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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an 28. 2024

새로움의 광휘도 저물어 가네,「새로운 인생」

튀르키예, 오르한 파묵


<보이지 않는 세계들> 중동문학 세션의 두 번째 책을 읽고 모임을 가졌다.


책을 읽기 전에


책에 대해 북클럽 분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세 가지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작가가 아닐까.


오르한 파묵 (1952- )

ⓒ 민음사


파묵의 대중성과 작품성


오르한 파묵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가 이번에 함께 읽은 「새로운 인생」튀르키예 문학 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평


뿐만 아니라, 오르한 파묵은 튀르키예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새로운 인생」과 오르한 파묵


오르한 파묵에 대해서 뒤늦게 찾아 읽어보다가 이 소설과 얽혀있는 점들이 눈에 띄어 세 가지만 정리해 보았다.


Keyword 1. 이스탄불

"우리의 머릿속에 책이 있고, 그것을 외우게 되자, 이스탄불 거리는 아주 다른 빛으로 빛났고 우리의 것이 되었어."


오르한 파묵은 1952년 이스탄불에서 태어났으며 지금까지도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 중 한 도시가 이스탄불인 건 우연이 아닌 것이, 그는 동시대의 튀르키예에 대한 소설만을 써왔다고 밝혀왔다. 오르한 파묵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도시와 시대를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새로운 인생」 속에도 그의 개인적인 체험과 사색들이 묻어있는 듯하다.


Keyword 2. 건축학과

"이틀 전, 내가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어느 건축학과 여학생의 손에 들려있었다."


파묵은 어릴 때에는 시각예술에 대한 열정을 키웠지만,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는 건축학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물셋이 되던 때, 소설을 쓰기로 결정했다. 소설 속에서는 '자난'이 건축학을 전공한 것으로 나오며 오스만과 자난의 만남이라든지 에피소드들이 건축학과의 교실에서 전개된다.


Keyword 3. 철도

"기차가 서는 곳이기만 하면 나는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살 수 있단다. 설사 그곳이 세상 끝에 있는 간이역이라도 말이야."


이 소설 속 마법적 책, 「새로운 인생」을 쓴 저자 르프크 하트는 철도청에서 평생을 근무해 온 인물이다. 그는 어린 오스만에게 기차가 서지 않는 곳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철도에 애정을 지녔다. 그의 저작물들이 서구의 이야기에 튀르키예의 어린이를 융합한 작품이었던 점을 보면, 그의 작품 세계가 서구와 튀르키예를 이어주던 철도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철도원이라는 직업 터전 이상으로, 서구와 튀르키예를 연결시켜 주는 길목으로써 철도를 사랑했던 것 같다.


오르한 파묵은 튀르키예 공화국 초기에 철도 건설로 재산을 모은 집안에서 유복한 유년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에게 철도는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가문의 재산을 쌓아준 사업거리 이상의 의미를 두고 있겠단 생각이 든다. 오르한 파묵이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서구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했던 점을 보면 철도원 르프크와 비슷한 맥락에서 철도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줄거리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민음사 세계문학에서 손꼽힐 첫 문장이 아닐까. 책 한 권이 인생을 뒤흔드는 경험을 나는 해보지 못했지만, 책의 주인공 오스만이 증언하는 그의 체험 하나하나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독자로써 우리는 '그 책은 과연 어떤 책일까?'를 끝없이 궁금해하며 이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다.


책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오스만은 한 책을 읽으며 강렬한 체험을 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을 예감한다. 오스만은 책이 말하는 진실, 책이 말하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추적하다 마찬가지로 그 책을 읽은 자난과 메흐메트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무엇을 보았지?” 

“새로운 인생.”

“그걸 믿어?” 

“믿어.”

오스만은 자난을 만남과 동시에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자난은 메흐메트를 사랑하고 있다. 메흐메트는 오스만에게 책이 말하는 새로운 세계는 없다고 경고하지만, 오스만은 무시한다. 어느 날, 메흐메트는 정체불명의 남자의 공격을 받고 종적을 감추고, 자난과 오스만은 그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이 버스에서 저 버스로, 길고 험난한 노선만을 골라 타고 다니며 메흐메트를 찾는다.


우리는 우리 얼굴에 비친 책의 빛 때문에 길을 나섰고, 
직감을 따라 그 길을 나아가려고 했으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자난을 향한 오스만의 사랑은 더 깊어져만 가고, 그들의 여행의 목적은 빛바래고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오스만은 정말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해 여로에 오른 것이었을까? 자난을 좇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좇던 건 사실 자난이 아니라 그의 작은 선구자, 메흐메트는 아니었을까?


소설은 오스만의 여행이 종국에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주며 마무리되지만, 앞선 물음에 답은 썩 명쾌하지 않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일요일 아침, <보이지 않는 세계들> 북클럽 모임이 열렸다. 지난번 「아랍소설 단편선」 모임과는 다른 두근거림을 느꼈다. 궁금한 게 많아서 얼른 다른 분들의 감상과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이번 모임도 정말 열 띄게 이야기했다.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꺼내놓는다.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 견딜 수 없는 지루함


ROMAN ODINTSOV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5321413/

「새로운 인생」을 읽고 나서 책에 대한 인상을 나누며 다들 입 모아 칭찬했던 부분은 이 책의 문학적 아름다움이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문학적 감동을 느끼며 읽었다. 특히나 책의 서두가 감탄스럽다. '인생 책'을 만난 오스만이 책에서 받은 경의로움, 외경심에 대한 표현이 끝내준다.


하지만 그 이후, 메흐메트를 좇아 시작되는 자난과 오스만의 여행은 다소 넋을 잃고 읽었다. 다들 그들이 묵묵히 해나가는 버스 여행 부분에서 책을 내려놓고 싶은 위기를 느꼈다고들 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끝없는 여행에 대한 피로와 장거리 버스에서 보게 되는 풍경 묘사가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나머지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재미는 책을 완독 했을 때 느낄 수 있었다는 대욱님의 말씀이 참 공감됐다. 책을 읽다 힘겨워서 탈주해 이 포스팅을 읽게 되신 분들이 있다면, 꾹 참고 조금 더 읽어보시라고 응원의 말 드리고 싶다. 오르한 파묵의 이야기꾼적 면모를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수피즘에 대한 헌사인가 꼬집기인가


Soner Arkan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2943931/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인 '수피즘(Sufism)'. 기역님이 조사해 주신 내용을 공유해 주셨다. 


수피즘은 이슬람교의 분파로 신비주의적 성격을 띠며 전통적 교리와 율법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신과 합일이 되는 것을 최고 가치로 여긴다. 이를 위해 코의 형식을 타파하며 4단계의 자아 찾기 여정이나, 춤(사진)과 노래로 구성된 독자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예수를 존경하고 기독교 포용적인 종파라는 점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 책 속 오스만의 모습은 신에게로 다가가려는 수피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새로운 인생, 새로운 세계를 찾아 고행에 가까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오스만의 모습이 수피즘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한껏 과장해 웃음을 주는 캐리커처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스만이 고생 끝에 메흐메트를 찾아 대면하게 되었을 때가 그 절정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그의 대답이 ‘응.’, ‘아니.’, ‘물론.’처럼 너무나 짧았기 때문에,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나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매번 깨닫곤 했다


상위 가치를 찾아 헤매는 오스만의 집착, 그 끝의 절망과 허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자난


오스만이 열렬하게 사랑하는 인물이자 끝내 가지지 못한 인물이었던 자난. 오스만의 일방적 짝사랑을 보며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스만의 사랑은 순수하고 구슬퍼 보이다가도 소름 돋고 역겨울 때가 있었다. 그 모든 감정을 감내해 주었지만 받아주지는 않았던 그 자난은 성녀인가, 악녀인가? 혹은 천사일? 


자난은 갑작스레 오스만을 떠나고 의사 남편과 결혼해 독일로 떠났다는 소식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결혼했다는 의사가 나히트–메흐메트–오스만은 아니었을지 의심이 든다. 그도 의학 전공이었잖아.


아타튀르크


Tuba Karabulut 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3661149/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는 이 소설 속에서 오스만이 여행했던 도시들에서 동상의 모습으로,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등장한다. 그는 튀르키예 공화국의 건국자였다. 달리 말하면 그는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킨 자로, 근대 튀르키예의 아버지이자 오스만 전통을 무너뜨린 파괴자였다. 


바다님은 소설 속 아타튀르크가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해석하셨다. 그는 동상의 모습으로 마을의 중심지에 서있다. 대화도 할 수 없고, 높은 곳에 고정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아타튀르크가 그 시대 튀르키예에서는 전래 없이 개혁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는 등 개혁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리아 민족의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고 외래어 금지 등 민족주의적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내 눈길을 끌었던 건 아타튀르크가 서구화의 아이콘이었다는 점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서구화에 대한 튀르키예 사람들의 양면적 반응을 보여주는 장치들이 많다. 예컨대 오파 비누 향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버스 안 영화에서 보이는 천 번의 키스신은 뜬 눈으로 보는 오스만은 서구문화에 대한 적개심을 지닌 동시에 순응적인 모습을 표상한다. 결국 아타튀르크도 권위주의와 개혁가라는 양면적 인물로서 제시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끝과 끝은 닿아있다


오르한 파묵이 굉장한 이야기꾼임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소설 초반에 물 흘려보내듯 묘사되었던 장면과 인물들이 소설 말미에서 다시 상기되고 연결성을 갖추며 닫힐 때였다. 간명한 예로, 오스만이 책에 빠질 때 이웃에 이사 왔던 여성을 아내로 맞게 된다는 점이나, 나린 박사의 아들이 메흐메트였다 거나, 철도원 르프크 아저씨가 책의 저자였다는 점 등이 있다. 마지막에 다 와서 다시 처음으로 독자를 되돌려 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비단 기의 순환만이 아니라, 양극의 것으로 여겨오는 가치들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연결된 하나의 것임을 보여주는 이야기 솜씨도 뛰어나다. 특히 오스만이 숭배하던 그렇게 찾아 헤매던 「새로운 인생」 책이 르프크 아저씨가 당시 읽던 온갖 책의 짜깁기였다던가, 캐러멜  '새로운 인생'의 이름이나 민요, 천사 그림에는 어떠한 큰 의미도 없었다던가 하는... 나는 오스만이 갈구하던 거대한 진실이라는 것이 파헤치면 파헤치는 대로, 분해하면 분해하는 대로 더 작아지고 솜털 같이 가벼워지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 책이 뭔데?


안타깝게도 이 책 속에서는 그 책의 정체가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어떤 내용의 책인지 독자들은 끝끝내 알 수가 없다. 그저 르프크 아저씨가 여러 책을 짜깁고 따와서 만들어낸 책이었을 뿐이라는 언급이 있을 뿐이다. 아마 이 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를 못느낀 게 아닐까 싶다. '그 책'이란 결국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어딘가에 빛나는 새 삶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오르한 파묵이 일말의 미련 없이 이야기를 끝맺어 버린 게 아쉬울 분들을 위해서 파리 리뷰의 인터뷰 한 부분을 들려드린다. 이 인터뷰에서 파묵은 자신의 문학적 인생에서 '새로운 인생'이 되어준 책을 밝히고 있다.


Q.『새로운 인생』의 첫 줄은 “어느 날 나는 책 한 권을 읽었고, 내 인생 전체가 바뀌었다.”라고 되어 있죠. 그 정도의 영향력을 미친 책이 있습니까? 

(파묵) 스물한두 살 때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가 제게 아주 중요한 소설이었습니다. (...) 그 책이 저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어요. 그 흔적의 영향은 제가 발전시킨 어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후략)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1」, 다른


그렇다. 파묵의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책은 윌리엄 포크너의「소리와 분노」였단다. 하지만 파묵도 새로운 책을 읽는 걸 멈추지는 못했으리라. 포크너가 준 삶도 늘 새로움으로 빛날 수는 없기에. 


이 책과 글을 읽으신 분들께 질문하며 이 글 마치고자 한다. 당신에게도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책이 있었나요?



참고 자료

1.  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 민음사, https://ridibooks.com/books/509001277

2. 파리 리뷰,「작가란 무엇인가 1」, 다른,  https://ridibooks.com/books/75403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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