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좌석 알려드립니다.
항공권을 예매했다. 이제 드디어 가는 건가.. 하고 출장이 실감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 비자 신청을 위해서 e-Ticket이 필요해서 항공권을 미리 예약한 것일 뿐, 출장이 더 미뤄질 확률이 충분히 존재한다. 이놈의 일정이 이대로 확정될 것인지, 또 언제 바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항공 예약증을 받아보고 나니 '이제 출장을 가긴 가나보다'라는 감각이 확실해진다.
다들 항공 예약을 마치면 무얼 제일 먼저 하는지 궁금해진다. 통상적으로 출국 1-2주 전에나 항공 예약을 하는 나의 경우는 서둘러 좌석부터 배정해 놓는다. 워낙 출국에 임박해 예약을 하는지라 인기 노선의 경우 원하는 자리를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택할 수 있는 좌석이 몇 개 없는 때면 좌석별로 단점이 뚜렷한 경우가 많아서, 어떤 좌석이 차악일지 꽤나 진지하게 자리를 택하게 된다.
비행기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다년간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들과 출장을 다닌 사람으로서 장담하는데 그런 자리는 없다. 다만 최악의 자리라면 쉽다. 비행기 중앙, 양 옆으로 낯선 승객들 사이에 끼어 앉아야 하는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반면, 선호하는 좌석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여태까지 정말 다양한 이유로 이런저런 자리를 요청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사람들은 비행기 좌석을 고를 때 어떤 것들을 고려할까?
좌석 선택 문제의 클래식.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 사항이다. 복도석이 좋을까, 창가석이 좋을까?
복도석은 복도 쪽으로 공간이 열려있기 때문에 더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야 할 때 옆사람을 방해하지 하지 않고 편안히 다닐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복도 쪽에 앉은 사람이 자고 있어서 화장실 참아 본 기억.. 나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반대로 복도석에 앉으면 안쪽 자리에 앉은 사람이 원할 때마다 비켜주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잘 자다가 일어나야 할 수도 있고, 영화를 보다가 이어폰을 뽑고 비켜 일어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옆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잠들 수도 없고,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기다리고 있게 된다. 언제 오시나요..
TIP
이런 귀찮음이 싫다면, 복도석을 택하더라도 내 안쪽으로 앉는 사람이 적은 좌석을 택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비행기 좌석이 3x4x3 배치라면 가운데 4열의 양쪽 복도석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창가석을 선호한다. 바깥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가장 큰 메리트이다. 특히 일몰이나 일출을 볼 수 있는 시간대의 비행이라면, 무조건 무조건 창가석을 사수한다. 그리고 고립된 공간에 조용히 머무를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아무래도 복도석에 앉게 되면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을 한다거나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등을 하기에 부담스럽다. 창가에 앉으면 테이블에 물건을 잔뜩 올려놓고 개인 업무를 봐도 눈치 볼 일이 없다. 테이블 위를 난잡하게 어질러놓고 잠들어도 오케이. 난 그런 편안함이 더 좋다.
그래도 가끔 창가석을 버리고 복도석을 앉는 경우가 있다. 장에 문제가 있다던지 생리 중일 때는 아무래도 복도석을 앉게 된다. 망설임 없이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야 하잖아요.
비상구 좌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키가 커서 다리 뻗을 공간이 더 필요하다던지, 좁은 공간에서 갑갑함을 호소하는 하는 분들이 비상구 좌석을 선호한다. 비상구 좌석은 넓은 공간을 보장한다. 그렇지만 나에게 비상구 좌석은 절대로 앉고 싶지 않은 좌석 중 하나다. 키가 크지 않아서 비행기 앞뒤 간격으로 불편함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으로서 단점이 더 와닿는다. 내가 생각하는 비상구 좌석의 단점은 이렇다.
비싸다.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추가 요금을 징수한다.
춥다. 정말 춥다.
짐을 내려둘 자리가 없다.
이것저것 챙겨가지고 다니는 게 많은 사람이라면 가방을 가까이 둘 수 없는 건 큰 불편이다.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없거나 다를 수 있다.
좌석 옆 팔걸이 쪽에서 꺼냈다 넣었다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화장실이나 승무원들의 업무공간과 가깝다.
이게 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청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사람들이 오고 가는 분주함 때문에 휴식하기가 어렵다.
사고 시 다른 승객의 탈출부터 도와야 한다.
이런 것까지 신경 쓴다고? 의문스러우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비행기 앞쪽과 뒤쪽은 각각 장단점이 명확하다.
비행기 탑승은 꼬리 쪽부터 하고, 하차는 선체 앞쪽에서부터 한다. 얼른 비행기에 타서 여행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면, 꼬리 쪽 좌석을 택하면 좋다. 입국 수속이 오래 걸리는 국가를 가는 길이라면, 선체 앞쪽을 추천하고 싶다. 입국 수속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국가에 도착했다면 얼른 내려서 입국 수속 줄을 빨리 서는 게 급선무다. 나는 줄을 늦게 선 죄로 3시간까지도 기다려봤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늦게 수속을 마치고 나오더라도 30분-1시간 정도가 걸리고, 수하물이 나오는 데도 이 정도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나는 입국 수속이 오래 걸렸던 기억이 있는 국가(방글라데시..... 터키...)가 아니라면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쓰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빨리 내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선체 앞쪽이 좌석 점유율이 높다. 꼬리 쪽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적어진다. 사람이 적은 쪽에 앉고 싶다면, 특히 내 옆자리가 비어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꼬리 쪽 좌석을 선점해두는 게 좋다.
비행사고에 대한 분석 결과, 꼬리 쪽 탑승객의 생존율이 (살짝) 더 높다고 한다. 관련된 실험 결과들을 소개해 드린다.
과거 발생한 항공기 사고를 통해 ‘기내 어디쯤 앉아야 제일 안전한가’에 대한 분석은 몇 차례 시도된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미국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 메커닉스’가 발표한 자료다. 잡지는 1971년 이후 항공기 추락 사고를 분석한 결과, “좌석 위치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생존율은 기체 앞부분이 49%, 날개가 있는 중간 부분이 56%, 그리고 뒷부분이 69%였다. 즉, 뒤쪽에 앉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2015년 비슷한 조사를 실시했다. 비행기 좌석 위치별 사망률을 조사한 것이다. 17건의 비행기 사고를 분석했더니, 뒤쪽 자리가 32%, 중간이 39%, 앞쪽 자리는 38%의 사망률을 보였다. 사고 통계만 놓고 보면, 여기서도 역시 “뒤쪽 자리가 좀 더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해주는 실험 결과가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은 비행기를 추락시켜 ‘위치에 따라 충격을 얼마나 받는지’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보잉727에 인형(충돌 실험용) 무리를 태우고 대담하게 사막에 추락시켰다. 그 결과, 비행기 앞부분은 완전히 잘려나갔다. 가장 앞쪽에 탄 인형은 12G의 힘을 받아 즉사 수준이었고, 중간 부근은 8G, 꼬리 쪽에 앉은 인형은 6G의 힘을 받아 뒤쪽이 가장 덜 위험한 것으로 판명됐다.
원문: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26658186&memberNo=28643647&vType=VERTICAL
그렇지만 비행기 사고는 사망률이 매우 높은 치명적 사고인 만큼, 안전을 위해서 꼬리 쪽 좌석을 고집하기보다는 비행기 중 안전벨트 착용을 잘 지키고, 미리 비상구 위치를 잘 알아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복도냐 창가냐, 선체 앞쪽이냐 뒤쪽이냐도 중요하지만 아래 사항들도 꼭 한 번 더 체크해서 낭패가 없도록 해야 한다.
맨 끝줄 좌석은 높은 확률로 좌석 등받이를 기울일 수 없거나, 기울일 수 있는 각도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항공사와 기종명을 검색해보면 확인이 가능하지만, 귀찮으니까 맨 끝줄 좌석은 그냥 거른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를 내내 들으며 비행하고 싶은 분은 없으시겠죠? 비단 물 내리는 소리뿐만이 아니라 승객들이 계속 오고 가기 때문에 번잡스러울 수 있다. 최소한 3석 이상 떨어진 자리를 택하는 것이 현 명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호하는 좌석은 어디일까? 좌석 선택 시 나의 체크리스트를 나눠본다.
HINT: 어린 왕자와 같은 감성의 소유자
좌석을 선택하는데 비행시간은 왜 체크할까? 그것은.. 비행시간에 따라 창밖 풍경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일몰이나 일출을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 만약 없으시다면, 다음 비행에는 시간이 맞는다면 꼭 챙겨 보시기를.
하늘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은 정말 경이롭다. 처음 비행기에서 일몰을 보게 되었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행성 B612에서 노을을 좇아 하루에도 몇 번씩 의자를 옮기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달까. 아무래도 어린 왕자의 노을 바라보기는 생텍쥐페리의 꿈의 투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생텍쥐페리는 파일럿이었으니, 더 큰 창으로 해돋이와 노을, 달과 별들을 볼 수 있었을테고 서쪽으로 지는 해를 쫓아 영원히 날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늘 창가에 자리를 잡고는 일몰이나 일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동이 트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일출 시간이 지나도록 떠오르는 해가 보이지 않아 알게 되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므로, 비행기의 운행 방향에 따라서 한쪽 창문에서만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걸.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직접 겪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이후로는 Sun Locator Lite이라는 태양과 달의 시간대별 위치를 탐색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여전히 매번 첫 번 경험 이상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끼니까, 태양과 달이 뜨는 창가 자리는 놓칠 수 없다.
나는 꼬리 쪽 좌석을 좋아한다. 탑승객 밀도가 낮아서 조용하고, 쾌적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창밖의 풍경도 꼬리 쪽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적어도 만년 이코노미석만 앉는 나에게는 그렇다. 이코노미석의 가장 앞쪽 자리여도 날개 뒤편이기 때문에, 앞쪽에 앉을수록 날개와 가깝다. 창밖을 보려고 창가석을 골라 앉았는데 풍광 절반을 비행기 날개가 차지하고 있으면 꽤나 당혹스럽다.
넓은 하늘을 보려면 역시 비행기 뒤쪽에 앉아야 한다. 날개 없이 뻥 뚫린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언제가 돼야만 가능할까?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누비던 생텍쥐페리가 무진 부러워진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 출장길, 긴 비행시간을 편안히 보내려면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일정 거리 확보는 필수죠.
사진에서는 상사와 내 좌석 간 거리를 거의 30미터는 띄워 놓은 것 같은데, 이 정도까지의 거리는 사실 필요 없다. (빨리빨리가 디폴트인 우리 상사 맞춤 좌석... 그가 먼저 내려서 입국 수속 줄까지 미리 서 주신다면 개이득...) 3-4석 정도 앞뒤로 띄워 놓아도 크게 불편할 일은 없다. 오히려 탑승과 하선 시 서로 위치 파악이 바로 가능하기도 하다.
또는, 좌우측으로 자리를 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좌우로 떨어뜨려 놓으면 복도를 오고 가며 서로를 지나치게 되는 일이 없어서 좋다.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있는지 별로 알리고 싶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이상한 영화를 보는 건 아닙니다.) 업무적인 관계일수록 서로 간에 적정하고 확실한 거리를 둬야 각 개인이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내게) 완벽한 좌석 선택을 마쳤다. 좌석 배정에 특별식(갈 때 해산물, 올 때 동양식 채식)까지 주문하고 나니, 출장 가는 날이 조금 기다려지는 것 같기도?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