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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Dec 14. 2021

가끔 미식_2_프렌치 Le Langka

과식과 육식, 그에 대한 후회의 마음

*이 글에는 푸아그라와 양고기 사진과 그 소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 밥을 먹기로 했을 때 걱정되는 점은 세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식당에 들어설 때 약간 뻘쭘해진다. 붐비는 식당일수록 더.

둘째, 먹고 싶은 메뉴가 여러 개여도 다 시킬 수 없다.

셋째, '맛있다'고 소리 내 말해볼 수 없다. 할 수 있나..?


아무도 없는 르 랑카, 나는 첫 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밥을 먹으러 다닌다. 잘 다닌다. 세 가지 우려사항에 나름의 요령도 가지게 되었다. 혼자 하는 멋진 식사는 피크 시간을 피해서 다닌다. 점심은 아무리 빨라도 13시 반, 브레이크 타임 한두 시간 정도 전이 알맞은 것 같다. 너무 늦은 혼자 손님도 어쩐지 멋쩍으니까. 저녁을 먹고 싶은 날은 되도록 첫 손님이 되려고 한다. 아무래도 외국인인 내가 혼자 늦은 밤길을 다니는 게 위험할 수도 있고 한적한 식사를 위해 오픈런이 마음이 편하다. 메뉴를 여러 가지 맛볼 수 없는 건 마음을 내려놓으면 된다. 그래도 되도록 전식과 본식, 술 한 잔은 챙겨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맛있다'는 감탄은 글로 하기로 한다. 그 외의 어려움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다행히도 나는 산만해서 이런저런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게 심심하거나 고되지는 않다. 내 좌뇌와 우뇌는 서로 대화라도 하는 건지.


9와 3/4 승강장 골목

Le Langka의 초록 입구

이번 주말은 생일 주간을 맞아서 (➡관련 이야기_출장지에서 몰래 생일 보내기) 작년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다녀왔던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다. 작은 규모의 프렌치 레스토랑인 르 랑카. 좁고 어둑한 골목 입구를 주춤주춤 지나면 식당이 있다.


실은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이라고 생각했었던 곳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못 올 곳으로 여긴 채 떠났던 자리라 그런지 식당이 그 자리 그대로- 차분하고- 여전히- 불빛을 밝히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법 같았다. 아마 그 주춤주춤 하게 하는 골목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이 골목 안쪽은 해리포터가 마법 학교를 가기 위해 뛰어들었던 9와 3/4 승강장을 통과해낸 듯한 기분에 빠지게 하는 공간이다. 후줄근하고 더럽고 좁은 골목길 뒤로는 이런 식당들이 즐비하다.


르 랑카의 아름다운 밤빛

오늘도 나는 수줍은 척 미소 지으며 'A table for one'을 작게 말한다. 이제 혼자 식당에 들어서는 부끄러움은 잊었다. 그렇지만 어쩐지 부끄러운 척은 계속하게 된다. 예전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했어서인지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그렇게 쏙쏙 귀에 들어와 박혔었는데 이제는 주변 소리에도 무던해졌다.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어쩐지 세상과 벽 치고 단절된 사람 같이 들리겠지만, 나 스스로는 그저 내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긴다. 옆 테이블이 나를 어찌보고 무슨 말을 하는가 보다 내가 내게 건네는 말들이 더 소중하고 긴급하다.


르 랑카는 2층으로 된 식당이다. 나는 지난번과 같이 1층의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살펴 보는데 1년 전과 비교해서 메뉴에 큰 변화는 없는듯하다. 그 점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메뉴가 변치 않았대도 안 먹어 본 메뉴가 훨씬 더 많은데 무슨 심보인지. 나쁜 심보인가?


슬픔만 남긴 푸아그라

푸아그라

애피타이저는 두 개를 골랐다. 푸아그라와 지난번 먹었던 뇨끼를 시켰다. 먹었던 메뉴를 또 먹을 거면서, 메뉴가 바뀐 게 없다고 투정을 한다는 건 나쁜 심보가 맞는 것 같다.


푸아그라를 받아 보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4년 전, 모로코 라바트에서 함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서 나와 흥청망청 거나한 식사를 해주신 통역사님.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맛있게 푸아그라를 먹었었다. 내가 이번에도 푸아그라를 시켰던 건 그날의 식사가 몹시 그리웠기 때문 같다. 그날은 좋은 대화가 있었고, 술기운이 있었고, 음악이 있었고, 훌륭한 음식이 있었다.


다음으로 거위에 대해서 생각했다. 더 큰 거위 간을 얻기 위해서 거위 부리에 튜브를 꽂아 강제 급식을 하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망설임 없이 죽을 짜 넣던 사람. 꿀럭. 그리고 푸덕 거리는 거위. 뒤뚱거림. 


푸아그라는 맛있었다. 이 거위 간도 그렇게 만들어진 걸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대도 어쨌든 이 거위는 푸아그라가 되려고 살았고, 푸아그라가 되려고 죽었다. 식사 그 당시에는 거위에 대한 슬픔보다는 맛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억을 지금 꺼내보니, 맛은 크게 떠오르지 않는 반면 푸드덕 거리는 거위의 이미지는 여전히 웅웅 어른거린다. 이 푸아그라가 내 마지막 푸아그라였으면 좋겠다.


아쉬움까지 담아낸 뇨끼

이렇게 훌륭한 파스타는 한 사바리로 팔아주시렵니까..

다음으로는 트러플 뇨끼가 나왔다. 트러플의 묘한 가스 향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르 랑카의 트러플 뇨끼는 정말 맛있다. 뇨끼의 식감이 특별히 훌륭한 것도 아닌데, 버섯과 치즈, 그리고 트러플 향의 조화가 좋다. 어쩌면 애피타이저로 적은 양만 서브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느새 그릇은 비어있다. 이렇게 아쉽게 하니 다시 찾았을 때 또 한 접시 시켜먹을 수밖에요. 뇸뇸.


누구를 위한 희생양인가

잘 기억해두자. 과식과 육식은 무겁다.

나는 채식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생명 존중, 환경 보호 등 여러 이유로.) 그리고 자주 실패한다. 이날도 나 스스로 푸아그라와 양갈비를 시켰다. 순간에는 어물쩍 선을 넘었지만, 뒤 돌아보면 아주 대단한 실패, 대단한 배신이었다.


그리스의 신화에서 신들은 때로 선악의 너머에서 인간을 기만하는 흉포한 존재로 그려진다. 나는 신화를 읽으며 그런 묘사에 잘 동화되어 이야기를 볼 수 없었다. 왜냐면 내가 아는 그리스의 신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의 홍은영 작화의 이미지니까. 그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 그런데 요즘 C.S. 루이스가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그리스 신화 속 신들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갑자기 그리스 신들을 꺼내온 것은, 내가 먹은 양고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쩐지 지금까지의 고된 출장 생활과 생일에 알맞은 보상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양갈비를 주문했는데, 음식을 받자마자 기분이 상했다. 붉은 기가 번뜩이는 고깃덩어리를 보면서,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에서 아프로디테의 화를 풀기 위해 숱하게 바쳐지던 짐승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흉포와 포악이 아니면 뭘까. 나 자신을 축하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애꿎은 양을 씹어야 할 이유가 뭘까. 그것이 진정한 축하이고 응원일까. 나는 나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제대로 옹호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죄의 용서를 바라며 제물을 바치는 마음과 나의 마음이 얼마나 꼭 같은지. 식사가 즐겁지 않았다.


질겅질겅 느린 속도로 양고기를 씹었다. 이때쯤엔 배도 매우 불렀지만 남김 없이 다 먹었다. (르 랑카의 음식은 모두 훌륭했다. 제 마음이 불안·불편하였을 뿐.) 속이 묵직했다. 과식은 역시 기분이 나쁘다. 오래도록 기분이 나쁘다. 과식은 직후로는 거동이 불편하고 괴롭고, 배가 다 꺼진 후로도 마음이 무겁다. 육식도 기분을 나쁘게 한다. 머리로는 오로지 내 끼니 때문에 무언가가 계속해서 죽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또 고기를 먹는 실패를 한다. 채식을 결심한 지 벌써 5년은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자주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날도 무슨 충동으로 양갈비를 시켰던 건지 이제와서는 그 충동의 크기를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게 기분을 아주 나쁘게 한다. 스스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후회를 몰고 오니까. 이렇게 채식에 실패하는 때면 나는 불판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한강(➡원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을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만큼의 슬픔이 없는 걸까?


나에게 후회 없는 식사란


'맛있는' 식사를 위해 찾았던 르 랑카였는데, 뇨끼를 먹을 때 빼고는 온전히 기쁘게 먹지 못했다. 오히려 괴로움, 좌절, 슬픔이 많았던 식사였다. 이제 이런 식사 안 할 때도 되지 않았나. 5년째 채식- 채식- 잘해보자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으면 성과가 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영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오로지 기쁘고 즐거웠던 식사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적은 생명을 소진해서 차린 식사.

정성껏 음미한 식사.

맛있을 때까지만 먹고 멈춘 식사.


기억하자. 과식과 육식에 나는 빠짐없이 후회하고 괴로워했음을.



Le Lang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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