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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an 03. 2022

입사 9개월 만에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 세 가지

도대체 나 왜 승진한 거니?

사내 송년회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2021년 12월 29일, 사내 송년회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보통은 오프라인으로 열리던 행사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으로 열렸다. 덕분에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출장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팀도 참석할 수 있었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사기업 직장생활이지만 내가 이해하기로 송년회는 보통 한 해의 결실을 확인하고, 다가오는 해의 새 포부를 선언하는 자리이다. 올해 막 이직해서 아직 '내 직장'이라기엔 아직 낯을 가리고 있는 이곳. 과연 이곳은 어떤 포부를 다지며 한 해를 마무리할까? 


송년회는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 시작되었다. 1시간 이내로 송년회를 마무리하겠다는 리더의 강력한 의지가 돋보였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세션은 우수사원 시상식이었다. 나나 우리 출장팀이 받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첫째로 나는 입사한 지 이제 막 9개월을 지난 새내기였고, 둘째로 공적이라고 할 만큼 제안이나 프로젝트 수행에서 성과를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셋째로, 내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이제 막 착수해서 사업 중반부쯤을 달리고 있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나는 새내기에, 실적도 없었고, 마무리해 낸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기대심이란 단 0.1g도 없었다. 다만 내가 궁금했던 건, 과연 이 회사는 어떤 공적을 우수하게 평가할까였다. 앞으로 내 회사생활에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될 터였다.


우수 사원 시상에 앞서, 승진자 발표를 한다고 했다. 흐음. 그렇구나. (코딱지 파기) 우수 사원 상조차 탈 리 없는 나는, 승진 이야기에 한 층 더 심드렁해졌다. 우리 팀에서는 누가 승진을 할까. 생각나는 사람은 한 명이 있었다. 다른 분들이 그 한 분에 비해 업무 성과가 뒤쳐진다기보다는, 그분은 같은 직급 내에서 연차로 보았을 때나 업무로 보았을 때나 직책이 하나 올라가야 할 듯싶었기 때문이다. 


승진자에는 그가 있고, 그들이 있었고, 또 내가 있었다.


2022년 책임 컨설턴트로 임명.

승진자 발표가 우리 팀까지 넘어왔다. 두근. 내 생각이 미쳐 미치지 못했던 분들이 줄줄이 승진을 하셨다. 멋진 우리 팀. 짝짝짝. 수고하셨고, 축하드립니다. 막상 승진하시는 분들의 존함을 듣고 나니 일견 수긍하게 되었다. 그렇지, 그렇지. 암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분도 승진을 하셨다. 그런데 결코 예상치 못한 승진 인력이 있었으니, 바로 나다. 나. 나요...


우리 팀 10명 중 5명이 승진을 했다. '이거 뭐, 그냥 다들 승진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도 내가 승진했지 않은가. 나의 직책 변화를 포함하는 의사결정이니 결코 그렇게 쉽게 설명을 포기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해해야 한다. 이 상황을.


입사 9개월 차, 나는 어떻게 승진했을까?


일개 직원이 경영진의 그 크고 먼 뜻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나. 없겠지.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내가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글로 남겨두고자 한다.


첫째, 나에게는 업무 능력을 보여줄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비록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은 9개월 전이지만, 내 업무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1년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사에 입사를 하기 이전에, 나는 동종 업종의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봄, 한 프로젝트에서 컨소시엄의 형태로 현재 팀을 만나 일하게 되었다. 서로 소속회사는 달랐지만, 우리는 하나의 팀이 되어 일을 했다. 내가 넘겨짚기에, 이때 아마 내가 프로젝트 기간 동안 보였던 친화력과 협동심을 높이 평가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나만 소속사가 다른 '낙동강 오리알'에 '홍일점'으로 다른 회사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무려 3개월 간의 해외생활을 해야 했는데 나는 별 탈이나 어려움, 마찰 없이 해당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팀워크를 위해 가장 큰 노력을 해주셨던 것은 팀장님이셨고, 팀원 모두 세심한 배려와 돌봄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 이후 팀장님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던 것을 보면, 그 프로젝트 기간 동안 나를 좋게 봐주셨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올해 3월 이 회사에 입사해서 약 9개월 간은 이 회사 소속인으로써 업무를 했다. 9개월이라면 정말 짧은 시간이다. 특히 갓 입사한 사람에게 9개월이란, 주마등 같은 것이다. 첫 프로젝트를 배정받고,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에만 6개월이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물론 이미 한 번 합을 맞추어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편안히 대할 수 있는 팀원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선임자나 후임자를 만나 말의 물꼬를 트고 협업을 시작할 때에는 항상 머뭇거림과 조심스러움이 뒤따른다. 일련의 과정에 막힘이 없어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 그 과정 중에도 감사히도 다른 팀의 리더와 국내 프로젝트를 도울 일도 있었고, 대표님과 업무를 할 기회도 있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듯이 한 업무들 속에서도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최소한 내 성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해왔다.


둘째, 다른 승진자와 객관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이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승진이었다면 굳이 설명으로 덧붙일 필요가 없었겠으나, 나는 입사 겨우 9개월 차가 아닌가. 게다가 내가 사내에서 가장 어린 책임 컨설턴트인 것으로 보인다. 사내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내 추측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와 같이 책임으로 승진한 분과 비교해 보아도, 그는 나이로 나보다 5-6살 정도가 많다. 실제 업무를 하면서 30대 초반에 책임 직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업계에 젊은 인력이 잘 없다 보니 내가 보아온 표본이 너무 적다.)


첫 직장에 입사해서 막 명함을 만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인사팀에서는 명함을 만들어야 하니, 내 연락처와 영문 직함과 성명을 적어 알려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내 정식 직함을 알지 못했다. 사원이려나... 긁적... 하며 부서 책임자에게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전임자 직함이 뭐였지? 연구원이었나, 선임연구원이었나?"


그렇게 나는 선임으로 입사했었다. 그저 내가 입사하기 전에 그만둔 그 사람이 선임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고 정말 웃기게도 그 이후로 입사한 신입직원들은 모두 연구원이나 인턴 직함을 받았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잠시 첫 직장의 추억을 생각했다.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나와 같이 책임으로 갓 승진한 분의 이력서를 꺼내 살펴보았다. (프로젝트 투입용 공적 이력서를 말하는 것이니 오해 마시기를.)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면 업무 경력에서는 내가 몇 개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친구도 6년 경력인데, 이 친구는 어때?' 뭐 이런 식의 논의가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셋째, 성장세에 있는 회사, 성장세에 있는 조직이었다.


기회는 때가 되어 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첫 번째 이유와 두 번째 이유는 사후약방문 같은 사유일 뿐이다. 냉철하게 보았을 때 내가 승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회사와 팀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둘 중 하나는 꼭 해야 한다. 기존 인력의 역량을 높여서 생산성을 늘이거나, 새 인력을 수급해 감당 가능한 업무량이나 업무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우리 조직은 두 가지 모두를 활발하게 해 나갈 셈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인력을 데리고 오기만 해서는 큰 성장을 확실하고 빠르게 이뤄낼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기존의 인력을 빠르게 승진시켜서 그에 맞는 한 단계 높은 업무를 배정하는 동시에 추가 인력을 배정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남들이 그렇게도 말하는 '성장하려거든 스타트업을 가라'라는 말을 체감하게 된다. 물론 이 외침의 속 뜻은 빠른 성장을 하고 싶다면, 빠른 성장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는 성장세의 조직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개인이 성장할 기회는 성장하는 조직, 성장하는 회사 안에서 더 빠르게 온다는 것,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그런 기회를 캐치해서 내 호주머니에 쏘옥 넣으려면 그 기회의 크기에 맞는 호주머니를 미리 준비해두야 한다. 애꿎은 바지만 찢어 뜨리면 안 되잖아요..


승진은 칭찬이 아니라 재촉이고 명령이다.


나는 이번 송년회 인사 발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나무라면, 지금 우리 회사는 가진 모든 가지들을 최대한 넓이 벌려 찢어 놓고 있다. "너도 이제 더 이상 싹이 아니라 가지다." 이번 승진은 어서 무성 해지라는 회사의 재촉이자 명령으로 들린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아서는 가지치기를 당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옆 분은 팔자 좋은 소리를 한다. "승진만 시켜주면 뭐 합니까. 책임은 책임대로 늘어날 테고 그에 맞는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텐데." 


아주 좋구먼. 뭘 보고 회사 생활을 해야 되는지 아주 잘 알겠다.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 앞만 본다.


2022년, 잘해보자. 나는 힘 내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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