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진단키트를 맹신하지 말아야 할 이유
프로젝트 후반 폭풍 같은 시간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찌저찌 지나 보냈다. 기다린 듯 기다리지 않은 귀국일이 되어 귀국을 했다.
우리 팀은 해외 입국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상의 이유로 자가격리(7일) 면제를 받아둔 상태였다. 때문에 인천에 입국하자마자 격리 호텔로 이송되어 PCR 테스트를 한 차례 받았다. PCR 테스트 음성 결과가 확인되고 나면 면제 효력이 발휘하는 것이라, 음성 결과를 받자마자 격리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일상생활을 시작했다.
별다른 생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면제를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맡고 있는 업무가 같은 팀원들과 긴밀한 협업이 필요했고, 원활한 계약 이행을 위해서 귀국 이후로도 업무 중단이 발생해서는 안 됐었다. 때문에 면제 기간 내내 출퇴근을 했다. 면제자는 입국일 6-7일 차에 PCR 테스트를 한 차례 더 받도록 되어있었다. 일정에 맞추어 PCR 검사를 다시 받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출국 48시간 전, 프놈펜에서 PCR 테스트를 1차례 받았고,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격리 호텔로 이송되어 PCR 테스트를 1차례 더 받았고,
격리 면제 6일 차에 PCR 테스트를 1차례 또 받았다.
근 일주일 간 세 번의 PCR 테스트를 받았고, 모두 '음성' 결과를 받았다.
그런데 격리 면제일 지난 이후부터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금요일(입국 8일 차)이었는데, 그날따라 몸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퇴근께가 되자 날이 좀 춥게 느껴졌는데, 나는 그저 더운 지방에서 오래간 생활 하다 와서 한국의 추위에 적응이 덜 되어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와서는 귀국길에 사 왔던 와인을 엄마와 한잔 했는데, 두 잔을 채 마시지 못했다. 너무 피곤해서 어서 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이 금요일이 처음으로 증상이 발현된 날이었다. 그렇지만 코로나 증세로 널리 알려진 열이나 인후통이 나타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때까지는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몸이 천근만근 했다. 너무 늦잠을 잔 탓인가 보다 했다. 거의 14시간을 자고 일어났으니 몸이 무거운 게 당연스레 느껴졌다. 일어나서 커피를 내려마시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정말 피곤해도 낮잠과는 친하지 않은 나인데, 이날은 서너 시간을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너무 추웠다.
이건 너무 명백하게 오한인데? 문득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이 솟구쳐서 구비해둔 자가검사 키트로 검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음성. 쌍화탕을 하나 먹고 잤다.
몸은 주말 내내 꾸준히 좋지 않았다. 토요일 밤은 추웠고, 자고 일어나니 목이 건조했다. 콧물도 좀 생겼다. 일어나자마자 자가진단 키트를 다시 해봤다. 결과는 음성. 나는 내 테스트 실력에 별 의심이 없었다. 해외 출입국 때문에 PCR 검사를 10번 넘게 받아본 탓에, 어떤 느낌으로 어디까지 찔러야 할지는 대략 알고 있었다. 자가진단 키트의 면봉은 매우 짧고 두꺼워 유연하지 않으니 콧속 아래까지 뚫고 지나갈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콧속이 얼마나 깊은 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계속 음성이었다. 이때부터는 감기 기운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컨디션도 토요일 밤 이후로 오히려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다만 콧물이 생겼을 뿐. 가족에게 부탁해 감기약을 조달해와 먹기 시작했다.
아침 기상 시 기분이 좋았다. 컨디션이 확실히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았다. 오늘부터 휴가라서 그런지도. 열은 전혀 없었지만 목은 여전히 건조했다. 콧물은 조금 줄어든 듯했다. 그런데 오늘은 목 깊은 데서 가래가 느껴졌다. 기침도 가끔씩 했다. 이런. 자가진단 키트가 이제 집에 없어서, 가족에게 몇 개를 더 부탁했다. 엄마가 오후 4시쯤 판피린Q와 키트를 사다 주셨다. 바로 키트를 해봤는데, 이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용액을 떨어뜨리자마자 T에 붉은 선이 생겼다. 양성이었다.
자가검사 키트 양성 결과를 보자마자 신속항원 검사를 하는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양성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기침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바로 양성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참 절묘하다. 전파력이 갖춰지니 양성 값이 나오다니.
가능성이 도처로 열려있다. 미약하나마 증세가 발현되기 시작한 시점이 입국 8일 차인 걸로 생각해보면 캄보디아에서 걸려서 입국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한국에서 걸린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는 생활 반경이 정말 작고 확실했기도 하고, 이미 입국 6일 차에 PCR 테스트를 마쳤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걸린 것이라면 그때엔 검출이 됐어야 했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걸린 것 같다.
자가진단키트 결과만 믿고 집에서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점이 후회스럽다. 되돌릴 수 없는 실수라는 점이 슬프다. 직장에서는 그렇게 꼬박꼬박 마스크를 착용하고 업무를 봤으면서, 더 소중하고 더 취약한 부모님에게는 마스크 착용이라는 최소한의 배려와 조심을 다하지 않았을까. 마스크 착용을 더 신경 써서 해야겠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월요일에 휴가를 내서 직장동료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내가 휴가를 내지 않았다면 아마 월요일에 그대로 출근을 해야 했을 것이다.
다른 회사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몸이 조금 이상하다고 해서 바로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물론 내가 재택근무를 신청한다고 해서 눈칫밥을 줄 조직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이 근무하고 있는 것을 '문제시'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전날 자가진단 키트 결과가 음성이었고 열도 없었던 내 경우에도 재택근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을 것 같다. 아마 그냥 출근을 했겠지. 아찔해진다. 그랬다면 나와 대중교통을 함께 탄 사람들, 직장에서 한 사무실을 쓰는 동료들 모두에게 큰 위협이니까.
가족과 함께 사시는 모든 분들, 몸이 좀 피로하게 느껴지신다면 집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직장에 계시는 모든 분들, 몸이 피로하게 느껴지신다면 고민 말고 재택근무를 요청하세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가 되면 너무 속상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