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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Dec 22. 2021

스물세 살 그 맛, 프놈펜의 멕시칸 식당 Itacate

프놈펜에서 가장 그리울 식당이 멕시칸 식당이라는 사람, 나야.

멕시코 음식에게만은 유달리 길고 장황한 이 서론을 용서하소서


나는 멕시코 음식에 조금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나는 멕시코에서 스물세 살을 보냈고 그곳에서 얻어온 것은 학점, 우정, 사랑뿐이 아니다. 6kg이라는 과식의 지층을 쌓아 한국에 돌아왔었다. 그런 식으로도 추억을 저장할 수 있음을 믿는다. 6kg라는 무게는 이제는 소멸되었지만 당시 흡수한 멕시칸 플레이버는 내 뼛속- 살 속에 깊이 배어있다.


멕시코는 타코에 진심인 나라다. 한국인이 윤기 나는 흰쌀밥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그들은 또르띠야(Tortilla)에 엄청나게 진심이다. 그곳엔 한국 김치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한 또르띠야가 있다. 재료만으로 구분하더라도 노란 옥수수 또르띠야, 검은 옥수수 또르띠야, 흰 밀가루 또르띠야, 그리고 통밀 또르띠야가 있다. 한 입에 쏙 넣어 먹을 수 있는 작은 또르띠야부터 우리나라 부침개만 한 또르띠야까지. 사이즈는 물론 두께도 다양하게 구분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또르띠야가 공장에서 나왔는지, 동네 또르띠야 전문점에서 나왔는지, 손으로 빚었는지를 구분하고 언제 구워 나온 또르띠야인지까지도 따진다. 그래서 나는 멕시코 요리의 도화지, 빈 서판은 또르띠야라고 하고 싶다. 하얀 동그라미, 이 모든 게 시작되는 공간.


그래서 나는 멕시칸 식당 리뷰를 볼 때면, 또르띠야가 밀인지 옥수수인 지부터 확인한다. (밀 또르띠야는 유감이지만 탈락) 그리고 리뷰 사진에서 또르띠야를 무척 세심하게 살펴본다. 사실 여기까지 확인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내 나름의 기준에 60점이 넘는 식당이다. 사실 내가 늘 실망하는 멕시칸 식당은 메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단어가 메뉴에서 보이면 절대 가지 않는다. 

(이런 곳이 틀렸다거나 별로라기보다 내가 찾는 멕시칸 음식이 아니다.)

Crunch/crispy tortilla - 미국식 타코 탈락

Cheddar cheese - 마찬가지

Sour cream - 마찬가지


이런 단어가 메뉴에 보이면 설렌다.

Corn tortilla/Tortilla de maíz - 최소한의 구색이랄까 

Green source/Salsa verde 

Aztec/Azteca

Frijoles

Agua de Jamaica


이런 단어가 있으면 당장 가방을 챙긴다.

Horchata - 내 최애 음료. 멕시칸 아침햇살. 직접 만들기 꽤 귀찮다.

Sope/Sopito - 또르띠야를 직접 만들 확률이 크다.


이렇게 고르다 보면,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진짜 멕시코 냄새 듬뿍 나는 그런 식당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서울에서도 손에 꼽는다.


그런데 프놈펜에, 그것도 내 숙소 200m 반경 내에 이런 아름다운 멕시칸 식당이 있었다. 


Itacate

이곳의 메뉴판을 읽게 되었을 때의 설렘이란. 다양한 멕시코 음식들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메뉴판에는 옥수수 또르띠야, 그린 살사, 프리홀, 아즈텍, 소페와 같은 단어들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닌가, 흐른 건 내 침이었던가. 아무튼 나는 Itacate에 왔다. 처음 왔던 것은 작년 11월이었고, 오늘로 세 번째로 왔다. 


프놈펜에서 만난 당신의 첫인상


Itacate는 그 이름부터 너무나 아즈텍스러웠다. 내부 또한 한껏 멕시코 풍이었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의 마스코트, 해골 삐나따가 깜찍스럽게 걸려있었다. 다양한 떼낄라들이 진열되어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모두 다 멕시칸들이 사랑하는 데낄라들. 빠뜨론 실버(Patrón Silver)를 보며 한 잔이 참 간절했는데, 동료와의 식사자리여서 속으로 삼켰다.

 

Sopes con chorizo

이곳에서 너무 그리웠던 소페를 먹을 수 있었다. 소페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크리스피한 또르띠야에 토마토소스를 적셔 먹는 소페와 도톰한 또르띠야를 사용하는 소페가 있다. (크리스피 또르띠야를 쓴다고 모두 미국식 Tex-mex는 아니다.) 나는 그 둘 모두를 좋아하지만 정말 귀한 것은 도톰한 또르띠야를 쓰는 소페이다. 왜냐면 직접 만들어야 하니까. 옥수수 가루를 반죽하고, 적당한 덩이로 떼어내서 굴리고, 또르띠야 압착기로 적당히 눌러주고, 구워야 한다. 이걸 왜 아느냐면, 이태원의 한 멕시칸 식당에서 일해보았기 때문이다.) 소스가 넘치도록 부어져 있어야 제맛인데 소스가 조금 인색하게 느껴졌다.


Tacos al pastor, tacos de lengua

그다음으로 먹었던 건 타코 메뉴들이었다. 멕시코 타코 중에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타코 알 빠스또르와 소 혀 타코를 주문했다. 알 빠스또르는 붉은 소스에 재운 돼지고기를 케밥 그릴에 구워낸다. 지역에 따라서 파인애플을 올려주는 곳들이 있는데, Itacate의 타코 알 빠스또르에는 파인애플도 올라가 있었다. 이런 작은 디테일에 약간 추억에 젖게 된달까. 내가 멕시코 꼴리마라는 작은 도시에 살았을 때에는 파인애플 올라간 타코를 본 적이 없었는데, 시티나 메리다 지방에서는 파인애플을 올려주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파인애플이라니 예쁘고 깜찍하고 맛있잖아. 그리고 소 혀 타코는 부드러운 식감이 아주 일품이었다. 일행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각자의 타코마다 다른 살사를 주는 점이 좋았다. 물론 멕시코였다면 3종 정도의 소스가 테이블마다 구비되어 있었겠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내용물에 비해 또르띠야가 너무 적었던 점. 또르띠야 두 장씩 깔아주시면 안 될까요.. 반대로 말하면 속 재료가 무척 튼실했다. 


메뉴판에 그리운 메뉴 일색이라 꼭 재방문하고 싶었지만,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 기회가 되지 않았다.


그 모든 혼밥은 당신과의 재회를 위한 트레이닝이었다.

Tacos de chorizo, Sopa Azteca

그동안의 혼밥 훈련은 모두 Itacate의 음식 맛을 보기 위하여 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출장으로 프놈펜에 다시 돌아오게 되자마자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주말의 첫 (혼자)외식처로 Itacate를 찾았다. 타코 말고도 여러 요리들이 있었지만 이날은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하러 들렀던 것이라 타코 한 가지만 골라 먹기로 했다. 그리운 초리소 타코를 골랐고 타코만으로는 아쉬울 것 같아 수프(sopa)도 주문했다. 기대하기로는 수프에 또르띠야 칩과 아보카도가 들어있겠거니 했는데, 정말 정직한 토마토 수프 한 접시가 나왔다. 다행히 Itacate는 애피타이저로 또르띠야 칩 한 그릇을 무료로 주기 때문에 알아서 말아서 먹었다. 수프 맛은 꽤 좋았다. 초리소 타코는 내가 아는 그 초리소보다는 덜 느끼하고 덜 짜고 덜 자극적이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맛깔난 기억들에 젖어서 눈물을 삼키며 먹었다. 그리운 멕시코. 코로나 19만 아니었다면 내년 2월의 휴가 때 분명 멕시코를 찾았을 것이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당신, 우리의 세 번째 만남


그리고 얼마 전 Itacate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동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은 함께 먹으면 더 맛나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라기보다는 사실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재미) 금요일 저녁식사였다면 미첼라다도 마셨을 텐데,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한다.

Guacamole, Tacos de carne asada, Tacos de Lengua

이번에는 셋이 방문했기 때문에 과까몰레와 타코 두 가지, 그리고 요리 두 그릇을 주문했다. 다들 내게 주문을 일임하셔셔 특색이 있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메뉴 두 개와 무난한 메뉴 세 개를 시켰다. 소고기 타코와 소 혀 타코, 치킨 엔칠라다 베르데와 비프 치미창가를 주문했다.

Enchiladas de pollo con sala verde, Chimichanga de res

요리 대부분 소스가 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엔칠라다는 튀긴 또르띠야가 충분히 적셔지지 않아 맛이 덜했다. 그렇지만 6~15불이라는 가격대에 이 정도 퀄리티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단 건 참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간 일행은 귀국 전에 꼭 한 번 다시 찾아야겠다며 상당히 만족하셨다. 네, 다음에 또 와요. 저 미첼라다 마셔야 하거든요. 내가 기억하는 스물세 살, 그때 그 음주가무의 맛.


출장 생활에는 언제나 이렇게 예기치 않고 기대치 않은 멋진 장소, 이벤트들이 있다. 오랜만에 멕시코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언제나 그립고 정다울 그곳, 멕시코. 그때의 추억과 맛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을 여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나는 이 맛에 떠돌고 있나보다. 새 추억에 옛 기억을 물리며 돌고 도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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