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출장 일정 속에서 마음의 준비만 6개월째
아놔, 이번 주엔 마음의 준비를 하라면서요. 출장이 또 미뤄졌다.
이번 출장이 미루어진 것은 6개월도 더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출장은 다음 달, 그다음 달, 그리고 그다음 달로 차츰 미뤄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다음 주, 그다음 주, 정말 다음 주, 이제 진짜 다음 주, 최종적으로 다음 주, 최최종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다음 주... 이렇게 끝도 없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6개월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도록 단 한 번도 같은 이유로 출장이 미뤄진 적은 없다는 것이 코미디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화려한 환경, 거기에 더해지는 작고 소심한 사유들, 별것 아닌 사건들. 아, 머리가 아프다. 이렇게 오래도록 '내일이라도 출장 갈 수 있는 상태'로 지내보기는 처음이다. 다음 주가 출장인 세계에 감금된 지 6개월째. 진절머리가 난다. 이제 좀 그만하고 나가면 안 될까?
해외 출장이 잦기에, 출장이 미뤄지는 일 또한 자주 겪는다. 그런데도 이번 출장 연기는 왜 이렇게나 화가 솟구칠까? 그건 계획적으로 조직된 출장과 그렇지 못한 출장이 개인의 생활에 주는 충격면에서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안락한 생활의 방해물이며 훼방꾼, 출장. 해외출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생활을 끊어놓는다. 단기 출장이라고 하더라도 출장이 한 번 잡히면 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강의나 동아리 활동에는 큰 지장을 받는다. 이러한 출장을 한두 번도 아니고 줄지어 다녀야 하는 직장엘 다니다 보면, 삶이 조금 피곤해진다. 하다못해 헬스장 정기권을 끊으려고 해도 환불과 회원권 정지 등 약관을 사전에 확인하거나 미리 협상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게 딱해지기는 해도, 차분하게 계획이 수립되어 출입국 일정이 확실한 출장이라면 맞추어 잘 대비할 수 있다. 출장 일정에 맞추어 내 생활을 이리저리 조정하다 보면 귀찮기는 해도, 여전히 내가 내 생활을 잘 컨트롤하고 있다는 걸 감각할 수 있다. 일정이 미리미리, 정확하게 수립될수록 사적 용무들을 출장의 앞-뒤로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간단하게는 병원 예약을 바꾼다던지, 친구와의 약속을 출장 일정을 피해 잡는다던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게 협조적일수록, 또는 관계가 오래되고 두터울수록 이러한 조정의 스트레스가 적다. 이리저리 연락을 돌리고 양해를 구하며 일정을 맞춰가는 것은 성가신 일일 뿐, 내 생활에 파괴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거나, 장기적인 계획에 막 착수하려 할 때에는 정말 큰 장애물이 된다. 파도치는 해안에 모래성을 쌓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살만 하다.
이번처럼 일정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변동되는 출장은 생활 파괴를 넘어서 삶의 의욕까지 꺾어 놓는다. 지금 시점은 11월이지만, 이 출장을 위한 '신변 정리'의 압박을 받아온 것은 지난 5월부터였다. 곧 나가서 3개월 정도 해외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지난 6개월 간 들어온 것이다. 그럼 그 6개월 간의 내 생활이 얼마나 보람될 수 있었을까?
첫 번째로 나는 여름휴가를 날렸다. 어디도 갈 수 없었다. "왜? 그냥 막 떠나면 안 돼?" 응, 안 돼. 출장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짐을 싸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2-3주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이는 결국 보름 후에 출장을 가야 한다면, 오늘 당장부터 준비는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휴가요? 어림없지.
두 번째로 나는 정기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모든 계획을 취소하거나 보류해야 했다. 학원, 다닐 수 없었고요. (중간에 출장으로 날아가게 되면 내 강의비는 누가 물어준단 말인가.) 시험 응시, 한국에 없을 줄 알고 신청 안 했고요. (공부가 그냥 할 만큼 재미있지는 않거든요. 응시비 십만 원도 적은 돈이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스페인어 강독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 북클럽 등 욕심이 많았으나 무엇 하나 꿈꿀 수 없었다.
세 번째로 나는 모든 인간관계 망에서 모임 브레이커가 되고 말았다. 가장 아픈 기억으로는 지난달 친구들과 계획하였던 제주 여행을 파투 내야 했던 것이다. 또 미뤄지겠거니 하고 하루 연차면 다녀올 수 있는 콤팩트한 제주 일정을 친구들과 뚝딱뚝딱 만들어 두었는데, 갑자기 그 주에 출국해야 한다고 하더라. 당연히 제주 여행을 취소했고, 친구들은 실망했다. 그런데 출장은 또 미뤄졌고, 나는 아직 제주로도 출장국으로도 떠나지 못했다. 비단 여행만이 아니라 모든 만남과 모임에서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이제는 내가 만남을 회피하고자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지경이 되었다. 그럴 때의 기분이란? 물론 아주 거지 같고, 더럽고, 비참하고, 외롭다.
네 번째로 내게 연애는 남 일이 되었다. 이렇게 출장 일정이 이렇게 오락가락할 때면 나는 장기적으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모든 일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성실하지 못하고, 꾸준히 노력할 줄 모르며,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타이밍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기대만큼 호응해내려면 아주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도 하고, 참 어려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 이런 기분으로라도 살아야 한다니.
이런 때, 일상 파괴적 출장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가진 게 참 위안이 된다. 독서. 내가 독서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직장 생활을 5년이나 할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무엇'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무언가를 반복하고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고 있을 때야 겨우 날마다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내 것이라는 위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 사실을 매우 일찍 깨달았고, 그 '무엇'도 금세 찾았다. 하던 대로 읽던 책을 읽으면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내 일상의 기둥.
내 손으로 무너뜨렸던 계획들에게 다시 자리를 내어주기로 한다. 부서진 일상 계획을 또다시 만지작 거려본다. 출장이 '또' 미뤄졌지만, 출장이 미뤄져서 '다시' 할 수 있게 된 일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친구와의 저녁 약속을 잡아보고, 팔아 버리려고 했던 미술관 표를 지갑에 넣어둔다. 모래 삽을 들고 다시 모래성 쌓기를 시작한다. 잊고 있던 시험 응시 일정을 다시 찾아본다. 출국예정일 직전 날이 시험이다. 언제 또 날짜가 맞아서 시험을 볼 수 있게 될지 모르는데, 일단 응시하기로 한다. 이번 일정 연기의 모래성은 SQLD인가 보다. 이 와중에도 무언가를 완주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에 나도 좀 끼워줬으면 좋겠다. 아기 돼지 사 남매로. 막내는 바닷가에 살면서 모래로 집을 지었습니다. 막내의 집은 파도가 치면 무너져 다시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바닷바람에도 조금씩 깎여 날아갔습니다. 그래도 막내는 매일 조금씩 집을 지어가며 모래집에 살았답니다.
그렇지만 출장 또 미뤄지면 가만 안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