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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Apr 04. 2022

프놈펜 작게 살기 100일_결심

나는 무엇을 다짐했고 어떻게 살기 시작했는가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아마 첫 직장에서 내 돈을 벌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많지 않은 벌이였지만 나는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좀처럼 나는 사고 싶은 게 없었다. 사고 싶은 것을 사들이는 일.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지만 어쩐지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갖고 싶은 물건을 찾기란 대단히 간단하다. 예쁘고, 귀여우면 사고 싶어 지니까.진열된 상품들을 둘러보다 보면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뭉글뭉글 올라온다. 그런데 그 물건을 가지고 뭘 해야 할지를 떠올리려 보면 나는 늘 막막해진다. 내 안을 들여다보며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는 시간은 상당히 고되다. 나만 그런가. 내가 뭘 가지고 어떤 일들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돈이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을까


내가 뭔지 모르겠는 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카드사가 아닐까?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사는지 내 정보를 카드사에 꼬박꼬박 넘기고 있다. 가장 나를 잘 알려주는 것은 어쩌면 나의 지출내역 인지도 모른다. 지출로 파악할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지출 규모만 보았을 때에는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고객인 것은 확실하다. 지출 항목을 보았을 때의 나는 어떠한가? 정말 나는 원하는 방향으로 돈을 쓰며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생활을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돈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생활이 무엇인지부터 고민을 해봐야 했다. 확고해야 망설임이 없을 테니까.


나는 어디에 돈을 쓰는 사람이 되었나


첫 월급, 그 이후로 5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눈에 띄게 선명해진 것은 없다. 다만 돈이 아깝지 않은 곳과 돈을 쓰기 싫은 곳의 구분은 점차 생겨나고 있다.


나는 책에 쓰는 돈이 아깝지 않다. 그렇지만 종이책은 거부한다.

나는 가끔씩 미식에 사치하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육식에 돈을 쓸 때면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더 이상 색조화장품과 액세서리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일 년에 하나씩 사치스러운 안경에 돈을 쓴다.

나는 커피에 쓰는 돈이 그리 아깝지 않다. 훌륭한 향이나 좋은 공간이 곁들여진다면 더더욱.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온전한 나의 생활 100일


줄줄 써내려 가보니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꽤나 많이 움직였다. 그렇지만 아직 완전하게 내가 원하는 소비를 이루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나'로 더 투명하고 정직해지려면 내 공간을 만들고 혼자 살아보는 경험이 필요하단 생각을 자주 한다. 온전한 나의 생활을 꾸려보고 싶다는 갈망. 물론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서 차일피일 미루어 가며 엄마와 지내고 있지만 온전한 내 생활, 해본 적도 없는 그 생활이 그립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걸 만들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작년 11월부터 올 3월까지, 프놈펜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약 100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내 나름) 급진적인 시도들을 해보고, 내 행복을 위한 최소한은 어디일지 관찰해보기로 했다.


대원칙은 작게 살 것


언제부터인지 내가 무분별하고 잔학한 방식으로 내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내게 필요한 편의와 즐거움에 비해서 과도하게 많은 생명과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분명하고 불쾌한 감정이었다. 나는 작아지고 싶었다.

작아지기 위한 파파야

작아지기 위해서 지키고자 했던 규칙들은

첫 번째로, 요리를 그만둘 것

두 번째로, 혼식은 채식을 할 것

세 번째로, 살림살이를 늘리지 말 것

네 번째로, 전기 사용을 줄일 것


각 규칙을 실천하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점, 느낀 점이 많았다. 100일간의 프놈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나는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 정리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작아졌지만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나의 작은 규칙들은 나를 작게 만들어 주었다. 일상의 선택지를 줄인 만큼 내 고민은 더 적어졌고, 나는 더 적은 돈을 썼다. 내 인생은 간소화되었고, 그만큼의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작게 만든 생활이 만들어 낸 변화들은 이러했다.

내 끼니로 소진되는 생명 총량은 현격히 줄어든 반면, 식사에 대한 만족과 행복감은 오히려 높아졌다.

내가 끼고 사는 물건이나 쓰레기는 줄어들었고, 그만큼 누릴 수 있는 개인 공간은 늘어났다.

내 생활은 군더더기 없어졌고, 소모하는 에너지는 확연하게 적었다.
(동료와 비교하면 내 전기세는 절반 수준이었다.)


돌아오니 다시 도돌이표를 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100일의 프놈펜 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돌아오고 나니 내 생활은 빠르게 원복 되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작게 살기로 다짐했고, 프놈펜에서의 100일간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정리해보기로 결심했다.




관련 글


⬇️ 호프 자런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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