 테라스가 드리워진 거리를 상상했는데, 사진 속의 거리는 천막 그늘이 드리워진,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거리에 샘소나이트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은행 지점장이라.


<마타임 가의 범죄>에는 여러 은유가 등장하는데, 가장 강력했던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샘소나이트 가방
2. 정부 신문
3. 법


"샘소나이트 가방"은 '적당한 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 소설에서는 등장하는 샘소나이트 든 사람은 하수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에 복종하는 하수인들이나 약삭 빠른 기회주의자들이 누릴 수 있는, 대단하지는 않지만 으스댈 수 있는 정도의 부를 말이다.

 "정부 신문"은 권력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일례로 한 인물은 '정부 신문을 깔고 앉아 있었다'며 비난 당한다. 코란의 시와 예멘의 상징이 인쇄되어 있는 신문을 '자신의 바지가 더러워질까봐' 깔고 앉는다는 것이 비난의 이유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예멘 사회의 진짜 권력자들을 지목하고 있다. 종교인과 정치인.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서 "법"은 정의 실현을 위한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 세계에서는 법 또한 권력자들의 지배 도구가 되었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그것을 잘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당신이 죄가 없다 해도
법의 눈에는 범죄자란 말이야.


이 대사가 어찌나 섬뜩하게 들리는지. 죄가 없는 사람도 합법적으로 범죄자를 만들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너무 잘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절정이자 핵심 메시지를 보여주는 대사를 하나 더 소개하며 작품 소개를 마치고 싶다.


진실은 주머니 속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해.
당신 주머니는 텅 비어있고 내 주머니는 꽉 차있어.
그래서 진실은 당신이 아니라 내게 있는 거야.


결국 사람 사는 게 똑같은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열음님은 '차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몰랐을 정도로 아랍과 중동 세계에 무지했던 자신에 다시금 놀랐다고 하셨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지명은 물론이고, 음식이나 옷차림새의 이름조차 너무나 낯선 것들이 많았다. 나는 심지어 요르단이나 튀니지, 모로코를 다녀왔는데도 앎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낯선 단어와 사건들에 대해서 이리저리 찾아보고 읽으셨다는 기역님을 보며 나를 되돌아보았다. 책이나 흘려 읽으면서 지식이 내 머릿속으로 알아서 굴러들어 오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데.


중동이라는 지역에 막연히 가지고 있던 이미지보다 책을 통해 새로 가지게 된 이미지가 더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 책에는 참으로 다양한 대상(종교, 여성, 가난, 신분, 정치성향, 지역)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담고 있다. 아주 강렬하고 압축적으로. 그래서 읽는 작업이 심적으로 고된 작품들도 많았다.


Aka님은 소설들이 보여주는 세계가 참 낯설고 먼 것처럼 보여도 이야기를 더 들여다보고,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 사는 결국은 다 똑같구나'를 느끼셨다고 했다. 공부하고 일하고, 여행하며 많은 지역을 다녀보면서 내가 가지게 된 생각과도 같았다. 표면적인 현상과 형식만 변주될 뿐, 이들도 결국 우리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똑같이 울고 웃으며 사는 사람들.



References

1. 「아랍 단편소설선」, 글누림, http://aladin.kr/p/dFOqk

2. 상기 책의 표지, PPrayer in Cairo(1865), Jean-Léon Gérôme, https://en.m.wikipedia.org/wiki/File:Prayer_in_Cairo_1865.jpg

3. How people in Muslim countries prefer women to dress in public https://www.pewresearch.org/short-reads/2014/01/08/what-is-appropriate-attire-for-women-in-muslim-countries/

4. 한겨레, 시리아 대학 ‘니캅’ 금지령(2010.07.20)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431311.html

5. 이집트의 사진, Omar(@egypt_omarwanderer) at Pexels, https://www.pexels.com/ko-kr/photo/15167888/ 

6. 와지디 알 아달이 찍었다는 그 문제의 Street 사진, Arab Stages, https://arabstages.org/2016/10/a-crime-on-restaurant-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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