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돗자리에 누워 노을도 보고 미래 식량 맛도 보자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 또래들에게 식사 한 번 하자고 했다가, Plan A에서 D까지 나들이 기획서 받아보게 된 사연... 웅장한 등산으로 시작된 나들이와 메콩강을 내려다보며 먹은 늦은 점심식사, 그 이후의 이야기.
이제 귀가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그들의 플랜에는 아직 중요한 일정이 하나 남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러 갈 예쁜 곳을 봐 두었으니 가야 한단다. 그려... 이렇게 날 좋은 하늘 아래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 행복하지.
30분 정도를 달린 것 같다. 우리는 다리를 하나 건넜다. 7NG Road에 진입하자 도로 양쪽으로 물과 초록이 가득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7NG Road의 한쪽은 논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은 호수를 끼고 있었다.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푸르름이 가득했다. 늘 프놈펜의 BKK에서만 생활하다가 도시 밖으로 나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끝없이 펼쳐진 논을 보면서 캄보디아가 아직도 농경 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도심 밖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다양한 일들을 하며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서 만들어낸 하루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7NG Road의 중간쯤에 위치한 한 카페 May coffe 7NG(➡️ 구글맵)에 들렀다. 이 카페는 뷰가 아름다운 1층 야외석과 전망대 테이블이 꾸며져 있다. 연인들이 나란히 앉아 한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고 평온해 보였다. 우리들은 이 카페에서 음료 하나씩을 사들고 전망대 위를 구경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 귀중한 하루는 끝날 듯 끝이 나지 않았다. 7NG Road 양쪽으로는 평상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 여름철 계곡에 가면 자리를 빌리거나 음식을 주문하고 사용하는 평상들 같이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와있지는 않았지만 드문 드문 평상 위에 늘어져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평상 하나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한 평상을 골라 자리를 잡으려고 하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친구들에게 평상 가격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줄 알았나 보다. 하루 렌트 비용은 10불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 가격에 불복하고 반값으로 흥정을 시도했다. (ㅋㅋ) 몇 시간만 있다 갈 거고 정리정돈을 잘하겠다며 5불로 흥정에 성공했다. 직원은 잠시 후 돌아와서 돗자리를 깔아주고는 자리를 피해 주었다.
돗자리가 깔리자 K와 R이 오전에 시장 봐왔던 간식들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별 별 음식들이 다 있었다. 망고, 파인애플, 슈가 팜 프룻 등 과일은 물론이었고, 부화 직전의 오리알인 발롯과 비슷하게 만든 메추리알도 있었다. K는 시장에서 열심히 골라왔던 슈가 팜 프룻을 손질했고, R이 야무진 손길로 파인애플을 깎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 과일 깎게 만든 나.. 하루가 다르게 꼰대의 길로 가고 있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K와 R이 열심히 과일을 손질하는 동안 S는 맥주를 사러 나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길래 보니 맥주에 컵에, 얼음, 빨대까지 챙겨 사 왔다. 대단한 친구들이야.. 이 친구들과 술을 함께 마시는 건 사실 거의 최초의 일이다. 전체 회식 때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을 마시기도 했지만 그때는 어쩐지 한국인-캄보디아인 구분 해 자리를 앉게 되어 서로 내외하는 분위기였달까. 직접 잔을 부딪히며 먹기는 처음이었다. 다들 편안하고 즐거워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그래... 아저씨들보다는 내가 그래도 조금 더 편하지..?
열심히 짠과 건배가 오고 가는 현장, 먼 곳에서 어렴풋한 경적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더니 웅성 웅성 말이 많아진다. 그러더니 내게 한국에서도 worm(애벌레)를 먹는지 물었다. 나는 번데기탕을 떠올리며 silk worm 같은 걸 수프로 끓여서 술안주로 먹기도 하고, grasshopper(메뚜기)를 먹기도 한다고 알려줬다. 그러자 그들은 또 한 차례 분주해지더니, R이 노점상인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온 그것..
골고루도 사 왔더군. 애벌레와 귀뚜라미인지 메뚜기인지 확신할 수 없는 왕풀벌레와... 물방개까지, 3종의 벌레 친구들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애벌레를 뇸뇸 먹었다. 그것은 쉽죠. 한국 번데기가 고소한 맛이라면 여기서 이 애벌레는 맵고 짭짤한 양념이 되어 있었다. 한 마리 먹고 나닌 그 맛의 여운이 영원히 입속을 맴돌 것만 같은 진한 맛이었다. 이들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냉큼 한 입 먹은 것이었지만, 내 입 속은 마냥 기쁘지는 않은 맛이었다. 얼른 맥주로 입을 헹구어 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 잘 먹지? 그들과 함께 웃었다.
그들의 테스트는 그것만으로 끝날 수 없었으니.. 그들은 냉큼 메뚜기를 집어 들고는 다리와 머리를 떼어내어 입에 넣는 모습을 시연해주었다. 야, 너도 먹어 봐. 나는 유년 시절에 메뚜기를 가지고 놀다가 갖게 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메뚜기만은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는 한참을 거대한 메뚜기를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결심을 하고 다리를 뜯어 내다 비명 했다. 내가 당겼던 다리가 뜯기지 않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 구부러지는 모양을 보고 심히 놀란 것이다. 으악.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지 마시라고요. 다리를 뜯고, 머리를 뜯어 내며 몇 차례 비명을 질러대다 겨우 한 입을 먹을 수 있었다. 아아. 분명히 자꾸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물방개도 위의 과정을 동일하게 되풀이하며 한 마리를 먹었다. 단단한 등딱지를 떼어내야 하는데 등딱지를 들어내는데 날개가 펼쳐 나와 깜짝 놀랐다. 생명을 빼앗긴 지 오래인 미물들 이건만. 미래 식량 위기로 벌레를 먹고살아야 하는 때가 온다면, 적응에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변화는 늘 어려운 것이다. S도 물방개는 오늘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메뚜기보다 맛있다며 다시 노점상 아저씨에게 뛰어가서는 한 봉지를 더 사 왔다. 하... 그래. 맛있게 많이 먹어. 내게는 더 권하지 말아 달라구..
벌레들과 씨름하며 맥주잔을 기울이다 보니 하늘이 점차 붉어지더니 해가 지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이 번쩍번쩍 뱉어내는 석양빛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고 아름답다. 노을을 바라보다 보면 들떴던 마음이 푸욱 차분해짐을 느낀다. 눈가도 조금 촉촉해지는 것 같고...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전기가 없는 평상이 완전히 어둠 속에 잠길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돗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K의 차에 올랐다. 우리가 올 때는 다리를 건너 7NG Road까지 왔지만, 프놈펜으로 바로 가는 길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Akreiy Ksatr Village Ferry Point 선착장(➡️ 구글맵)에서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Kampong Chamlong Phnom Penh Areiy Ksatr(➡️ 구글맵)을 통해 프놈펜으로 돌아와야 했다. 뱃삯은 2-3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배는 승선 이후로 하선까지 20분 정도가 걸렸다. 자가용들 뿐 아니라 오토바이들과 한가득 함께 실려 메콩강을 건너는 경험도 매우 즐거웠다.
12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프놈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Naga World Hotel이 꾸며놓은 광장이었다. 설날(Lunar New Year)을 기념하기 위해서 붉은 등이 가득 광장을 밝히고 있었다.
잠시 인근에 주차를 해놓고 모두와 또 한 차례 셀피를 찍었다.
이 날의 대모험은 이렇게 중국 붉은 풍등 트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 정말 대단히 길고 즐거운 하루였다.
⬇️ 시장이 반찬,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먹은 늦은 점심식사