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잘 보냈던 거야.
앗, 또 한 해가 간다. 연말이 되면 섬찟함을 느낀다. 뭘 했다고 벌써 추운 겨울이 왔을까? 한 해가 다 가버렸다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하며 쓸쓸함에 캘린더를 뒤적여보게 된다. 올해는 어떻게 보냈더라, 그 흔적을 사락사락 들춰보다 보면 뿌듯함과 아쉬움이라는 상반된 마음이 교차한다.
올해도 KPT 방식으로 한해를 회고해 보기로 했다. KPT 회고법은 지난 일을 Keep, Problem, Try 세 가지 측면에서 리뷰해 보는 방식이다. 회고 과정에서 지속해야 할 것과, 장애물이 되었던 것,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 도전해 볼 과제를 정의할 수 있어 유용한 회고법이다.
KPT 회고 방식에 대해서는 작년에 글을 남겨두었다. KPT 회고 방식의 장점과 효과, 그리고 어떻게 KPT를 잘 해낼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https://brunch.co.kr/@hnote/129
2024년을 가볍게 돌아보자면, 즐겁고 뿌듯한 한 해였다. 물론 욕심이 날마다 커지는 하는 탓에 욕심껏 다 살아내지는 못했지만 계획했던 대부분의 일들을 꾸준히 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렇게 조금씩 이어나간 작은 행위들이 성과들로 맺어졌던 한 해였다. 작고 깜찍한(그래서 더 소중한) 나의 열매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며 2024년을 뒤로해본다.
2024년 키워드를 꼽아 봤다. 사적인 영역은 글로 남기기에 부담스러워 제외하고 나니 프로젝트와 스터디, 글쓰기와 독서 네 가지가 남겨졌다.
뽑아두고 보니 해야 할 것(프로젝트와 스터디)과 좋아하는 것(글쓰기와 독서)이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는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든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과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싶다. 달리 말하자면 힘을 써야 할 일과 힘이 나는 일을 잘 알고 싶다. 그래야 내가 힘써야 할 곳과 힘이 돼주는 것 사이를 주저 없이 오가며 살 수 있을테다. 일과, 글과, 책과 습(習).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힘이 나고 안심되는 단어들이다.
키워드를 한 단계 더 브레이크 다운 해보았다. 각 영역별로 올해 겪었던 소주제들이다.
올해 두 개의 프로젝트를 했다. 서로 다른 도메인(신용평가와 물류)의 고객사였지만 업무 주제는 데이터 거버넌스로 유사했다. 그 외에 본사에서 지내면서 AI 시장조사나 그래프 DB 관련 태스크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들과 함께 일해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은 해였다. 새로운 걸 접해보았고, 개선할 기회도 주어졌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던 해였다. 사실 대학생 때나, 이전 직장에서나 늘 공부는 해왔지만 올해와는 무척 다른 기분이었다. 원치 않는 걸 공부했거나,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어서 아쉬움이 컸다. 올해에는 오랜 기간 고민하던 방송대 편입학을 했고, 관심 가진 과목들을 수강했다. 사내 동기들과 이런저런 주제로 스터디를 꾸려 지식 공유도 하고, 선배 동료들에게 타 프로젝트 사례나 SQL과 같은 업무 관련 지도도 받을 수 있었다. 배움으로 풍성했던 한 해였다.
여전히 글쓰기는 내게 고되고 지루한 작업이다. 그래도 꾸준히 글을 썼다. 꾸준히 글을 쓰려고 글또라는 개발자 글쓰기 커뮤니티와 메모어라는 회고 커뮤니티 활동도 했고, 친구들과 블로그를 공유하며 응원하기도 했다. 덕분에 블로그와 브런치의 포스트도 꽤 늘었고, 글의 주제도 확장되었다. 브런치는 올해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로 선정되는 성과도 있었다.
독서는 나의 힘..! 이런저런 취미를 기웃거리며 시작과 중단을 반복하면서도 독서만큼은 놓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책에 담긴 글자 사이를 유영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곁에 맴돌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올해도 여러 친구들 곁에서 좋은 글들을 읽었다. 특히나, <보이지 않는 세계들> 북클럽에서 중동 문학을 읽고 나눈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올해 독서량은 30% 정도 줄어든 35권에 그쳤지만 학업적 성취를 고려하면 만족스럽다. (아니.. 사실 부족해..)
올해 네 가지 키워드 별 Keep(잘한 점), Problem(문제점), Try(개선점)에 대해서 정리해 본다. 작년(2023년) 회고록의 계획은 잘 지켜냈는지도 함께 점검해 보았다.
작년에 2024년 계획을 세울 때는 데이터 거버넌스 + 표준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인 때였다. 그래서 올해를 위한 계획이 단순했다. '일단 현재 프로젝트를 만족스럽게 마치는 것'이었다. 팀원들과 합도 잘 맞았고 프로젝트 마무리도 적기에 되었다.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비슷한 형태의 데이터 거버넌스 프로젝트를 연달아 수행하게 되었다. 가장 욕심 냈던 부분은 두 번째 데이터 터거버넌스 프로젝트인 만큼 첫 번째 프로젝트보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내는 것이었다. 비슷한 프로세스로 일할 확률이 큰 데다가 팀 인력 구성 상 나의 위치(?)가 말단에서 중간으로 올라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만나게 된 PM님과 신뢰 관계를 잘 구축하고 싶기도 했다. 이런 부분은 잘 성취해 낸 것 같다. 여기에 더해서 PM님 덕분에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사 솔루션에 대한 이해도를 많이 높일 수 있었다. 고객 문의나 고충에 대해서 청취하고 이에 대응하면서도 배운 점들이 많았다.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복합적이었다. 중간자 역할을 잘 해냈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있다. 좀 더 적극성을 가지고 리딩을 해야 했지 않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팀 구성원들과 업무 성향에 차이를 크게 느꼈다. 좀 더 수월하게 화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외에는 프로젝트라는 범위를 넘어서서 회사 정책과 방향성 재정립으로 인한 혼란을 겪었다. 보안 정책 강화로 VDI를 사용하게 되면서 기록에 불편을 겪게 되었다. 업무 지식화에 대한 열의가 한층 꺾였다. 그리고 회사에서 시니어에 대한 대우를 보면서 분노와 조바심을 느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왔던 이유나 머무르는 이유는 시니어분들인데 그들이 떠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 한참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나의 조심성과 소극적인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발언하고 행동하고 싶다. 프로젝트 성패에는 팀원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에 대한 이해를 빠르게 갖추는 게 중요하다. 팀 구성원과 대화를 많이 해야겠다. 서먹함은 높은 장애물이 된다.
회사의 변화에 대해서 슬픔이나 불안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회사가 바뀐다고 내 커리어 방향이나 계획을 따라 조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배울 수 있는 것은 계속 잘 익혀 나가고, 관심 생기는 것에 시선 돌려 보는 데 게으르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New Year's Resolutions
내년에는 무게 중심을 나에서 팀으로 살짝 옮겨보고자 한다. 새 조직과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해낸 것 같다. 작년보다 조바심이 많이 줄었다. 이제는 주변도 둘러보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생긴다.
작년 계획은 공부를 피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즐거움을 추구할만한 취미활동을 갖고 싶었다. 강제성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공부를 취미까지 확장시키지는 못했다.
해볼까, 말까 고민했던 방송대 편입학을 했다. 학교에 직접 출석을 해야 하는 일이 잦을 줄 알았고, 이전 직장생활에서는 돌발 해외출장이 잦았던 터라 엄두 내지 못했었다. 이직 후로 스케줄 컨트롤이 훨씬 자유로워지기도 했고, 앞으로 대학원 진학에 대한 생각이 커져서 기초 수학과 공학 과목 수강을 위해서 편입학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아침 시간과 주말만으로도 충분히 직장과 병행할 수 있었다. 하다 보니 올 한 해 40학점을 수강했고, 성적도 만족스럽다. 이외에 동기들과 업무 관련 스터디도 하고, SQLP 취득을 위해서 SQL과 오라클 성능 공부도 시작했다. 공부만큼은 많이 했다.
문제는 당초에 배움을 목표로 진학했던 것과 달리 막상 하다 보니 시험을 잘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요령을 피우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주당 20시간 이상을 방송대에 쏟게 되니 시간관리가 한층 어려워졌다. 전에는 부담 없이 소화해 냈던 동기 스터디가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동기들도 좀 힘들었는지 방학 이야기가 나와서 겨울 방학을 갖기로 했다. 그 이후로 개학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는 중.....ㅎㅎ SQLP 준비도 예상한 바와 같이 시간 내기도 곤란하고 집중도 쉽지 않았다. 계획대로 SQLP 시험에 응시는 했지만 몹시 부끄러운 결과를 냈다.
방송대 강의에 욕심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듣고 싶은 과목이 많아도 신중하게 선택적으로 수강해야겠다. 올해 40학점을 들었는데, 내년에는 30학점만 들을 거다. 그러려면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해...
SQLP 준비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본사에 복귀해 보니 마침 한 책임님이 SQLP 대비 겸 SQL 스터디를 해주고 계셔서 냉큼 합류하기도 했다. 이왕 취득하기로 했으면 빨리 따는 게 좋으니까, 좀 더 현명하고 적극적으로 준비해야겠다.
New Year's Resolutions
내년에는 시작한 공부를 잘 지속해내고 싶다. 방송대 졸업도 하고, SQLP 공부도 쭉 해나가면 좋겠다. 관두지만 않아도 100점...!
애증의 글쓰기.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활동이라 시간 효율을 높이는 게 주 목표였는데 글쎄... 잘 지키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옵시디언을 통한 메모는 많이 안정화되었다. 쓰기 싫고 귀찮아도 쓰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올해 글쓰기에 있어 가장 큰 성과는 나의 글 공간을 오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나서서 내 블로그나 브런치를 공개하는 적극성까지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내 공간을 발견하고 이야기해 주는 지인들에게 '감사하다' 화답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귀찮아도, 싫어도 글을 썼다. 글또나 메모어와 같은 커뮤니티를 잘 활용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특히 글또는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도 할 만큼 만족도가 높았다. 커뮤니티 활동은 강제성도 부여해 주지만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목적의식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 작성한 글이 커뮤니티 내에 큐레이션이 된다거나 브런치 크리에이터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문제라면 순전히 나만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다른 친구들을 보면 수익화도 곧잘 해내고, 자신의 브랜딩에 글쓰기를 잘 활용하고 있던데 내 글은 일기라는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세상이 알아줄만한 글을 쓰는 데 노력을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내가 더 해야 할 일은, 꾸준히 글쓰기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과, 일기를 넘어서는 글을 쓸 수 있도록 Target Reader를 정의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서 때깔이 좀 더 멋진... 그런 글을 써보자고 다짐했다. (과연...)
New Year's Resolutions
자기만족을 넘어서는 글을 쓰자. 설령 그게 글 쓰는 기쁨을 살짝 반감시킨다더라도.
독서는 나의 힘, 나의 평화. 독서라는 활동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극적으로 사회적인 활동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점은, 꼬박꼬박 독서노트 정리를 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읽고 남길 무언가를 추려내는 작업은 손품과 시간이 드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완독에 대한 강박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되었다. 이제 읽기 싫은 책은 곧잘 내려놓는다. 그리하니 독서는 완전 무고한 휴식 시간이 되었다. 정말 좋아..
독서에 관한 나의 유일한 고민은 사적 영역에 머무를 것인가 사회적 영역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 위치 선정에 관한 것이다. 혼자 읽고 싶은 책을 양껏 읽을 것인가, 사람들과 함께 읽고 교류할 것인가.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은 참 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올해 부끄럽게도 사랑에 빠질 만큼 좋은 책을 만나지 못했다. 혼자 읽는 시간이 부족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독서량의 부족은 물론이고 큐레이션의 문제로 볼 수 있기도 하다.
앞으로는 신중히 고르고, 빠르게 걸러내고, 부지런히 읽기로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더 풍성한 대화를 위해 좋은 질문을 고민하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사랑에 빠질만한 글을 만날 수 있도록 자투리 시간까지도 잘 활용해 보자.
New Year's Resolutions
선택적으로 읽어 내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좋은 책의, 좋은 부분을 취사선택해 읽자.
올해 가장 임팩트가 컸던 말에 대해서 남겨두고 싶다. 메모어의 클럽 활동 중에 한 참여자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저는 워크라이프밸런스가 아니라
워크라이프블렌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심 일을 좋아하면서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나였다. 그녀의 말에 담긴 강직함과 당당함은 몹시나 부럽고도, 존경스러운 것이었다. 2025 신년에는 내 삶에 블렌드하고 싶은 일을 찾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