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 사람들이 제 생일 모르게 해 주세요.
여기는 프놈펜. 출장지에서 생일을 맞게 되었다. 12월에 태어난 겨울 아이가 여름 나라에서 생일을 맞이한다는 것. 소복한 흰 눈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포근한 햇살의 품 안에서 조용한 생일을 기대해봐도 좋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내 생일이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랐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애초부터 왁자지껄하고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 어차피 크게 특별해질 수 있는 날도 아니다, 그러니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말자고.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 축하면 되는 거라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법을 아주 어린 마음일 때부터 연습해왔던 것이다.
생일에 대한 내 태도는 자라서도 한결같았다. '생일 축하해'라는 말에는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아이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제는 인사치레의 말에 환하게 미소 지을 줄 아는 여유는 생겼다. 그렇지만 생일 선물에 대한 욕심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내 힘만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을 선물로 받기를 기다리며 보내본 날은 아주 오래전이다. 하루 용돈이 오백 원이었던 때까지는 생일선물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이후로는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은 스스로 장만하며 살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기보다는 나의 물욕이 내 스스로 감당 가능한 정도로 작아서, 큰 돈벌이나 행운이 필요한 적이 없었다. 가지고 싶은 게 있느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내 답은 늘, '밥이나 사줘라. 얼굴 보고 싶으니까.' 정도였다.
사실 이제는 밥 사달란 말 조자도 어렵게 되었다. 생일 축하를 받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데 겪는 난처함은 2012년, 처음 해외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쭉 나는 내 생일에 내가 어디에 있게 될지, 나도 모르는 상황 속을 살게 되었다. 2012년부터 2021년, 열 해 동안 내가 내 생일을 한국에서 보낸 해는 단 네 해. 나머지 여섯 해는, 교환학생이나 인턴십, 출장으로 해외에서 보냈다. 내 생활은 늘 어딘가 분주하고 어수선해서 굳이 해외에 있지 않은 때더라도 나는 친구들과의 흥청망청한 파티보다는 아늑하고 조용한 곳에서 가족과 식사하는 정도를 성대한 생일 파티로 여기게 되었다. 가족처럼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밥 먹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히 느껴진다. 누군가로부터 직접 '축하'를 받는 일을 아주 포기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마저도 너무 큰 바람 같거든. 간간히 친구들로부터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을 받고, 차분히 가족과 식사하며 맞는 생일이면 충분히 기쁘고 마음 편안하다.
기쁘고 마음 편안한 생일날이 있는가 하면, 슬프고 당혹스러운 생일맞이도 있는 법이다. 출장 중 근무일에 맞는 생일이 그렇다. 올해, 오늘 내 생일처럼 말이다. 출장은 어느 때보다 절대적으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부족해지는 시기로, 생일날이 공개되면 나는 아주 곤란해지고 만다. 한국인들의 이기적인 온정은, 상대방의 개인적 성향이나 컨디션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생일임이 밝혀지면 사람들이 점심은 물론 저녁식사까지 챙기려들기 때문이다. 특히,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청은 내 쪽에서는 절대 거부할 수가 없다. 그 청을 뿌리치고 혼자 먹겠다고 했다가는 사람들은 내가 '삐쳤다'라고 넘겨 짚기 때문에 분위기가 악화되고 만다. 게다가 내가 그들과의 시간을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주는 상처가 또 있는 모양이다. 왜 그렇게들 서운해하는지. 내게 최고의 생일 선물은, 당신들 없이 사적으로 고요히 보낼 수 있는 저녁이라는 것을 서로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밝힐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잘 모르겠다.
이때 내가 택할 수 있는 평화의 방안은 단 하나다. 몰래 생일 보내기. 생일 며칠 전부터 카카오톡에 생일 알람 기능이 켜져 있지는 않은지 몇 번이고 체크했다. 그럼에도 생일이 유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마음이 온전히 안심되지는 않는다. 우선 우리는 서로의 이력서나 여권 사본을 볼 일이 왕왕 있다. 마침 요즘 비자 연장 때문에 자꾸 여권 사본 제출을 요청받고 있다. 여권을 건내면서 생각한다. 아아. 생일을 너무 자세히 보지 말아주셨으면. 오늘이 며칠인지도 떠올리지 말아주시고요. 제발,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갔으면.
생일 축하는 생일 전야부터 시작되었다. 대학 동기 중 하나가 미리 축하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어떻게 기억하고 축하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카톡도 왔다. 밥 잘 먹으라며 용돈 20만 원을 부처 주셨다. 이러려고 알려드린 인터넷뱅킹이 아니었는데. 엄마에게 정말 맛있는 밥 사 먹겠노라며 답장했다. 올해 내 생일은 수요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엄마가 준 용돈을 근사하게 쓰려면 주말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생일날 아침, 나는 오늘도 실패로 하루를 열었다. 네 시에 일어나서 책을 조금 읽어보려고 하는데 전날 밤의 나와 아침 날의 나 사이의 격렬한 다툼이 아직 결판 나지 않았다. 전날 밤의 나는 어김없이 네 시에 알람을 맞춰두지만, 아침 날의 나는 조금만 더 자겠다며 그 알람을 10분 뒤, 20분 뒤, 30분 뒤로 자꾸만 미뤄둔다. 이 멍청한 싸움 덕분에 나는 아침 네 시부터 5시 40분까지 10분마다 깨어났다 잠들기를 반복하며 수면의 질만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생일날 아침이면, 조금 다른 기운으로 성공해낼 법도 한데 오늘도 실패했다.
아침 출근 준비 시간은 50분. 머리를 감고, 세수하고, 양치를 하고, 화장을 했다. 한국에서 출근할 때에는 눈썹 그리는 정도만 화장을 하는데, 출장 와서는 어쩐지 화장에 10분 정도를 더 들이게 된다. 머리를 말리며 화장을 하는데 25분 정도가 걸린다. 옷도 평소보다 신경을 써서 입고 커피를 내렸다. 두 잔. 한 잔은 텀블러에 담아 가지고 가고, 한 잔은 바로 마신다. 어제 산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블렌딩을 내려봤는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커피다. 뭘 바란 건지. '크리스마스'는 매직 워드가 아닌데.
출근해서 오전 회의를 한 세션 끝냈다. 다행히 회사 관련된 사람 그 누구도 내 생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행히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안도하기 시작했다. 짬짬이 엄마에게 받은 용돈으로 어떤 식당을 가면 좋을까 고민해보고 있다. 막상 생일날을 맞고 나니, 한 끼 정도는 멀끔히 차려진 밥상을 받고 싶다. 엄마도 그런 걱정 때문에 굳이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 용돈을 부치셨으리라. Cambodia Michellin star restaurants로 마구 검색해보고 있지만, 별 소득이 없다. 작년에 한 차례 다녀왔던 Topaz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오늘은 11시가 되기도 전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들 하신다. 웬 일들이신지. 나를 콕 짚어서 '오늘은 특별히 H 선임이 좋아하는 이탈리안을 먹으러 가자'라고 하신다. 뜨끔! 아니겠지. 잠시 두근거린다. 알고 보니 다행히도점심 식사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식사 장소는 며칠 전 구글맵 탐험에서 보고는 입맛 다셨던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주인이 미국인이라더니 과연 한쪽 벽면이 잭슨 폴록 스타일의 액자로 가득히 꾸며있었다. 아주 미국스럽네. 오늘 식사에 초대해준 것은 그때 과일을 사주신 그분(➡관련 이야기)이었다. 와인도 시켜 주셨다. 이 사람, 산타 클로스인가. 덕분에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블렌드도 주지 못한 크리스마스 무드를 느꼈다.
나는 궁금했던 라자냐를 주문해서 먹었다. 겹겹이 쌓아 오븐에 구워내는 보통의 라자냐와 달리, 이곳은 라자냐를 돌돌 말아 오븐에 구웠다. 라자냐의 물렁한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꿈꿀 수 있는 최선의 라자냐였다. 맛있게 먹으면서 생각했다. 생일 축하해!
거나한 (몰래)축하 식사를 마치고, 복귀해서는 오랜 시간 사무실에 묶여 있어야 했다. 오늘은 파견 이후 처음으로 야근다운 야근을 했다. 회의가 많이 길어졌고, 후속 처리들을 하다 보니 퇴근 시간보다 두 시간을 늦게 퇴근했다. 얼른 퇴근하고 싶다. 퇴근 길에 몰래 빠져나와 에릭 카이저에 들러 에클레어라도 사다 놓고 진심 담아 내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얼른 퇴근하지도 못했고, 저녁밥도 혼자 먹지 못할 것 같다. 다 같이 저녁밥을 먹고 퇴근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야속한 세상아. 생일만 잘 숨겨주면 다냐.. 결국 점심밥도 저녁밥도 다 같이 먹으면 나는 언제 내 생일을 축하해주나...
출장단 저녁식사는 역시 한식이다. 나는 출장 중에 한식이 그립단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고, 한식 생각이 나더라도 참기 어렵지 않던데 아저씨들은 왜 이렇게들 한식, 따뜻한 쌀밥에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다. 더 본격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한식당 가는 게 싫다. 이국 음식을 먹을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점에서도 싫고, 한국보다 20~30% 비싼 값을 치르는 것도 싫다. 정말 참을 수 없게 싫은 것은 한식당을 가면 늘 소주 반주를 한다는 점이다. 술을 강요하는 문화도 전혀 아니고 과음들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은 늘어지는 식사 시간이다. 점심밥이나 이렇게 천천히 좀 드시지. 저는 빨리 먹고 퇴근하고 싶다고요. 운동하고, 책 읽고, 글 써야 할 저녁 시간을 몽창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앉아있는 내내 1분 1초 단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은 마음, 그대들은 없으신지요?
그렇지만 이내 차려지는 상을 보고 싱긋 웃게 되었다. 미역국이 나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또 미역국을 먹는구나.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보냈다. '엄마 나 미역국 먹어. 헤헤.'
미역국의 미역을 하나 하나 건져 먹으며, 몰래 생일 무드를 만끽한다. 세상만사 명암과 장단이 있다 하더니. 무엇을 먼저 눈에 들어올지는 내가 택할 수 없어도, 무엇에 더 오래 눈길 줄지는 내가 택할 수 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이 미역국을 바라보자.
Note: 지난 10년 간 생일을 보내온 곳
2012년 - Colima, México
2013년 - 한국
2014년 - Ciudad de Guatemala, Guatemala
2015년 - 한국
2016년 - 한국
2017년 - Amman, Jordan
2018년 - Arusha, Tanzania
2019년 - Bogotá, Colombia
2020년 - 한국
2021년 - Phnom Penh, Cambodia
⬇ 생일날 점심 식사에 초대해준 그분에 대한 이야기
1. Unsplash @adigold1 https://unsplash.com/photos/Hli3R6LKibo
2-7. 본인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